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영화 스크린 현장

[CANNES+] '칸 필름마켓' 막전막후…'선구매'의 명과 암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5.25 13:23 조회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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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필름마켓

[SBS연예뉴스 | 칸(프랑스)김지혜 기자] "안 사요. 안 사. 진짜 안 살 거예요!"

칸영화제에서 만난 영화수입사 관계자는 하나같이 올해는 작품을 구입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줬다. 필름 마켓에 참여하기 위해 출장을 와서 영화를 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이유는 뭘까.

'칸 필름마켓'(March´e du Film)은 아메리칸 필름마켓, 베를린 필름마켓과 더불어 필름 바이어들이 손꼽는 대표적인 영화 시장이다. 그중에서도 칸영화제 필름 마켓은 세계 최대 규모로 전 세계 1만 2,000여 명의 세일즈 에이전트와 바이어, 영화제 관계자, 제작 관계자들이 모인다.

필름 마켓은 영화제 개막보다 2~3일 앞서 열리며 폐막에 앞서 마무리된다. 마켓 기간 동안 영화제 메인 극장인 팔레 데 페스티벌 뒤 리비에라에 마켓 부스를 차린다. 한국 영화들 역시 이 부스에서 바이어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칸은 세계의 우수한 영화들이 한데 모이는 가장 큰 시장인 만큼 국내 수입사들은 경쟁 태세에 돌입한다. 중소 수입사부터 멀티플렉스 체인, IPTV를 운영하는 대기업 통신사까지 경쟁에 뛰어든다. 

좋은 영화를 구매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각종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과열 경쟁에 입찰가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각종 편법까지 등장하고 있다.

칸 현지에서 필름 마켓 막전막후(幕前幕後)를 취재했다. 그리고 이제는 '울겨 겨자먹기'가 된 선구매의 명과 함도 조명해봤다.

칸

◆ 입도선매는 필수?…영화 촬영 전 미리 '찜'

당년도 칸영화제 상영작이 어느 수입사 품으로 돌아갔는지 취재하는 건 별 의미가 없어졌다. 세계적 거장의 신작부터 웬만한 네임 밸류를 가진 감독들의 영화는 이미 임자가 있다.

일례로 올해 경쟁 부문 상영작만 봐도 '해피엔드', '원더스트럭', '래디언스'는 그린나래미디어, '더 킬링 오브 어 세이크리드 디어'는 '오드'가,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는 '콘텐츠 게이트'가 1~2년 전 구매를 마쳤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영화가 팔렸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선구매'는 필름마켓에서 보편화된 거래 방식이다. 세계적인 거장일수록, 유명 배우가 출연할수록 경쟁이 치열해서 프리바잉이 필수다.

선구매 과정은 이렇다. 세일즈 사는 올해 마켓에 내놓을 영화를 리스트업해 영화제 개막 1~2주 전에 한국 수입사에 보낸다. 그 리스트에는 완성된 신작, 시나리오만 나온 영화, 시나리오와 캐스팅이 정해진 영화, 완성됐지만 팔리지 않은 이월 영화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완성되지도 않은 제품을 가판에 올린다는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감독과 배우가 슈퍼스타급이라 영화 제작 계획을 알리고 프리 오더를 받는다. 바이어들은 감독과 배우, 그리고 시나리오 혹은 트리트먼트만으로 영화의 감을 잡는다. 그래서 보장된 감독과 배우가 의기투합한 영화는 선구매 단계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높은 단가를 형성한다.

칸 필름마켓

◆ 미공개 입찰방식…수입사 눈치작전 치열

필름 마켓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마켓용 배지(Badge)가 필요하다. 취재용인 프레스 배지는 무료지만 마켓 배지를 만드는 데는 한화 약 40~50만 원의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이 배지가 있어야 마켓 시사를 볼 수 있고 구매를 위한 입찰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입찰 방식은 비공개다. 구매를 원하는 영화는 해당 세일즈 사에 방문해 입찰가를 적어낸다. 애스킹 프라이스(요구금액)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 애프킹 프라이스도 없고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가 좋은 퀄리티를 자랑한다면 고민은 더 커진다. 상한가를 어느 선에서 맞출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과 눈치작전을 펼쳐야 한다.

프리바잉의 명확한 단점도 존재한다. 감독과 배우 이름만 믿고 선구매를 했다가 작품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2년 전 구입한 영화가 칸영화제에서 공개됐는데 형편없는 작품성 때문에 아직 개봉을 못 시키고 있다. 이런 영화의 경우 흥행을 포기하는 게 마케팅 비용 지출이라도 막을 수 있는 길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흑 속의 진주를 찾기란 이리도 힘든 일이다. 관계자이 선구매작에 대해 살 수도, 안 살 수도 없는 독이 든 성배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칸

◆ 과열 경쟁에 단가 치솟아…'10만 대박'은 옛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입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영화를 안 사는 게 남는 장사"라는 웃픈 이야기가 오간다. 과열 경쟁으로 단가가 올라가고 손익분기점이 높아지면서 사실상 이익을 거두는 수입사는 손에 꼽을 정도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입사들이 마켓에 가는 마음이 무겁다.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예술영화의 경우 몇 해 전만 해도 평균 3~4만 달러에 거래가 됐다. 그러나 수입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제는 10만 달러 이상을 줘야 구매가 가능해졌다. 수입 단가가 올라가면 흥행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예전에는 예술 영화는 관객 10만 명을 동원하면 대박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10만을 넘지 못하면 무조건 손해인 상황이 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입사들이 과열 경쟁하면서 생긴 부작용도 상당하다. 패키지 딜((package deals)과 편법 거래가 대표적이다. 세일즈 사들이 구매 경쟁이 치열한 영화에 팔리지 않는 영화를 패키지로 판매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수입사 입장에서는 원하는 영화를 사기 위해 원치 않은 영화도 함께 구매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칸

한 수입사 관계자는 "매년 필름 마켓에서 산 작품들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 자체 평가서를 만든다. 이 파일을 수입사들끼리 공유한 적 있었는데 그 결과들이 처참했다"면서 "요즘은 업계에서도 선구매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수입사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유령 회사를 만들어 입찰에 참여하는 경우도 문제가 되고 있다. 한 수입사 관계자는 "모 영화사는 또 다른 영화사를 만들어 입찰에 참여해 시장의 물을 흐렸다. 국제적인 망신 사례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에는 롯데, 메가박스에 이어 배급능력을 갖춘 CGV 아트하우스도 영화 수입에 뛰어들었다. 한 중소 수입사 관계자는 "극장을 가지고 있는 배급사들이 영화 수입에 뛰어들면 소형 회사들은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아트하우스가 가진 예술영화 전용관이 전국 17개다. 어떤 예술 영화의 경우 5개 극장을 받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자사가 수입한 영화를 배급하는데 중점을 둔다면 예술 영화의 배급 상황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 계열 회사에서 수입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토로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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