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라이프 문화사회

[인터뷰] 마이클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한국에 온 건 최고의 행운”

강경윤 기자 작성 2014.09.17 15:41 조회 12,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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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리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재해석한 뮤지컬 '더 데빌'(The Devil)에서 X는 절대 악이다. X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선과 악은 있어, 문제는 선택일뿐.” 누구나 선택 앞에서 고민한다. X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마이클리(40)도 그랬다. 미국 스탠퍼드 의대를 그만두고 의사인 아버지에게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던 그 날은, 마이클리의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의 순간이었고,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놨다.

마이클은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다가 2006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미스 사이공'으로 주목받은 그에게 한국에서의 모든 건 도전의 연속이었다. 영어가 익숙한 그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연기를 연습하고 합을 맞추는 과정과는 별개로, 한국어 대사를 읽고 외우고 톤을 조정하고 듣고 외워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마이클에겐 불평도 조바심도 찾아볼 수 없다. 넘치지 않는 기분 좋은 에너지와 드러내지 않는 자신감이 마이클을 감싼다. 그는 선택과 도전을 즐겼고, 가장 바쁜 뮤지컬 배우 중 한명이 됐다.

Q. '더 데빌'이란 작품을 봤다. 기존의 문법을 파괴한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마이클에게 '더 데빌'은 어떤 작품인가.

“무엇보다 음악이 나에게 가장 잘 맞다. '더 데빌'의 음악감독은 2002년부터 만난 친한 친구다. 그래서 내 목소리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안다. '더 데빌'의 락앤롤은 완전 내 스타일이다.(웃음) 감정, 열정이 넘치고 감성이 있다. 음악은 언어다. '데빌'의 음악은 마치 나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모든 넘버들이 좋지만 그 중 '피와 살'을 가장 좋아한다.”


Q. X라는 캐릭터는 월가의 존 파우스트를 괴물로 만드는 절대 악이다. 관념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조금 어렵게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다. 배우 입장에서는 어떻게 이 캐릭터를 이해했나.

“이지나 연출에게 처음 X에 대해 들었을 때 이해하기에 굉장히 어려웠다. X가 뭘 표현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그를 '절대악'이라고 놓고 인간의 마음에 선과 악을 다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이해했다. X라는 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거니까.”

Q. 드랙퀸이 주인공인 뮤지컬 '프리실라'와 '더데빌'을 함께 무대에 올리고 있다. '프리실라'의 틱은 밝고 희망찬 현실의 인물이라면 '더 데빌'은 어둡고 무겁고 비현실적 존재다. 두 배역의 간극이 엄청난데 동시에 두 배역을 하기 어려움은 없나.

“두 역할이 아예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편했다. '프리실라'를 할 때는 완전히 집중하고 또 '더데빌'을 할 때는 이 작품에 몰입한다. 큰 변화를 줘야 하기에 오히려 몰입이 쉽다. 반면 '더데빌' 안에서의 노력은 매일 다르다. 우리의 인생에 선과 악은 늘 존재한다. 빛을 찾기 위해서 어둠을 걷는 것처럼. 파우스트도 그렇다. 결과적으로 그는 선과 악 중에서 악을 선택한 거다. 파우스트의 선택을 관객들에게 설득할 수 있도록 고민한다.”

Q. 어두운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지나치게 몰입해서 실생활에서까지 우울해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X역을 맡은 마이클에게는 그런 증상이 없나.

“그렇지 않다. 내가 좋은 연기자가 아니어서 그런가.(웃음) 나는 배역과 일상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 다른 배우들은 배역이 일상에 굉장히 깊게 침투하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로빈 윌리엄스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렇게 좋은 배우가 실생활에서 큰 우울감을 가졌던 걸 보면 많이 안타깝다. 실생활에서는 배우가 아닌 인간 마이클로만 산다.”

Q. 마이클의 표현대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파우스트는 악을 택한 거고, 그라첸은 선, 그러니까 신을 택한다. 실제로 마이클의 인생에서는 주로 어떤 선택을 하는가.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웃음) 나는 카톨릭 신자다. 고민의 순간에는 기도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게 가족을 위하는 건지' 결정의 순간에 늘 고민한다. 이상과 현실, 그 사이에서 무언가를 결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선택들이, 결혼을 하면서 많이 바뀌었다. 혼자 살 때는 보다 본능적으로 선택했다면, 지금은 결정할 때 옳고 그름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아들들과 아내에게, 내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치니까.”

마이클리


Q. '프리실라'를 보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인상 깊었던 점은 발음을 차치하고라도, 연습으로 한국어 대사톤과 느낌을 미세한 부분까지 조정한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하는 건가.

“2006년도에 왔으니까 한국에 온 지 8년 정도 됐다. 그 동안은 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 했고 지난해 아예 한국으로 들어왔다. 미국에서 산 시간이 거의 40년이니까 한국어 대사가 아직도 많이 어렵긴 하다. 그래도 주위에 도와주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서 연습 때문에 스트레스 받진 않다. 나에겐 행복한 스트레스다.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한국 배우들도 대사 때문에 실수를 많이 하는데, 마이클 같은 경우는 더 그럴 것 같다.

“하다가 잊어버려서 영어로 대사를 할 때가 있다. 그건 자연스럽다.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배우들이 대사를 잊었을 때 어떻게 자연스럽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다. 그래서 '벽을 뚫는 남자'를 할 때는 다른 배우가 대사를 잊어버리자 깜짝 놀라서 외계어를 한 적이 있다. 방언이 터진 줄 알았다.(웃음)”

Q.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지저스 역이 절대 선이라면, '더 데빌'의 X는 절대악이다. 상반되는 두 역할을 하는데 어떤 역할이 더 어렵나.

“예수 역이 더 어렵다. 지저스는 사람들의 이상이니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다 있기 때문에 그를 표현하는 건 큰 도전이었다. 리허설 할 때 예수 역에 대한 생각이 이지나 연출과 아예 달랐다. 나는 좀 더 인간적인 예수를 그리고 싶었는데 이지나 연출은 절제되면서도 이상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맞았다. 예수 역은 큰 도전이었다.”

Q. 한국과 미국의 뮤지컬을 다 겪어봤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차이를 뚜렷하게 알 것 같다. 미국에도 일부 배우들의 티켓 파워가 뮤지컬에 미치는 영향이 큰가.

“미국에서도 인기 있는 배우, 아이돌이나 TV스타들이 뮤지컬로 오긴 하지만 그들이 티켓 파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관객들은 작품을 가장 우선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티켓파워는 개인의 인기나 유명세보다는 작품의 완성도가 결정 짓는다. 그 부분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인기가 티켓에 미치는 영향이야 있겠지만, 결국 성공하는 뮤지컬은 배우의 연기력과 작품의 예술성이 완성도 있게 그려졌을 때야 비로소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닐까.”

Q. 그 외적으로 다른 점은 뭔가.

“미국과 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거의 비슷하다. 가장 다른 점은 미국 극장들의 고객은 대부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기 때문에 작품 자체가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이 때문에 한번 작품이 시작되면 10년 이상 오픈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반면 한국 뮤지컬은 90%가 국내 관객이다. 그래서 새로운 작품들이 계속 나온다. 배우 입장에서는 더 많은 작품과 배역을 해볼 수 있어서 기쁘지만, 프리뷰와 리허설 기간이 짧다는 점은 좀 아쉽다. 다만 한국 뮤지컬을 하면서 한국 시스템의 열정과 배우들의 근면함을 많이 배웠다.”

Q. 이미 많이 알다시피 마이클은 '엄친아'로 불린다. 명문대 의대를 중도 포기하고 배우가 됐다는 일화는 굉장히 유명하다. 마이클의 어린시절은 어땠나.

“굉장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좋아했고 관찰하는 것도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했는데 무대에 오른 배우들을 보면서 나도 저들처럼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항상 배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마이클리

Q. 사람들을 관찰했던 부분들이 배우가 되는데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나.

“물론이다. 친구들로부터 '좋은 청중'(Good listener)란 말을 많이 들었다. 어렸을 땐 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배우와 심리학자는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Q. 지극히 한국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의사를 포기하고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많은 반대를 했을 것 같은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뭘해야 할지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의사였고 형수님과 형이 의사였기 때문에 좋은 성적에 맞춰서 의대에 가는 게 자연스러운 코스였다. 처음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굉장히 큰 실망을 하셨다. 화도 많이 내셨다.(웃음)”

Q. 그런데 어떻게 의사가 아닌 배우의 길을 걸을 수 있었나.

“아버지는 정말 좋은 의사셨다. 어릴 때 난 아버지의 환자들을 질투할 정도로, 아버지는 환자들을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의사셨다. 아버지는 내가 의사가 아닌 배우를 하면서, 날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배우가 되기로 선택한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안심했고 지금은 나의 넘버원 팬이다.”

Q. 마이클 역시 아버지인데, 나중에 두 아들들이 배우가 된다고 하면?

“우리 아들이?(웃음) 당연히 서포트 해야지. 그들이 뭘 하고 싶은지를 듣고 뭐든 시킬 거다. 요즘 아내와 그런 얘길 많이 하는데 아내는 아들들이 시리아 같은 곳에 가서 취재하는 기자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아들들이 어떤 것에 열정이 있다면 그걸 믿고 시킬 거다. 내가 그랬듯, 아들들 역시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서 많은 걸 배울 거다.”

Q. 마이클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서 요즘 가장 바쁜 배우가 됐다. 연출가들이 그만큼 믿고 찾는다는 뜻일텐데, 왜 그런 것 같나.

“미국에서 나는 동양인 배우였다. 동양인 역할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기회를 잡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한국에서는 캐스팅에 한계가 없지 않나. 나는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떤 역에 캐스팅 되면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한국어 대사는 큰 도전이긴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큰 축복이고 행복이기 때문에 불평할 수 없다. 그저 감사하다.”

마이클리

Q. 몇 달 전 '노트르담 드 파리' 작곡가 리카르도 코시안테의 초청을 받아서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 '아레나 디 베로나'(Arena di Verona Festival) 오프닝 무대에 섰다. 어떤 느낌이었나.

“그건 꿈이었다. 3박 5일 동안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머물었는데, 아직도 그날의 일들을 생각하면 꿈같다. 정말 말도 안 된다. 지금도 못 믿겠다. '그게 진짜야?'라고 여전히 매니저한테 묻는다.”

Q. 더 많은 역할에 도전하고 싶을 텐데 어떤 배역을 맡고 싶나.

“한국에서 했던 역할 중에선 '벽을 뚫는 남자' 듀티율이 가장 만족스러운 캐릭터였고 미국에선 '더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The Last 5 years)의 제이미 역이었다. 듀티율을 맡은 동안은 그처럼 살고 숨쉬려고 노력했었다. 제이미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두 역할을 다시 한번 맡고 싶다. 나의 꿈의 캐릭터는 '컴퍼니'에 나오는 바비라는 역할이다.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스마트한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바비를 보여주고 싶다.”

Q. 마지막으로 마이클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란 어떤 건가.

“좋은 배우란 스스로 편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게 편해지려면 인생을 통해서 내가 누군지, 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떤 걸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100% 나를 알지 못한다. 어렵지만 그렇게 하는 게 내 목표다. 많은 경험을 하고 나를 더 많이 알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온 건 좋은 선택이었다. 분명 언젠가 스스로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는 날이 온다고 믿는다.”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사진제공=알앤디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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