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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배트맨 대 슈퍼맨'에 없었던 건 설득의 기술

김지혜 기자 작성 2016.03.28 12:41 조회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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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을 지배하는 철학은 무엇일까.

잭 스나이더 감독은 말했다. "모든 일에는 반작용이 있다. 한 사람을 구하면서 다른 사람이 곤경에 빠진다"고.

DC코믹스의 대표 히어로 배트맨(벤 애플렉)과 슈퍼맨(헨리 카빌)이 집안싸움을 벌인다. 정의를 수호한다는 공공의 목적을 가지고 악에 대항한 두 히어로 사이에 분열이 생긴 것. 정의의 두 상징이 갈등을 벌이는 이 상황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이 싸움의 명분을 설득하는 것은 영화의 중요한 숙제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다크나이트 리턴즈'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연출을 맡은 잭 스나이더 감독과 각본을 담당한 데이빗 S.고이어는 두 히어로의 갈등 원인을 바꿨다. 원작에서는 미국과 소련의 갈등이 사회적 배경으로 제시된다. 미국 대통령은 슈퍼맨을 자신의 하수인처럼 이용하고, 이는 슈퍼맨에 대한 대중과 배트맨의 의구심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영화는 '맨 오브 스틸'(2013)과의 연결고리로서 '블랙 제로' 사건을 끌고 들어왔다.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전투로 메트로폴리스는 폐허가 되고, 이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죽어 나갔다.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트맨은 슈퍼맨이 언젠가 타락할 것이며,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배트맨

'배트맨 대 슈퍼맨'은 크고 화려한 액션 장면으로 포문을 연다.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전투로 메트로폴리스가 초토화되는 과정에서 배트맨은 자신의 회사 웨인 파이낸스 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동료들이 희생당하고 가족들은 눈물짓는다. 이 풍경은 미국인의 트라우마인 9.11 사건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주요 축은 배트맨과 슈퍼맨의 갈등이지만, 이 과정에서 공공의 적 렉스(제시 아이젠버그), 배트맨의 조력자 알프레드(제레미 아이언스), 클라크의 연인이자 데일리 플래닛의 기자 로이스 레인(에이미 아담스), 슈퍼맨의 엄마 마사(다이안 레인)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중 렉스는 DC 최강의 빌런 둠스테이의 창조자로서 이번 영화뿐만 아니라 향후 시리즈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인 배트맨과 신(神)인 슈퍼맨의 대결이 말이 되느냐고. 그렇다면 둘의 대결에서 승리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이길 것인가. 영화는 이 주요한 물음표에 대한 답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다. 거대한 이야기 축에 수많은 곁가지를 엮어내며 장황한 스토리 텔링을 하고 있다.

영화는 중반 이후 두 사람의 갈등의 명분이 사라진다. 가치관의 대립으로 내내 고뇌하던 영웅들은 어느 순간 최강의 적과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치고 신념의 문제는 '우정'으로 봉합된다. 게다가 갈등 해소의 키(Key)조차 얼렁뚱땅 제시하고 만다. 그래서 갈등의 최고점과 해소점으로 이어지는 클라이맥스는 김빠진 사이다 같은 느낌마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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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스나이더 감독은 '배트맨 대 슈퍼맨'이 저스티스 리그의 프리퀄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해왔다. DC는 마블이 개별 히어로 시리즈를 통해 각 캐릭터의 인지도를 높인 뒤 '어벤져스'라는 올스타전을 내놓은 것과는 정반대의 전략을 선택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을 프리퀄로 제시하고, 저스티스 리그 구성원의 솔로 시리즈와 저스티스 리그 1,2편을 내놓는다. 

실제로 '배트맨 대 슈퍼맨'은 저스티스 리그의 구성원인 원더우먼, 플래시, 사이보그, 아쿠아맨을 맛보기에 가깝게 등장시켰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원더우먼이다.

탄생 70년 만에 솔로 무비의 주인공이 될 원더우먼은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히어로 무비에서 여성 캐릭터는 장식적이거나 부수적인 역할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원더우먼은 마블의 블랙위도우와는 또 다른 초인적 능력과 매력으로 무장했다. 더불어 "나 같은 여잔 만나본 적 없을걸?"이라는 당돌한 대사로 자신의 캐릭터를 요약한다.

극 중반까지 배트맨의 주위를 겉돌던 원더우먼은 결정적인 순간 근사한 모습으로 등장해 관객들의 넋을 빼놓는다. 여기에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은 DC 대표 히로인의 등장을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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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믹북의 양대 산맥인 DC와 마블은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DC는 스토리 중심, 마블은 캐릭터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배트맨 대 슈퍼맨'은 빈약한 서사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영화를 마무리하고 말았다. 이야기의 구멍은 메트로폴리스와 고담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도시의 설계, 다양한 캐릭터의 등장, 슈퍼맨과 배트맨의 액션 신, 저스티스 리그의 떡밥 등 볼거리로 메우는 모양새다.

영화는 2억 5천만 달러(한화 약 2,925억 원)의 제작비로 화려한 비주얼을 구현했고, 장시간의 IMAX 촬영을 통해 스펙터클을 강화했지만 정작 놓친 건 '설득의 기술'이었다.

캐릭터 역시 절반의 승리다. 배트맨의 DNA를 크리스찬 베일에서 벤 애플렉으로 옮겼지만 그만의 개성은 도드라지지 않았다. 악당 렉스 역시 '다크 나이트' 조커의 입체적 매력이 비하면 지루하게 느껴진다.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캐릭터는 뜻밖에도 원더우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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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은 평단의 혹평은 물론 관객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나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영화 시장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첫 주 북미에서만 1억 7,010만 달러를 벌어들여 DC 영화 사상 최고의 오프닝(종전 기록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1억 6,080만 달러) 기록을 세웠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4억 2,41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역대 월드와이드 오프닝 4위에 올랐다.

워너 브러더스는 '배트맨 대 슈퍼맨'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DC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청사진을 공표했다. '원더우먼'은 2017년 6월 23일, '저스티스 리그 파트1'은 2017년 11월 17일 관객과 만난다. 그리고 2018년 3월 23일에는 '플래시', 2018년 7월 27일에는 '아쿠아맨'이 개봉한다. 2019년 6월 14일 '저스티스 리그 파트2'가 개봉한 뒤 2020년 4월 3일 '사이보그'가 대미를 장식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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