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차이나타운' 조현철, 이렇게 놀라운 신인 오랜만이죠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5.19 12:23 조회 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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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철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안선생(이대연)은 홍주(조현철)를 '반푼이'라고 했다. 이 단어는 생각이 어리석고 하는 짓이 야무지지 못한 사람을 지칭한다. 홍주는 반푼이일까 아니면 바보일까. 

"한준희 감독님은 홍주에 대해 자폐를 앓고 있는 건지 지적장애가 있는 건지 열어뒀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전 그저 홍주는 '지능이 낮은 아이'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갔어요"

영화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제작 폴룩스 픽처스)은 젊은 배우들의 재능 각축장이었다. 김혜수가 무게 중심을 잡았다면, 김고은을 필두로 한 20대의 배우들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며 시너지를 냈다. 엄마(김혜수), 일영(김고은), 우곤(엄태구), 홍주(조현철), 쏭(이수경). 이 다섯 구성원이 이룬 마가네는 가족인 듯 가족 아닌 조금은 독특한 모습으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젊은 배우 면면이 신선하고 인상적이었지만 '홍주'역을 맡은 배우가 주는 활력은 대단했다. "밥 먹고 약 먹었으면 일해야 한다. 홍주는 엄마 말 잘 듣는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홍주는 지능은 모자라지만 실행력 하나만큼은 따라올 자가 없는 마가흥업의 행동 대장이다. 식구들 사이에선 영락없는 반푼이지만, 거사 때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빈틈이 없다.

이 순수한 살인 병기를 연기한 인물은 신인 배우 조현철이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얼굴과 이름이라고? 아직은 조금 낯설지만, 이 이름과 얼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현철

◆ "주인 말에 복종하는 개"…조현철이 만들어낸 홍주 

배우에게 있어 극단적인 변신이 가능한 캐릭터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인물을 연기할 때는 설정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외모부터 목소리, 말투, 행동 패턴까지 일상적이지 않은 특이한 연기가 불가피하다.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나 진짜 같은 '동네 바보'였다. 오디션을 통해 영화에 합류한 조현철은 두 달간 '홍주'를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이 캐릭터를 맡고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이 '선을 잘 지키자'였어요. 표현이 너무 과하면 관객들이 불편해할 것 같고, 덜하면 관객이 연기를 어색하게 여길 것 같았거든요. 수위를 조절하는 게 저의 가장 큰 숙제였어요"

'차이나타운'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전사가 생략됐다. 그 인물의 과거를 모른 채 현재를 연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조현철은 홍주의 전사에 대해 "어떤 사고로 뇌에 손상을 입은 아이였을 거예요. 일영(김고은)처럼 떠돌다가 마가흥업에 들어오게 됐겠죠"라고 추측했다.

조현철의 캐릭터 분석은 독창적으로 여겨진다. 그에 따르면 홍주는 '주인의 말에 복종하는 개'였다.

조현철

"외상이 있는 아이니 엄마 기준으론 쓸모가 없는 아이였겠죠. 그 상태에서 엄마에게 훈련을 받았는데 무조건 복종하면서 존재를 인정받기 시작했을 거예요. 그래서 홍주에겐 엄마의 말이 곧 법이고, 명령을 어기게 되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거죠" 

앙칼지며 혀짧은 소리, 머리를 긁적이는 습관, 어슬렁한 걸음걸이 등 홍주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들어낸 연기 디테일도 돋보였다. 그는 "목소리의 경우 뇌에 손상을 당해서 언어적인 부분에서 한계를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하며 만들어봤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홍주는 관객의 기억에 또렷이 남는 캐릭터가 됐다. 몇몇 관객들은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1993)에서 정신지체아 캐릭터를 연기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리기도 했다. 

"디카프리오요? 과찬이에요. '길버트 그레이프'란 영화를 아직 못봤는데 찾아봐야겠네요"  

조현철

◆ "연기하는 감독, 연출하는 배우"…조현철의 미래가 궁금한 이유 

조현철은 한준희 감독과 한 차례 인연이 있다. 재작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감독과 감독 자격으로 뒤풀이 자리에서 스치듯 만났다. 물론 1년 뒤 감독과 배우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당시 조현철은 '뎀프시롤:참회록'이라는 단편 영화로, 한준희 감독은 '시나리오 가이드'라는 작품으로 경쟁 부문에 올랐다.

이 배우의 미래가 조금 더 기대되는 이유는 연기와 연출을 겸하는 보기 드문 인재라는 점이다. 서강대학교 인문학부에 입학한 조현철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진로를 틀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했다. 꿈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다는 조현철은 비교적 현실적인 이유로 영화 연출을 선택했다.

"1997년인가 '쉬리'라는 영화가 크게 흥행하면서 한국영화가 활황기였어요. 그때 생각했죠. 영화를 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겠구나 하고요"

영화 연출은 예상보다 힘든 일이었다. 조현철은 대학교에 진학해 '척추측만', '뎀프시롤:참회록'과 같은 수작을 만들어냈지만 보는 것과 만드는 것은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조현철

"감독은 매 순간순간 선택을 해야 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과 소통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죠.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하고 편집해 완성하기까지의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장기전이기도 하고요"

연기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영상원 동기들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하면서다. '9월이 지나면', '영아', '유도리', '두근두근 영춘권' 등 수많은 단편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됐고 2012년 '건축학개론'으로 상업영화에 데뷔했다.

"좋아서 하는 연기지만, 배우라고 하는 게 익숙치 않아요. '차이나타운' 전까지는 약간 아르바이트처럼 생각한 면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연출보단 연기에 더 관심과 욕심이 있어서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운이 좋게도 최근 함께 일해보자는 연예기획사도 생겨서 좀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현철은 낯설고 좀 어설프더라고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는 배우를 꿈꾼다. 송강호와 빌 머레이,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을 좋아한다는 말에서 그의 지향점이 보이는 듯 했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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