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입소문이 심상치 않다. '왕과 사는 남자'의 뒷심을 넘지는 못했지만 박스오피스 2위권을 유지하며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2026년 개봉한 외화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다.
해외에서의 인기는 더 뜨겁다. 지난 주말 전 세계 누적 수익 3억 800만 달러를 기록하며 '크리드3'(2억 7,600만 달러)를 넘어 역대 아마존 MGM이 배급한 영화 중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기억 없이 우주 한복판에서 혼자 깨어난 그레이스가 종말의 위협을 맞이할 인류를 구할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 여정을 그린 작품. '마션'의 원작자로 유명한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SF로 라이언 고슬링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SF 장르의 진입장벽을 온기 가득한 이야기와 연출, 연기로 깬다. 빛을 먹는 외계 미생물 아스트로파지가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해 지구 생명을 멸종 위기로 몰아넣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학교 과학교사 그레이스가 항성 타우 세티로 향하는 편도 임무에 투입된다. 함께 임무에 투입됐던 동료들은 모두 사망하고 기억을 잃은 채 홀로 살아남은 그레이스는 로키라는 외계 동료와 교감을 나눈다.
소재만 보면 어려운 과학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하드 SF로 보이지만 영화에 걸맞은 영리한 각색으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작가의 상상력을 시청각의 예술인 영화로 구현해 내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방대한 이야기를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압축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필 로드, 크리스 밀러 감독의 세련된 연출도 큰 몫을 하지만 라이언 고슬링의 원맨쇼의 지분이 크다. 라이언 고슬링은 할리우드에서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익히 정평이 나있다. '라라랜드', '드라이브', '바비', '블레이드 러너 2049', '나이스 가이즈', '빅쇼트', '킹메이커', '노트북' 등 멜로, 코미디, SF, 스릴러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하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왔다.
전체 2시간 36분의 러닝 타임 중 절반 이상을 우주에 고립된 채로 등장하는 고슬링은 촬영 기간 내내 제작진이 만든 로키 퍼펫을 보며 연기했다. 파트너는 인형이지만 목소리는 인간이 냈다. 뉴욕 연극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퍼펫티어 제임스 오티즈가 로키의 목소리를 맡았다. 오티즈는 촬영 현장에 마련된 별도의 부스에서 로키의 대사를 직접 읊으며 라이언 고슬링과 호흡을 맞췄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에서는 고립된 인간이 생존과 싸우는 서사가 필연적이다. 미지의 세계인 우주는 신비의 공간인 동시에 예측불가능한 위험이 도사리는 무대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는 고독과 불안이다. 그레이스는 귀환이 요원한, 우주에 버려진 인물이다. 라이언 고슬링은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인 고독과 불안을 섬세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낸다. 특유의 쓸쓸한 눈빛과 싱거운 유머는 관객을 잡아둔다.
영화는 지구에서의 이야기와 우주에서의 이야기 두 개의 서브플롯을 동시에 진행시킨다. 다소 긴 불량을 할애하는 듯한 지구 파트는 중반부를 넘어가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였음을 알게 된다. 특히 그레이스가 기억을 회복하며 알게 된 진실은 꽤나 충격적이다. 이 작품을 통해 할리우드 영화에 데뷔한 독일 명배우 산드라 휠러의 연기 역시 압권이다.
인간과 우주 생명체의 교감은 SF 장르에서 클리셰에 가까운 설정이다. 'ET'의 변형판이라 할 수 있는 로키의 존재와 캐릭터는 이 영화가 선사하는 유머와 감동의 핵심이다. 우주라는 공간, 그곳에 사는 미지의 생물체는 인간의 시선에서 묘사되어 왔고, 개발이나 정복의 대상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로키의 시선을 경유하며 폭넓은 관점의 묘사가 이뤄진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는 대의라는 이유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자비한 순간이 있는 반면, 나를 보듬어준 상대를 향한 조건 없는 희생도 등장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가장 가슴 따뜻해지는 순간은 로키의 눈에 비친 그레이스의 발견이며, 그를 향한 희생의 순간이다.
영화가 선사하는 결말은 지나친 낙관과 한도 초과된 낭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냉기 가득한 장르인 줄 알았던 SF에서 끝까지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락(樂)이 아닐까. 로키가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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