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부산행'은 투자·배급사 뉴(NEW)의 세 번째 천만 영화다. 2008년 창립한 뉴는 8년 만에 무려 세 편의 천만 영화를 만들어 냈다. 업계 1위인 CJ엔터테인먼트와 흥행 타율이 제일 높다는 쇼박스와 비교해도 기간 대비 천만 영화 편수가 가장 많다.
앞선 천만 영화 '7번방의 선물'(감독 이환경)과 '변호인'(감독 양우석)이 예상하지 못한 대박이었다면, '부산행'은 의도하고 계획한 결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행'은 뉴의 기획력과 추진력 그리고 성취에 관한 의미 있는 지표가 될 만하다.
뉴 영화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장경익 대표가 밝힌 '부산행' 성공의 특별한 의미를 전한다.
◆ '부산행'의 시작…연상호 감독과의 첫 만남
'부산행'의 흥행 신화를 설명하기에 앞서, 시계추를 돌릴 필요가 있다. 연상호 감독이 뉴와 인연을 맺었던 그 역사의 시작으로 말이다.
"몇 해 전 부산영화제가 끝나고 전화 한 통이 왔다. "대표님, 저 '돼지의 왕'(2011) 만든 연상호 입니다. 한 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라고 하더라. 당시 '돼지의 왕'을 챙겨보진 못했지만, 그해 부산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에 알고는 있었다. 약속을 잡아놓고 영화를 봤다. 놀라웠다. 막연하게 이 감독과는 앞으로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감독이 투자·배급사에 직접 전화하는 일은 흔치 않다. 연상호 감독의 패기와 강단을 엿볼 수 있는 행동이다. 장경익 대표는 "연상호 감독이 투자배급사를 찾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레드피터('부산행' 제작사)의 이동하 대표가 내게 연락을 한 번 해보라고 번호를 줬다더라"고 말했다.
장경익 대표에게 당시 연상호 감독은 신인에 지나지 않았을 터. 어떤 가능성을 엿봤냐고 묻자 "유머러스하면서도 성실한 면이 마음에 들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는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이다. 게다가 가정에도 충실한 가장이다. 또 "저는 애니메이션으로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도 좋았다. 크레이티브하면서도 성실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연상호 감독은 장경익 대표와의 만남에서 '사이비'의 투자배급을 의뢰했다. 장경익 대표는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가족 관객 대상이 아닌 성인용 작품이다. 이야기도 세고 정서도 어두운 편이다. 시장이 작아 수익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당장의 성과보다는 먼 미래를 그렸다. 그래서 무조건 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뉴는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투자·배급을 시작으로 스튜디오 다다쇼(대표 연상호)제작의 '발광하는 현대사'(감독 홍덕표)의 투자·배급도 맡았다.
사실 장경익 대표는 '사이비' 아이템을 가지고 왔을 때부터 실사를 제안했다. 장 대표는 "굉장히 뛰어난 이야기꾼이기에 실사로 만들었을 때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상호 감독이 꼭 실사영화를 했으면 했다는 생각과 더불어 규모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서울역'의 시나리오를 보고 실사 영화 제작을 다시 한 번 권했다. 이때 비로소 연상호 감독은 시퀄 격인 실사 영화 '부산행'의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그렇게 2편의 영화로 이어진 '부산행' 프로젝트가 태동했다.
◆ 'NEW' 2기의 서막…첫 '천만 영화' 프로젝트
'서울역'은 2014년 말 작업을 완료했다. 그리고 '부산행'은 지난해 8월 촬영을 마쳤다. 두 편 모두 완성으로부터 1년 이상 지난 시점에 대중에게 공개된 셈이다. 두 영화는 왜 묵혔다 개봉하게 됐을까.
"'7번 방의 선물'이나 '변호인'과 달리 '부산행'은 기획부터 목표치를 높게 잡고 들어간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천만 영화는 톱 감독과 멀티 캐스팅, 대형 제작비라는 삼박자를 갖추고 있다. '부산행' 역시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면 기대치가 올라간다. 그 기대치를 만들어 내는 작업을 천천히 해나갔다. 일례로 '부산행' 열기의 시발점이 된 칸영화제는 우연히 얻어걸린 게 아니라 처음부터 겨냥했다"
장경익 대표는 "'부산행'은 지난여름 촬영을 끝내 더 빨리 개봉할 수도 있지만, 칸영화제 출품을 위해 개봉 시기를 늦췄다. 영화관계자들에게 연상호 감독은 실력파로 알려졌지만 일반 관객들에겐 생소한 사람이었다. 연상호 감독에 대한 존재감과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기 위해 칸 영화제의 권위가 필요했다"고 부연했다.
출품 부문 역시 영화의 장르와 특성을 고려해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을 노렸다. NEW의 전략은 아귀가 딱딱 맞았다.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된 '부산행'은 해외 언론의 호평을 받았고 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로부터 "역대 최고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이라는 극찬을 얻기도 했다. 올해 영화제 최대 수혜자는 3년 만에 경쟁 부문에 진출한 '아가씨'가 아닌 '부산행'이었다. 그만큼 칸느발 마케팅 효과는 폭발적이었다.
칸영화제 호평 이후에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7월 말 개봉까지 무려 두 달간의 텀이 있었기 때문이다. 칸 진출작들은 대부분은 마케팅 효과를 이어가기 위해 한 달 이내로 개봉일을 잡는다. 하지만 기획단계부터 최대 성수기를 겨냥했던 '부산행'은 더운 여름이 오기를 기다렸다.
장 대표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하는 좋은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영화에 대한 자신감과 가치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여유였다"고 웃어 보였다.
'부산행'은 경쟁사 3사와의 눈치작전 없이 일찌감치 개봉일을 7월 20일로 공표했다. NEW 창립 이래 여름 시장에서 경쟁사를 제치고 개봉일을 선점한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감은 결과로 입증됐다. 개봉 첫날 전국 8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개봉일 최고 기록을 세웠고, 단 19일 만에 천관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여름 시장의 최종 승자는 '부산행'이었다.
◆ 연상호와 계속 간다…차기작 '염력'도 투자·배급
'부산행'이 장르 영화의 새 비전을 제시하며 관객들을 사로잡자 연상호 감독에 대한 주가도 치솟았다. 그러나 뉴는 일찌감치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투자·배급을 확정했다. 지난달 17일 열린 '부산행' 천만 미디어데이에서 연상호 감독과 장경익 대표는 차기작 '염력'의 제작을 공표했다.
'염력'은 우연하게 초능력(염력)을 갖게 된 한 남자가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리게 된 딸을 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연상호 감독의 또 다른 장르 실험인 동시에 비주얼 아티스트로서의 비전을 보여줄 역작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주연배우도 류승룡과 심은경으로 확정한 상태다.
뉴는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실사영화도 함께하며 파트너쉽을 공고히 했다. 이는 경쟁사에 비해 흥행감독과의 작업이 적었던 뉴의 과거에 비쳐볼 때 의미 있는 행보이다.
CJ가 업계 1위라는 위치적 이점과 막강한 배급력으로 윤제균, 류승완 등 흥행 감독을 선점하고, 쇼박스 역시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최동훈, 김용화, 윤종빈 등의 일급 감독과 장기 계약을 맺어왔다. 그러나 뉴는 이점에 있어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뉴가 오랜 기간 지원한 연상호 감독을 일급 연출가로 성장시키고 차기작 역시 함께하는 그림은 그야말로 아름답다고 볼 수 있다.
'부산행'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결과와 연상호 감독의 발굴은 뉴가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는 좋은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의 보다 새롭고 원대한 미래의 서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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