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뮤지컬 '데스노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정의'(正義)다. "진리에 맞는 도리"라는 사전적 의미는 명료하지만, 그 실예를 발견하는 것이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여겨지는 시대다. '데스노트'는 라이토와 엘의 대립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을 거듭해서 던진다.
'데스노트'는 사신의 노트인 데스노트를 손에 넣은 후, 사회의 악을 처단해 정의를 실현하려는 천재 고교생 라이토와 그를 추적하는 명탐정 엘의 두뇌 싸움을 그린 작품.
2004년 연재된 동명의 일본 만화는 빼어난 완성도로 독자들을 열광시켰고 2006년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두며 '원소스 멀티유즈'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2015년 한국에서 초연한 이래 4연까지 할 정도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 원작의 뮤지컬인 데다 공연 시장에서는 다소 생소한 현대 배경의 범죄 스릴러라는 점에서 초연 당시부터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2022년부터는 오디컴퍼니가 제작을 맡아 새로운 프로덕션을 선보이고 있다.
10주년을 맞은 '데스노트'는 세대교체의 신호탄 같은 캐스팅을 발표했다. '데스노트'하면 익숙한 홍광호, 강홍석, 김선영, 정선아, 박혜나가 빠지고 조형균, 김민석, 임규형, 산들, 탕준상, 김성규라는 새로운 캐스트를 내세웠다. 장장 7개월이라는 장기 공연을 고려해 1차보다 더 화려한 2차 캐스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데스노트'가 낳은 스타 김성철, 김준수, 고은성이 합류했고 규현이 새롭게 가세했다.
'데스노트'는 사회에서 잇따라 벌어지는 범죄사건을 추적하는 메인 플롯으로 범인 찾기의 서스펜스를 자극하고, 이 과정에서 사적제재라는 화두를 던진다. 경찰과 검찰 등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회악을 직접 처단한 개인은 영웅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라이토와 경찰(사법체계)의 대리인으로 나선 명탐정 엘이 대결구도를 조성하며 흥미를 자극한다. 라이토는 "착한 사람들만 사는 세계를 만들거야. 그리고 나는 신세계의 신이 된다"라는 자신만의 명분을 내세우며 일본 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자 한다. 사회악을 잇따라 처단하며 영웅 대접을 받자 라이토의 범죄는 더욱 대담해지고 이성적 판단마저 흐릿해진다. 엘은 이런 라이토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그를 추격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관, 신념 등을 다루며 정치와 사회 이념의 문제로까지 이야기의 범위를 확장한다. 라이토와 엘의 대립을 선과 악의 대결로 국한하지 않고, 가치관과 신념의 대립으로 다룬 것 역시 매력적이다. 또한 진실보다는 자극을 쫓는 매스컴과 언론을 향한 풍자도 놓치지 않는다.
라이토를 연기한 임규형은 군더더기 없는 연기와 어떤 감정 상태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노래 실력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하게 잡는다. 역대 가장 사랑받은 엘이라 할 수 있는 김성철은 3년 만의 복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노련하다. 날카로운 추리력, 뜨거운 승부욕, 종잡을 수 없는 심리 상태 등의 다채로운 감정을 차가운 카리스마로 표현해 냈다.
뮤지컬이지만 영화적이다. 이는 애니와 영화라는 이미 대중에게 인정받은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실험적 시도였다. 하나의 무대에서 여러 공간을 구현해야 하는 라이브 공연의 한계를 '데스노트'는 대형 스크린과 LED 연출로 극복한다.
고전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다수의 뮤지컬은 세트와 미술, 의상 등 실재하는 볼거리를 통해 그 시대로 관객을 안내하지만, 현대극인 '데스노트'는 이야기인 배경인 관동 지방 곳곳을 3D 화면으로 구현한다.
무대 바닥과 벽면, 천장까지 3면을 활용한 LED 영상은 각종 디지털 영상효과와 어우러져 도쿄의 거리, 교실 안, 경찰서 내부, 테니스 코트 등을 밀도 있게 구현한다. 일례로 시부야 거리의 군중신은 도입부의 스쳐 지나가는 장면 중 하나지만 마그리트의 명화 '골콩드'가 떠오를 만큼 기괴하고 서늘한 도시의 기운을 풍긴다. 이는 극 초반부터 관객을 이야기에 빠르게 몰입시키는 놀라운 효과를 낸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라이토와 엘이 테니스 경기를 하며 대립하는 장면이다. 레이저 프로젝터는 테니스 코트의 흰색 선을 쏘아 올리고, 코트는 360도 회전한다. 이 무대 위에서 임규형과 김성철은 쉐도우 복싱을 하듯 역동적인 모션으로 테니스를 치고 '놈의 마음속으로'까지 열창한다.
두 주인공만큼이나 빛나는 배우는 류크 역의 임정모와 렘 역의 장은아다. 수려한 보컬과 노련미 넘치는 연기로 카리스마는 물론 예상치 못한 웃음까지 선사하며 '데스노트'의 좌우 날개 노릇을 한다. 미사를 연기한 케이의 감성 연기와 보컬도 인상적이다.
'데스노트'는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충족하는 최고 수준의 장르 뮤지컬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데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물,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유효한 논쟁적 화두를 던지며 볼거리로 점철된 쇼뮤지컬 이상의 생각할 거리까지 선사한다. 여기에 '정의는 어디에', '가능한 일이라면', '데스노트', '키라', '사랑할 각오', '게임의 시작', '죽음의 게임', '생명의 가치', '어리석은 사랑' 등으로 이어지는 뮤지컬 넘버는 극의 주제 의식을 선명히 하는 가사와 강렬한 멜로디 라인으로 관객을 매혹시킨다.
관객의 꾸준한 사랑과 성원 속에 진화와 발전을 거듭한 '데스노트'는 지금 가장 무르익은 공연이다. 5월 10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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