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영화 스크린 현장

윤여정 "열등감이 연기의 원동력…최고 아닌 최중 지향"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4.26 16:44 수정 2021.04.27 11:27 조회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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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열등의식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전 연기 전공자도 아니고 연극배우 출신도 아닌 그냥 아르바이트처럼 연기를 시작했어요. 제 약점을 아니까 열심히 외우는 거죠. 피해는 주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연기는 절실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요. 전 정말 먹고살려고 했어요. 대본이 저에겐 성경 같았죠."

배우 윤여정이 오늘날 자신을 만든 건 '열등감'이라고 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 속에 자가발전을 이뤘다고 말하고는 한다. 윤여정도 그랬다.

25일(현지시간) 오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수상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윤여정은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격의 없는 대화를 이어나갔다. 특유의 촌철살인과 위트는 여전했다.

윤여정은 연기 철학을 묻는 질문에 "브로드웨이에 이런 명언이 있다. '누가 길을 물었더니 연습'이라고. 배우에게 연습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한 '최고 지향주의'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윤여정은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 것 같냐"는 기자의 물음에 "최고의 순간이라는 건 없다. 나는 최고라는 말이 참 싫다. 영어 잘하는 애들이 나에게 충고한다. '경쟁을 싫어한다'는 걸 말하지 말라고. 그런데 '1등', '최고' 이런 말을 하지 말고 '최중'이 되면 안 되나. 다 같이 살면 안 되나"고 되물었다.

이어 "아카데미가 다는 아니지 않나. 동양인에게 아카데미 벽이 너무 높아서 트럼프 벽보다고 높다고들 하던데... 꼭 최고가 되려고는 하지 말자. 최중만 되어도 되지 않나. 그냥 동등하게 살자.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윤여정

미국 독립 영화인 '미나리'를 선택한 이유로는 '작품성' 보다는 '사람'을 꼽았다. 윤여정은 "60대 이전엔 나름 계산을 하고 작품을 선택했는데 환갑을 넘어서부터는 사람을 보고, 사람이 좋으면 작품을 선택하게 되더라. 시나리오를 갖고 온 프로듀서가 믿을 만한 사람이고, 감독이 좋은 사람이라 선택했다. (언젠가부터)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심했다. 옷과 액세서리에 대한 사치가 아니라 내 인생을 사치하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돈보다 작품, 작품보다 사람을 쫓는 인생을 '사치'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미나리'에 대해서는 "난 대본을 읽은 세월이 정말 오래됐다. 진짜 이야기인지 아닌지 읽으면 딱 안다. ('미나리'는) 굉장히 순수하고 진지하고 진정성 있는 진짜 이야기였다. 대단한 기교가 있는 작품이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썼더라. 그게 늙은 나를 건드렸다."고 말했다.

또한 정이삭 감독과 만났을 때 받았던 진정성과 순수함을 언급하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윤여정은 "감독들은 다 잘났고 잘난 척을 한다. 그런데 정이삭 감독은 '이런 애가 있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순수했다. 독립영화라 비행기 이코노미석 밖에 제공이 안되는데 사비를 보태 미국 촬영장에 갔다. 무엇보다 대본을 전해준 이인아 프로듀서를 믿었다. 그런데 내가 늙은 여우니까, 감독이 싫었으면 안 했을 거다. 감독이 진정성이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하게 됐다. 만들 때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안 했다."고 다시 한번 놀라워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행보를 묻는 질문에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 점쟁이도 아닌데... 계획이 없다. 살던 데로 살 것이다. 상을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이 되는 건 아니니까. 옛날부터 결심한 게 있다. 대사를 외우기 힘드니까, 남에게 민폐 끼치게 싫으니까,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해외 러브콜이 잇따를 것 같다고 전망하자 "영어를 못해서 해외에서 러브콜이 들어올 일은 없다."고 겸손의 미덕을 발휘했다. 윤여정은 영어로 미국인을 웃길 수 있는 능숙한 수준이다.

ebada@sbs.co.kr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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