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마이클 유슬란이 밝힌 '배트맨' 시리즈의 탄생과 진화

김지혜 기자 작성 2013.10.01 18:04 조회 2,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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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SBS SBS연예뉴스 | 제천=(충북) 김지혜 기자] 경쾌한 인사말과 함께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마이클 유슬란(62)은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배트맨 시리즈의 제작자인 그가 경쟁사 마블 코믹스의 히트 캐릭터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은 퍽 인상적이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슈퍼 히어로를 좋아한다. 스파이더맨도 아주 좋아하는 캐릭터다. 이 넥타이는 스탠 리('스파이더 맨' 원작자)가 내게 직접 선물한 것이다"

지난 9월 30일 충청북도 제천에서 열린 제38회 세계영상위원회(AFCI) 총회에 게스트로 참석한 유슬란은 기조연설을 하루 앞두고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나눴다.  

마이클 유슬란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할리우드에서는 파워맨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슬란은 오늘날 가장 성공적인 히어로 무비로 꼽히는 '배트맨'을 영화화시킨 인물. 어린 시절부터 만화광이었던 그는 20대에 '배트맨' 판권을 구매해 '배트맨'(1989) 1편부터 지난해 선보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에 이르는 전 시리즈에 제작자로 참여했다. 

'배트맨' 시리즈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전세계 관객을 사로잡은 이유에 대해 그는 "인간적 매력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슈퍼 파워를 가지지 않은 평범한 인물이고, 어린 시절 부모의 살인을 목격한 뒤 자신의 인생을 희생한 인물이다.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자신의 희생이 단 한 사람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비록 자신은 매일매일 지옥을 걷는 과정을 거치더라도. 배트맨이 오늘날 도시의 무사이자, 히어로라는 점도 인기를 끄는 이유인 것 같다"

배트맨

야심 차게 판권을 구매했지만, 영화화되기까지 무려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배트맨'을 영화 소재로 거들떠본 사람은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트라우마로 어둠의 도시 '고담'을 배회하며 악과 맞서 싸우게 된 배트맨은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밝고 건강한 영웅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TV 시리즈에서조차 배트맨은 괴력을 자랑하며 실없는 유머를 구사하는 캐릭터로 소비되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어린 청년이 '배트맨'의 판권을 구매할 수 있었냐고. 당시에는 '배트맨'의 판권을 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1970년대에 '배트맨'이 TV시리즈로 방영된 후 DC코믹스의 사장조차 "이제 배트맨의 인기는 끝났다. 판권을 사지 말라"고 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난 어려서부터 '배트맨'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순간을 꿈꿔왔다"

유슬란은 영화 '배트맨'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팀 버튼 감독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팀 버튼은 배트맨의 원래 캐릭터와 비전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배트맨을 공감 가는 캐릭터로 그리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부모가 살해 당한 브루스 웨인의 트라우마를 관객들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고담시'라는 공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1989년 그 당시로써는 엄청난 규모의 세트를 지었다"고 회상했다.

배트맨

'배트맨' 시리즈가 여타 히어로 무비와는 다른 위치에 오르게 된 데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의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유슬란은 "'배트맨'의 성공 이후 영화 자체만큼이나 캐릭터 상품, 장난감, 게임 등 부가 가치 창출에 눈이 쏠렸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영화가 아닌 2시간짜리 장난감 광고를 만들게 된다. 개가 꼬리를 흔드는 게 아니라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이때 워너브러더스는 굉장한 배짱으로 '메멘토'를 만든 크리스토퍼 놀란을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면서 시리즈의 3대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입 배경을 전했다. 

유슬란은 놀란에 대해 "팀 버튼과는 또 다른 천재 감독"이라고 칭한 뒤 "팀 버튼의 배트맨이 만화책 속 흑백의 캐릭터를 영화 속 인물로 그려냈다면, 놀란은 배트맨을 우리 사회에 사는 실존 인물처럼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 시리즈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줄기로 뻗어 나갔다. 유슬란은 "놀란은 단순히 만화책을 스크린에 잘 옮긴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장르 영화의 수준을 굉장히 높여놨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놀란은 고담시를 판타지 속 세트가 아닌 실제 우리가 사는 도시처럼 보이고자 했다. 그 때문에 자유의 여신상,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뉴욕이 아닌 시카고를 촬영지로 택했다. 또 놀란은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배트맨이 아닌 브루스 웨인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가 트라우마를 겪으며 자신을 발견해가는 여정에도 많은 힘을 주었다. 조커도 '어떻게 그리면 실존 인물처럼 보일까'라고 고민하다가 오늘날의 테러리스트처럼 그렸다. 무엇보다 만화책 속 단순한 선악 구조가 아니라 질서와 혼돈의 대립 등 보다 깊이 있는 세계를 만들어냈다"

다크나이트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시장은 히어로 무비가 점령한 지 오래다. 히어로 무비의 범람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문명이 시작된 이래 수천 년간 영웅과 무사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왔다. 성경 속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보라. 코란도 마찬가지다. 이건 어떤 나라, 어떤 문화에도 존재하는 이야기다. 이것의 연장선이 히어로 무비라고 생각한다. 많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좋은 스토리 텔링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제작비를 많이 쓰고, 좋은 배우를 기용하고, 3D나 특수효과를 많이 써도 이야기의 다채로움과 캐릭터의 깊이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한국 출판 만화 시장의 쇠퇴와 웹툰의 시장 확대 등에 대한 일련의 환경 변화를 전하자 "미국 역시 출판 만화는 쇠퇴하는 추세"라며 "미국에서는 '웨비소드'(webisodeㆍ웹과 에피소드의 합성어)라는 3분 내외의 영상만화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미래는 뉴디미어가 주도할 것이다. 패러다임의 이동은 불가피하고 새로운 플랫폼을 잘 성장시키는게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배트맨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배트맨' 시리즈를 제작하며 블록버스터 흥행사를 썼고, 아카데미 상도 받았지만 그에게 의미 있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배트맨'의 애니메이터로 활약하며 로빈, 조커 등의 핵심 캐릭터를 만들어낸 제리 로빈슨(2011년 사망)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린 기억이다.

"2008년 뉴욕에서 '다크 나이트' 프리미어를 할 때 어린 시절 내 영웅이었던 제리 로빈슨을 초대했다. 그는 혼자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는데 내가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레드카펫에서 취재진을 향해 "이 분은 제리 로빈슨이고, 조커와 로빈을 만든 창시자"라고 소개했다. 90세의 만화작가가 평생 처음으로 자신이 한일에 대해 인정을 받은 순간이었다. 그날 파티에서 그는 데니 드 비토와 애론 에크하트, 크리스찬 베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받았다. 인생 최고의 밤이었다고 하더라"

마이클 유슬란의 '배트맨' 이야기는 히어로 무비 최초로 슈퍼맨과 배트맨이 동시에 출연하는 '맨 오브 스틸 2 : 배트맨 vs 슈퍼맨'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는 "만화책과 슈퍼 히어로는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생에 있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37년간 이 일을 하고 있지만, 내 안에는 아직 12살의 소년이 살고 있다"며 자신의 열정을 자랑해보였다.

ebada@sbs.co.kr

<사진 = 세계영상위원회 총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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