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영화 스크린 현장

[김지혜의 논픽션] '덫', 에로거장 봉만대의 6년의 기다림과 열정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9.16 15:58 조회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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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니들이 에로를 알아?"('아티스트 봉만대')라고 발길질을 해대던 봉만대 감독이 자신의 본 무대로 돌아왔다. 스티븐 소더버그 영화의 제목을 딴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이후 3년 만이다.

신작의 제목은 '덫:치명적인 유혹'(감독 봉만대, 제작 (주)지오엔터테인먼트). 오랜만에 만나는 봉만대의 19금 영화다. '에로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봉만대 감독에게도 이 영화는 남다르다. 2009년 촬영됐으나 개봉까지는 무려 6년이 걸린 인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투(촬영)를 하러 떠나기 전 아내와 사랑을 나눴고 그 결실로 생긴 아이가 어느 덧 6살이 됐다"

기자간담회에서 우스갯소리로 던진 이 말엔 지난 6년의 시간이 함축돼있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던 이 날의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덫'은 본격 에로를 지향하는 영화는 아니다. 대놓고 벗고 나뒹구는 그렇고 그런 에로가 아니라는 말이다.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엿볼 수 있듯 서스펜스와 에로가 섞인 작품이다.

덫

시나리오 작가 정민(유하준)은 새로운 작품을 쓰기 위해 외딴 산속 조용한 민박집을 찾는다. 그곳에서 앳된 얼굴에 관능적인 매력을 가진 소녀 '유미(한제인)를 만난다. 추운 겨울밤, 창고 안 소녀의 나신을 훔쳐보던 정민은 타오르는 욕망을 애써 누른 채 서울로 돌아온다.

하지만 자신을 유혹하는 듯한 유미의 눈빛을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간 그는 한밤중 방으로 찾아온 그녀와 뜨거운 정사를 나눈다.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상황과 우발적인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며 혼란에 빠진다.

'덫'은 미국 스릴러 영화 '미저리'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며 일본 영화 '완전한 사육'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폐쇄적 공간 속에서 한정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스릴 그리고 자극이 중심이다. 캐릭터 역시 훔쳐보는 남자와 그 시선을 즐기는 여자 그리고 여자 곁을 지키고 있는 말 없는 중년남자로 단출하게 구성돼 있다.

영화는 강렬한 오프닝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정사 장면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답게 에로틱한 분위기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화를 만드는 시나리오 작가를 남자 주인공으로 설정해 영화계의 병폐를 뼈있는 대사에 담아낸 점도 흥미롭다.

중반부까지는 정민과 제인의 밀고 당기기가 영화의 줄기다. 전형적 설정에 예상 가능한 전개가 이어짐에도 긴장감과 집중력을 유발하는 건 봉만대 감독의 연출 내공이다. 게다가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몽환적 영상은 이전 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기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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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구멍도 있다. 비밀이 밝혀지는 후반부에 접어들면 중반까지 쌓아온 긴장감이 무너진다. 팜므파탈 캐릭터를 연기한 한제인의 매력에 의존하는 영화다 보니 나머지 두 남성의 캐릭터나 연기가 다소 평면적이다. 

2003년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라는 영화로 '19금 성애영화'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봉만대 감독의 신화를 기억할 것이다. 그 후 12년, 에로 영화는 퇴보는 거듭하고 있다.

봉만대 감독은 '에로 거장'의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엔 TV(TV 방자전, 동상이몽), 메타 영화('아티스트 봉만대'), 웹 시리즈('떡국열차') 등 다양한 외도를 시도했다. 그러나 '19금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은 식지 않았다.

봉만대 감독은 이 작품을 선보인 언론시사회 자리에서 "개봉 일주일 만에 IPTV 시장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극장에서 많이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덫'은 '사도', '탐정', '서부전선' 등 추석 영화의 기세 속에 쉽지 않은 도전장을 던진다. 그렇다 한들 6년의 기다림보다야 힘들까. 개봉 9월 17일, 청소년 관람불가, 107분.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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