2024년 5월 16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내 경력이 50년인데"…윤여정도 당황하게 했던 '美 오디션 문화'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3.21 10:07 수정 2022.03.21 19:38 조회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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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아무리 미국 문화라지만 오디션은 좀 그렇죠. 제 50여 년 커리어를 한 역할 때문에 잃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스크립트를 현관 앞에 내다 버렸어요. 물론 인아(이인아 PD)가 다시 주워와서 하게 됐지만요"

배우 윤여정이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와 인연을 맺으면서 처음 느낀 황당함으로 '오디션'을 언급했다.

최근 국내 취재진과 가진 화상 인터뷰를 가진 윤여정은 '파친코' 출연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가장 결정적인 출연 계기는 수 휴의 각본이었다. 윤여정은 "'파친코' 속 시대상은 저희 엄마에게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서 작품에 크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어떻게 스크립트(각본)을 읽게 됐어요. 3일 만에 읽었고, 굉장히 감명받았어요"라고 운을 뗐다.

윤여정은 "작가(원작자 이민진, 각본가 수 휴)가 리서치를 살벌하게 했더라고요. 자이니치(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의 역사와 문화가 생생하게 묘사돼있는 각본이었어요. 특히 '선자'라는 여성의 강인함이 인상적이었고, 인생의 여러 역경 속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그 정신을 제가 연기하면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파친코

캐스팅을 수락하려던 찰나, 윤여정은 애플TV+ 측으로부터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황당한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윤여정은 당시를 떠올리며 "그쪽에서 오디션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좀 그렇다고 했죠. 근데 애플은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미국 문화는 알죠. 그런데 한국 사람은 오디션이 익숙지 않잖아요. 게다가 제 연기 경력이 몇십 년인데...만약 오디션을 봤는데 '이 역할에는 맞지 않는거 같아요'라는 소리라도 듣게 되면, 우리 업계에서 '윤여정이 오디션에서 떨어졌데' 소리가 나올 텐데...제 50년 커리어를 이 한 역할 때문에 잃을 수는 없잖아요"라고 당시의 언짢았던 기분을 설명했다.

윤여정은 "제가 영어가 능숙지 않다 보니 말을 좀 세게 하는 경향이 있어요. 또 성격상 결정도 빠른 편이고요. 오디션 소리를 하길래 받았던 스크립트 8개를 현관 앞에 내다 버렸어요. 그런데 인아(이인아 PD)가 주워왔어요"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으로 '미국의 오디션 문화'에 대해 느꼈던 바를 솔직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윤여정의 입장에서는 신인의 통과 의례라 할 수 있는 '오디션'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을 터. 결과적으로 애플TV+는 '오디션'에 대한 의미와 과정을 윤여정에게 다시 설명했고, 윤여정 역시 그 의미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 TV 프로그램 제작 문화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캐스팅 과정 또한 그렇다. 배우가 오랜 경력과 검증된 실력을 자랑한다고 해도 출연할 작품과 캐릭터의 적합성을 따져보는 과정을 거치게끔 되어 있다.

파친코

'파친코'의 총괄 제작자인 마이클 엘렌버그와 테레사 강-로우는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TV프로그램 제작 환경에서는 오디션을 관행적으로 많이 진행한다. 테이프 오디션부터 콜백을 거듭하고 케미스트리 리딩까지 하는데 이 과정을 좋아한다. 여러 차례 오디션을 거듭하면서 배역의 적임자가 되는 배우를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좋은 케미스트리도 발견하게 된다. 각각 배우는 훌륭해도 붙여놨을 때 에너지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 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오디션을 페어로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배우의 경력이나 커리어에 따라 오디션 방식과 횟수도 다르다. 윤여정의 경우 신인 배우를 오디션 보는 방식이 아닌 간단한 대본 리딩을 통해 캐릭터와의 조화를 체크해보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호 역시 오디션 과정을 거쳤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후 13년 만의 경험이었다고 언급했다.

최근 '파친코' 공개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민호는 "오디션은 6차까지 진행됐는데 저는 3~4차 정도에 오디션을 봤던 것 같다."라며 "한수, 이삭, 솔로몬 역할을 두고 어떤 역할로 오디션을 볼 것인가 의사를 물었다. 저는 대본을 읽고 한수 역으로 오디션을 보고 싶다고 했고, 준비해서 봤다"라고 전했다.

오디션 과정을 떠올린 이민호는 "제가 직접적으로 평가를 받는 기회여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민호

캐스팅이 완료된 후에도 오디션은 또 있었다. 이른바 '케미스트리 오디션'이라고 불리는 배우가 앙상블을 체크하는 과정이었다. 이민호는 "한국 오디션과는 다르게 마지막에 인물별로 정리가 되고 케미스트리 오디션을 봤다. 각 역할별로 유력하게 캐스팅된 배우들끼리 만나서 한 오디션이 새로운 경험이었고 재밌었다"라고 오디션 과정을 회상했다.

신예인 김민하는 보다 치열한 오디션 과정을 거쳤다. 윤여정과 이민호의 경우 이미 많은 경력이 있었기에 자신을 입증하는 과정이 짧았다면 김민하는 여느 신인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자신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했다. 이 과정에 대해 김민하는 "영혼을 짜내면서 오디션을 봤던 것 같다"면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오디션 방식이 고되기도 했지만 얻은 게 더 많았다. 신선한 충격도 받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1989년까지 4대에 걸친, 그리고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의 대서사시를 그렸다. 한국계 1.5세 미국 작가 이민진의 동명 장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애플TV+가 투자, 제작했다. 재미교포인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윤여정과 김민하가 여주인공 '선자'를 시대별로 나눠 연기했고, 이민호는 야쿠자 '한수'로 분했다.

'파친코'는 오는 25일 공개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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