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월)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선입견을 이겨내는 진심"…장진 감독이 말하는 '하이힐'의 미덕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6.12 13:21 조회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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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감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인터뷰 도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와 잠시 대화가 중단됐다.

"괜찮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는 거 예상했는걸. 일단 2주차까진 좀 더 지켜봐야지"

장진 감독이 지인과의 통화에서 주고 받은 이야기는 전날 나온 개봉 스코어에 대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은 '하이힐'의 개봉 다음날이었다. 영화는 박스오피스 6위에 머물렀다. 정면 대결이 불가피했던 경쟁작 '우는 남자'의 전야 개봉 전략에 맞춰 하루 먼저 개봉했음에도 스코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장진 감독은 쾌남이다. 그간 만들어온 재기발랄한 영화들은 꼭 그를 닮았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도 대화를 주도한다.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다. 아마도 감독으로 데뷔한 이래 가장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은 이 날도 예외 없이 그랬다. 

'하이힐'은 대중들의 높은 선입견의 벽에 부딪혀있다. 이 작품은 완벽한 남자의 조건을 모두 갖췄지만,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숨긴 채 살아온 강력계 형사 지욱(차승원)의 운명과 고통을 그린 영화. 장진 감독으로서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이힐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 소재는 꽤 많은 감독이 다뤘다. 하지만 대중들이 익숙하거나 쉽게 받아들이는 소재는 아니기에 상업영화로서 소비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장진 감독은 '하이힐'을 상업영화의 틀 아래서 만들었다.

"셋업 자체가 쉽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투자할게" 할 만한 투자사가 흔치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믿고 또 나를 믿고 투자해주고 배급하겠다는 회사들이 있어 제작은 수월하게 이뤄진 편이었다. 언론시사회 다음날이었던가. 기자들이 쓴 리뷰를 보고 '아 이 영화가 쉬운 영화가 아니었구나' 싶었고 차승원과 롯데엔터테인먼트(투자배급사)가 새삼 고맙게 느껴지더라"

장진 감독이 뻔한 소재, 흔한 구성의 이야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럼에도 '하이힐'의 소재와 이야기는 좀 뜻밖으로 여겨졌다. 그는 어떻게 남과 조금 다른 지욱의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어쩌다 이 소재를 생각했던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장)동건이를 비롯한 지인들과 있는 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떠올라서 들려줬고, 그러다가 이야기의 살이 붙고 또 붙었다. 보편적인 틀 안에서 보는 것 외에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발언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끄집어내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거기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았나 싶다"

단언컨대 '하이힐'은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또한, 무거운 영화도 아니다. 이 작품은 성 소수자의 운명과 고통을 거르지 않고 이야기 하면서, 상업영화로서의 미덕 즉 재미를 놓치지 않는 작품이다. 장진 감독은 그 부분만큼은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다.

장진감독

"중반까지는 대중적인 코드로 진행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어떤 터치로 갈 건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단지 관객이 소재에 의해 가질 선입견에 대한 걱정은 조금 있었다. 소재와 줄거리를 오픈했을 때 원천적인 이야기나 주인공의 변화 여부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이 영화의 진짜 메시지는 가려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같은 건 있었다.

소재의 무게감을 유지하면서 남과는 조금 다른 인물의 희화화시키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드라마와 코미디의 균형은 영화를 찍는 내내 신경썼던 부분이다. 장진 감독에겐 이 모든 무게를 분담할 훌륭한 파트너 차승원이 있었다. 차승원은 그 어떤 배우보다 남성성이 극대화된 인물, 내면의 여성을 드러내야 하는 지욱 역할에 그를 떠올린 이유가 궁금했다.

"시나리오 쓰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배우가 차승원이었다. 외모적으로 여성성이 느껴지는 남자를 찾지 않았다. 오히려 남성미가 두드러진 남자 배우여야 내면의 여성성을 지닌 '지욱'이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 차승원이 딱 맞았다"

두 사람은 '박수칠 때 떠나라', '아들'을 함께 하면서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이번 작품은 무려 6년 만의 호흡이었다. 작품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의견 충돌도 적잖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하이힐'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장진 감독은 "우리 영화의 원제는 '소머즈 부인의 사랑'이었다. 초고에는 지욱이 유부남에 처자식이 있는 캐릭터였다. 차승원 씨가 그런 상황에서 인물이 성전환이라는 선택을 하는 것이 이해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 많은 대화 끝에 지욱을 싱글로 바꿨고, 제목도 수정했다"고 밝혔다.

장진감독

액션에 대해서도 이견은 있었다. 차승원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수많은 액션을 소화한 바 있는 베테랑이었고, 장진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액션물에 도전한 것이었다.

"워낙 액션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기에 그의 의견을 존중해줬다. 액션이라는 게 한방을 위해서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더라. 내가 '오케이' 해도 승원씨가 워낙 프로정신이 강하다보니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면 꼭 다시 해야겠다고 하더라. 그렇게 치열하게 짜낸 것들이 확실히 다르더라. 완성된 신들을 보고 승원씨 몸짓과 얼굴과 느낌에 감탄했다"

장진 감독은 '하이힐'의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오롯이 배우의 공, 특히 차승원의 덕이라고 했다. 장진은 "액션은 말할 것도 없고 인물의 고통과 아픔을 담아낸 눈빛이랄까. 그런 감정의 섬세함을 놀랍도록 잘 표현해냈다. 그런 것은 감독이 아닌 배우의 능력이다"라고 칭찬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르러서는 흥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처럼 들지 않는 관객, 터지지 않은 반응에 조바심도 날 법하다. 과거의 성공과 현재의 부진이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어떤 영화도 절대 지지 속에서 시작하진 않는다. 지금 이런 순간도 우리가 이겨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배급 상황과 소재의 선입견에 대한 넋두리를 트위터에 올렸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건 우리끼리나 할 이야기였는데... 시기 탓, 소재 탓, 관객 탓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이 영화가 흥행이 안된다면 그건 내 능력의 한계일 것이다"

장진은 "지금 열려있는 스크린에서라도 많은 관객이 와주면 좋은데, 나쁘지 않은 작품들이 비슷한 덩어리로 걸려 있다보니 우리 영화에 관객이 들어오게끔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를 즐겨야 한다. 한 극장에 비슷한 규모로 다양한 영화들이 걸리고 있다는 건 관객에게 좋은 일"이라며 "우리 영화도 보시고 재밌다는 입소문을 많이 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재에 대한 선입견이 관객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기자의 말에 장진 감독은 "트렌스젠더나 성 소수자란 말 때문에 부담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뜻밖의 재미, 즉 초중반까지 보여지는 독특한 코미디, 차승원이 보여주는 질이 다른 액션에 대한 만족감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선입견을 넘어설 영화의 재미를 강조했다

또 "어떤 이들은 우리 영화가 과도하게 잔인하다고 하는데 여자 관객들의 경우 영화를 보고 난 뒤 차승원의 슬픈 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할 정도로 정서적인 부분에 대한 공감이 크더라"고 영화가 가진 미덕을 어필했다. 

장진감독

'하이힐'은 조만간 감독판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장진 감독은 편집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잘려나간 신들을 살린 디렉터스 컷을 상영할 계획이다.

"지금 상영버전에서 12분 정도 추가될 것 같다. 오지호, 윤손하, 김예원 등의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해줬는데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갔다. 내가 오케이해서 찍은 신들인데 결국 내 능력부족으로 편집이 됐다. 미안하다. 몇몇 아까운 장면들도 꽤 있어서 감독판 상영을 하기로 했다. 아마 2~3주차 즈음 극장에 걸릴 것이다" 

장진 감독은 임권택 감독과 함께 오는 9월 19일 시작될 인천아시안게임 개,폐막식의 총연출을 맡아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연극 연출가로도 명성을 날려온 그이기에 이번 행사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 밖에 없다.

그는 아시안게임에 대해 "공연 연출하는 사람에게 스타디움 퍼포먼스는 최고의 기회다. 단 한번의 공연에 45억 가량 투입되다 보니 영광스럽기도 하면서 부담도 크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작가, 연극 및 TV쇼 연출, 국가적 스포츠 행사의 총감독까지 그야말로 팔방미인의 재주를 과시하고 있는 그지만, 역시나 가장 행복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일이다.

"20년 넘게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점점 더 좋아진다. 또 이제야 더 알아가는 것 같고. 영화라는 건 참 끊임없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영역인 것 같다"    

장진 감독의 시계는 여전히 빠르게 흐른다. 아시안 게임을 끝낸 뒤에는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개봉 준비에 들어간다. 더불어 올 연말, 내년 초 쯤에는 또 다른 특급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건 '하이힐' 다음의 이야기다. 지금은 오로지 '하이힐'에 대한 생각 뿐이었다. 이미 감독의 손을 떠났지만, 이 영화가 보다 많은 관객과 소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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