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그때 우리 왜 헤어졌지?"
첫사랑 정원(문가영)과 십여 년 만에 재회한 은호(구교환)가 묻는다. 뜨겁게 불타올랐던 사랑의 기억은 생생한데, 엇나간 현재를 유발한 이별의 기억은 흐릿하다. 마치 남길 것과 버릴 것이 분명한 분리수거처럼 사랑과 이별의 기억이 자기도 모르게 분류된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을 잊어버린다. 어쩌면 잊은 '척'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과거의 나를 부정할 순 없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한 사람이다.
'만약에 우리'는 2018년 개봉한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리메이크작에게 따라붙는 원작과의 비교, '키재기'는 숙명이다.
'먼 훗날 우리'와 비교해 '만약에 우리'는 이야기의 층위가 얕다. 비행기에서 재회한 남녀가 과거를 반추하는 서사의 형식은 동일하지만, 단순한 멜로 영화에만 그치지 않은 원작의 풍성한 감성과 정서를 리메이크작은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이게 리메이크의 한계라고 한다면, 반론을 들기 힘들지만 '다른 영화'라는 측면에서 '만약에 우리'는 꽤 괜찮은 결과물이다.
한국 정서를 가미해 새롭게 태어난 '만약에 우리'는 청춘 멜로에 방점을 찍었으며, 사랑과 이별을 통한 두 남녀의 성장과 성숙에 힘을 실었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변주, '먼훗날'과 '어쩌면'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가 만약 반지하방으로 이사 안 갔으면 안 헤어졌을까?', "만약에 내가 그때 지하철을 탔으면 우리는 안 헤어졌을까?'와 같은 은호의 부질없는 'IF'들은 늦어도 한참 늦은 후회다. 힘없는 가정과 도리 없는 후회들은 지긋지긋해서 몸서리쳐질 만도 한데, 보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며 눈물을 유발한다. 사랑에 서툴렀던 '그 시절의 나'를 소환하기 때문이다.
그 구질구질한 가정이 돌아가고 싶다는 갈망의 표현은 아니다. "내가 너를 놓쳤어"라는 은호와 "아냐. 내가 너를 놓았어"라는 정원의 반응에서 알 수 있듯 엇갈림을 유발했던 어리석은 '과거의 나'에 대한 용서와 서로를 향한 화해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정원의 말도 진심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흑백과 컬러의 화면 전환은 연출적으로 중요한 요소다. 두 사람의 현재는 흑백으로, 과거는 컬러 화면으로 관객과 마주한다. 현재의 나는 한 뼘, 두 뼘 성장했는데, 색깔이 없다. 과거의 나는 고집스럽고 어리석었는데 파스텔톤 컬러로 묘사된다. 관객은 이 의미를 알 것이다.
이는 원작의 가장 핵심적 연출로 리메이크에서도 그대로 활용한다. 여기에 '만약에 우리'가 가미한 아이디어는 '빛'의 활용이다. 두 사람의 하나로 묶어준 약속의 언어인 '빛'은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유발하기도 하고, 가장 싸늘한 순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만약에 우리'가 고향의 맛 다시다 같은 향취를 남기는 것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고 진한 부자의 정, (유사) 부녀의 정을 내포했기 때문이다. '은호 아버지'를 연기한 신정근의 담백한 연기는 고흥이라는 지역 정서와 어우러져 '시골의 정'을 은은하게 전달한다. 물론 이 역시 원작과 비교하면 평면적이고, 단순하게 묘사된 감이 있다.
이 작품은 공간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정서의 토대가 되는 제3의 주인공의 역할을 한다. 두 주인공에게 도시는 꿈과 성공의 상징으로 기능하는데, 이러한 장밋빛 미래가 막연해지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도 흔들린다. 원작의 베이징과 야오장처럼 서울과 고흥이라는 공간을 이야기의 뿌리이자 줄기로 폭넓게 활용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우리'는 한국 상업 영화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여운 짙은 멜로 영화다. 원작의 이야기와 형식에 상당 부 분 빚을 지고 있지만, 멜로와 코미디의 비율을 조정하고 2000년대 한국의 밀레니엄 정서를 투영해 복고 감성을 부각한 연출적 센스도 돋보인다.
여기에 문가영, 구교환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만약에 우리'만의 색깔이 만들어졌다. 특히 문가영이라는 배우가 표현해 내는 다채로운 감정선은 이 사랑 이야기가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음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빛과 그림자라는 영화 테마와 어우러지는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가장 초라할 때 피어난 찬란한 사랑을 구체화했다.
미스 캐스팅으로 여겨졌던 구교환은 청춘의 열정과 패기, 무모함과 어리석음을 특유의 에너지로 발산해 내며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만 현재의 은호는 구교환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캐릭터와 연기라는 점에서 약간의 어색함을 노출한다.
'만약에 우리'는 개봉 2주차에 '아바타: 불과 재'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저력을 발휘 중이다. TV 매체가 대부분의 멜로 드라마를 흡수한 가운데 멜로가 영화 장르로는 경쟁력이 없다는 인식을 깨는 좋은 예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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