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6일(수)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가능한 사랑'이 있다…'넷플릭스 영화'를 바라보는 달라진 시선

작성 2026.08.26 14:10 조회 5
이창동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극장용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 투자처를 찾았는데 쉽지 않았다. (그 목표가)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게 됐을 때 넷플릭스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이창동 감독이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 공개를 앞두고 있다. 이 소식은 지난해 영화계를 달군 '빅뉴스'기도 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가능한 사랑'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중예산 한국 영화 제작지원금 15억 원을 지원받아 순조롭게 제작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원금 외 나머지 제작비를 조달하는데 실패했다.

결국 '가능한 사랑'은 영진위 지원금을 포기하고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는 넷플릭스와 손잡았다. 이 소식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조차 제작비 마련이 어려워 '극장용 영화'를 포기해야 하는 영화계의 현실을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가능한 사랑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혹자는 제작 규모를 줄이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냐고 할지 모른다. 이창동은 작가주의 감독이지만, 영화의 제작 규모는 독립 영화 수준이 아니다. 톱배우가 출연하고 촬영과 음악, 미술 등 각 분야 최고의 스태프를 구성한다. 저예산으로는 제작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창동 감독의 전작인 '버닝'(2018)은 제작비 약 80억 원을 투입했지만 전국 52만 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이 작품은 그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고, 국내외 평단에서 그 해 최고의 영화로 거론되기도 했다. 흥행은 또 다른 문제다. 어떤 영화는 작품의 흥행성보다 작품성이 더 높은 가치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상업 예술이기도 한 영화는 '투자 대비 수익'이라는 계산기가 철저하게 돌아가는 영역이기도 하다.

전작의 아쉬운 결과와 코로나19라는 변수는 이창동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에 악재로 작용했다. 영화계 위축된 투자 환경에서 메이저 투자배급사, 중소 투자배급사들조차 '가능한 사랑'의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이창동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창동 감독은 넷플릭스 영화를 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넷플릭스 영화를 하기로 결정했던 지난해는 한국 영화의 체질이 가장 약화된 시기였다. 영화계가 언제 어떻게 회복될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때 넷플릭스가 '가능한 사랑'의 구원투수가 됐다. 제작비 전액 지원은 감독과 제작사의 모든 시름을 단번에 날릴 수 있는 제안이다. 그럼에도 남는 아쉬움은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매체'라는 것. 이는 '극장 상영'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극장주의자인 영화감독들이 마지막까지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다. 넷플릭스는 이창동 감독에게 '선개봉 후 스트리밍'라는 매력적인 카드를 내놓았다. 이창동 감독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됐다.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에 '선개봉'을 제안을 한 건 사실상 최초의 일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플랫폼의 정체성을 깨는 예외적인 혜택을 '가능한 사랑'에게 준 건 그럴만한 가치와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가능한 사랑 스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넷플릭스는 2022년 NEW와 콘텐츠 판다 출신 김태원 디렉터의 진두지휘 아래 한국 영화 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5년간 23편의 영화를 만들며 제작 역량과 시장 파이를 키웠다. 타이밍상 스텝업을 노릴 시기가 왔다. '가능한 사랑'은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시선,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를 그저 '투자 대비 효율'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 3대 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본 것이다.

'거장 이창동'을 파트너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로 인해 발생하는 유, 무형의 효과가 있다. 영화계 관계자는 "그간 킬링타임용 영화, 콘텐츠 수급에 집중했던 5년이었다면 이제는 '작품'을 만들 시기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시점에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본은 무엇이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이 가장 열렬하게 쫓는 건 사람이라는 자산이다. 이창동 감독과 넷플릭스의 만남은 그렇게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져 낸 앙상블이다.

이창동 감독은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 아래 '가능한 사랑'을 완성했다. 그는 제작 전 과정에 걸쳐 어떤 간섭이나 요구를 한 적 없으며 감독으로서 독립성을 인정해 줬다고 전했다. 덕분에 164분이라는 '극장용 영화'로는 핸디캡으로 평가받을 러닝타임도 지켜냈다.

가능한 사랑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가능한 사랑'은 9월 23일 극장에서 먼저 상영을 하고, 11월 6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자들과 만난다. 두 매체를 통해 폭넓은 대중과 만나는 특별한 방식의 기회를 얻었다. 선개봉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제한 기한 동안에만 볼 수 있다는 메리트 때문에 관객을 극장으로 모으게 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넷플릭스는 이를 통해 영화의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고,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더불어 해외영화제도 집중 공략한다. 오랜 기간 칸영화제의 지지를 받았던 이창동 감독은 이번에는 베니스행 비행기, 리도행 배에 오른다. OTT 영화에 문을 열어놓은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오아시스'(2002년 감독상, 신인배우상) 이후 또 한 번의 수상을 노린다.

넷플릭스는 베니스에 이어 하반기부터 시작될 미국 아카데미 레이스도 지원한다. 국내 선개봉은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출품 조건(국가 내 최초 공개와 상업 극장 연속 7일 이상 상영)을 맞추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이창동 감독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지금까지 영화 제작을 한 것보다 가장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넷플릭스와의 제작 협업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영화의 개봉은 물론 영화제 레이스에서도 넷플릭스의 확실한 지원과 네트워킹의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 로고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베니스에서의 수상은 심사위원의 취향과 영화제의 방향성에 따른 결과지만 아카데미 레이스는 자본과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지난해 '어쩔수가없다'의 경우 북미 배급사 네온과 손잡고 아카데미 레이스를 치렀지만 한 집안에서 네 편의 영화들과 경쟁하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물론 넷플릭스 역시 아카데미 레이스에서 '가능한 사랑'만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중소 배급사인 네온과 체급이 다른 회사다. 전담팀을 구축해 '가능한 사랑'을 지원할 확률이 크다.

멕시코 출신의 거장 알폰소 쿠아론은 2018년 넷플릭스 영화 '로마'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석권했다. 할리우드 거장 마틴 스콜세지는 77살의 나이에 '아이리시맨'(2019)으로 넷플릭스와 처음 손을 잡았다. 이후 차기작 '플라워 킬링 문'에서는 애플TV와 손 잡았다. 두 영화 모두 아카데미 주요 주문에 올라 무수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작품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세븐', '소셜 네트워크'를 만든 데이빗 핀처는 넷플릭스와 10년간 독점 계약을 맺고 세 편의 시리즈와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 장기 계약을 두고 할리우드 일각에서는 "악마와 거래를 맺었다"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는 보란 듯이 2027년까지 연장 계약을 맺었다.

오디세이 극장 스케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영화가 물리적 매체로 출시되지 않는다고 해서 영화가 아니라는 시선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영화가 자본에 종속됐다거나, 영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비극적 전망도 섣부르다.

130년의 영화 역사는 그렇게 쉽게 저물지 않는다. 영화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유동적으로 변하며, 영화를 만드는 이들 역시 그에 따라 능동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대한 이창동 감독이 남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산업의 구조는 바뀌어가고 있고 변화의 추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결국은 공존해야 한다. 다만 그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관객과 가까워질 수 있는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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