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물 들어올 때 노를 버린 남자"
최강록 세프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가장 인상적인 밈(MEME: 온라인 유행 콘텐츠)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2024년 '흑백요리사' 시즌1이 신드롬을 일으키고, 프로그램에 나온 대부분의 셰프들이 '특수'를 누릴 때 식당의 음식값을 올리거나, 매장을 확장하는 행보가 아닌 가게 문을 닫아버리는 선택을 했다. 방송의 인기와 파급력이 파생하는 '떡고물'을 받아먹어야 할 시기, 폐업과 잠수를 택한 최강록의 행보는 '기행'에 가까워 보였다.
그런 그가 '흑백요리사' 시즌2에 "나야, 재도전"을 외치며 또 한 번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올라가도 '본전', 떨어지면 '개망신'인 재도전의 부담감을 스스로 떠안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히든 백수저'라는 새로운 포지션으로 재도전에 나선 그는 심사위원 안성재와 백종원 모두의 선택을 받아 흑수저가 아닌 백수저로 계급 격상을 이뤄냈다.
지난 6일 공개된 11화에서 최강록은 또 한 번 '최강'의 요리 실력과 '바윗돌'같은 마인드 컨트롤로 결승에 직행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요리를 만화로 배웠다는 이 사람은, 이제 스스로 요리 만화 같은 서사를 써내려 가며 단 1회 만을 앞둔 '흑백요리사2'의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됐다.
◆ 소리 없이 강한 셰프…승부사 발톱을 드러내다
최강록은 소리 없이 강한 셰프다. 방송 초반 '히든 백수저', '흑백대결' 미션과 같은 개인전에서는 실력과 캐릭터를 드러내며 두각을 보였으나 단체전에서는 팀의 화합을 위해 개성을 죽였다.
'흑백요리사'를 시즌1부터 즐겨본 사람이라면 최강록이 팀전의 불운으로 탈락한 '찐 실력자'임을 알고 있다. 시즌1에서 팀원의 이기와 팀원 간 불협화음으로 조기 탈락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던 그는 시즌2에서는 비교적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며 다음 라운드 진출을 이뤄냈다.
최강록은 결승 진출권이 걸린 '무한 요리 천국'에서 드디어 발톱을 드러냈다. '조림 인간', '조림핑'이라는 자신의 별명에 걸맞은 조림 요리로 승부수를 띄웠다.
시즌1에서 에드워드 리가 '비빔밥'으로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것처럼, 최강록은 '무시즈지'(찜 초밥)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집약했다. 스페인어 전공, 해병대 입대, 스시집 창업, 일본 요리 유학, 망한 반찬 가게 사장, 무역회사 사원 등 종잡을 수 없는 행보였던 그의 삶을 여러 재료를 섞은 한 그릇 음식으로 형상화했다. 장어, 금태, 병어, 홍어 애, 전복, 표고버섯, 트러플, 다시마 등 재료를 각기 다른 소스로 일일이 조려 초밥 양념을 한 밥 위에 담아냈다. 허락된 마지막 시간까지 조리고 조려 소스가 재료에 깊게 스며들도록 했고, 음식 담음새에만 20분을 쏟았다.
흥미로운 건 전략이었다. 180분이라는 시간 동안 개수에 상관없이 요리를 내놓고 심사 위원의 최고점을 받으면 되는 룰로 진행된 이 미션에서 최강록은 단 한 가지 음식, 단 한 번의 도전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같은 시간 5가지 요리를 내놓은 임성근, 3가지 요리를 내놓은 요리괴물과는 비교된 행보였다.
최강록의 전략이 다소 위험했던 건 세 시간에 걸쳐 이미 20가지 이상의 요리를 심사하며 '식폭행'을 당한 안성재, 백종원의 입맛을 가장 마지막에 사로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한판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자기 요리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다.
한 그릇 음식이었지만 밥 위에 올려진 재료들은 각기 다른 조리법으로 맛을 낸 독립 요리에 가까웠다. 최강록은 재료들이 입에 들어가면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요리의 킥은 아이러니하게도 육수나 소스로만 쓰고 버리는 가장 초라한 식재료인 다시마였다. 당연하게도 '그의 의도'를 알아챈 백종원과 안성재는 최고점을 선사했다.
◆ "만화로 요리를 배웠다"는 서사마저 절묘…기발한 어록 제조로 호감↑
최강록이라는 셰프가 대중에게 인식됐던 건 2013년 방영된 '마스터 셰프 코리아2'를 통해서다. 덥수룩한 머리에 뿔테안경을 낀 '똘똘이 스머프' 이미지로 등장했던 그는 "어디서 요리를 배웠냐"는 심사위원 강레오의 싸늘한 질문에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를 보면서 요리를 배웠다"는 기상천외한 대답(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그가 세계 3대 요리 학교인 일본의 츠지한 출신이라는 이력은 편집됐다)을 내놓으며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는 깐깐한 강레오의 입맛을 거듭해서 사로잡은 끝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봤던 1등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4차원 캐릭터였지만 내놓은 음식은 하나같이 진미로 평가받았다. 음식의 맛은 최고지만, 프레젠테이션 능력은 '꽝'이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말주변이 없어 어순을 도치시킨 그의 화법에 오히려 열광했다.
12년 만에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온 그는 조금 달라져있었다. 요리 설명 능력은 여전히 아쉬웠지만, 어록 제조기 같은 멘트로 시청자들의 무릎을 치게 했다. 흑백대전에서는 '대파의 사생활', 결승 진출권이 달린 180분 요리 배틀에서는 '욕망의 조림 인간'이라는 기발한 워딩으로 자신의 요리를 집약했다.
최강록과 함께 '흑백요리사2'에 '히든 백수저'로 재도전에 나섰으나 조기에 탈락한 김도윤 셰프는 정지선 셰프의 유튜브에 출연해 "최강록의 모든 말과 행동은 계산된 것"이라는 평가를 한 바 있다. 물론 이 말의 진위는 확인할 수 없다. 확실한 건 그의 캐릭터와 말주변은 대중들의 호감을 산다는 것이다. 그게 의도된 전략이라면 그가 남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년 만에 '흑백요리사' 우승에 재도전한 최강록은 더 이상 재야의 무림 고수 같은 무념무상, 무욕의 캐릭터가 아니었다. 그는 "최후의 한 명이 돼야 생존의 의미가 있다"며 우승을 향한 전의를 불태웠다.
우승을 향한 욕망을 드러내기 시작한 최강록의 모습은 오히려 인간적이다. 생각해 보면 그는 야심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을 뿐 예나 지금이나 경쟁에 강하고, 승부에 사활을 걸 줄 아는 승부사다.
◆ 실력만으론 안 된다…시청자가 원하는 우승자의 자격
'흑백요리사' 시즌2는 시즌1과 달리 백수저의 대중적 호감도가 훨씬 높다. 시즌1에서는 흑이 백을 이기는 언더독 서사를 지지했다면 시즌2는 방영 초반부터 특정 백수저의 팬덤이 형성돼 뜨거운 응원전이 펼쳐졌다.
대중들은 그 이유로 상반된 인성과 태도를 언급했다. 흑수저는 강한 자기애와 자존심을 드러내는 인물이 많은 데 반해 백수저들은 수십 년의 경력과 명장 타이틀을 달고도 인간적이고 겸손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선입견을 공고히 한 예가 요리괴물과 손종원, 요리괴물과 후덕죽 셰프의 대결에서 엿볼 수 있었던 대비된 태도였다.
방송에 비친 모습이 그 사람을 온전히 설명한다고 볼 수 없고, 편집에 의해 부각된 캐릭터의 단면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 요리괴물은 경쟁 상황에서 나온 언행으로 자신의 인성이 재단당하는 것이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대중에게 노출되는 TV 프로그램 맹점이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왜 실력과 능력이 우선시되어야 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인격'을 언급하는 것일까. 어쩌면 현실에서 보기 드문 존재이기에 방송에서라도 뛰어난 실력에 훌륭한 인성까지 갖춘 유니콘 같은 존재를 찾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즌1에서 훌륭한 인품을 보여준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는 우승자보다 더한 찬사와 수혜를 받았고, 시즌2에서도 그런 사람을 찾았기에 손종원, 후덕죽 셰프의 인품과 발언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요리괴물'과 후덕죽 셰프의 마지막 당근 요리 심사를 앞두고 안성재 셰프는 '한 끗 차'를 언급하며 "얼만큼 잘하냐가 아니라 이 순간을 누가 가져가냐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흑백요리사'라는 서바이벌에 임하는 모든 도전자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결승에 진출하고도 "떨어지면 끝"라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임하는 승부사 최강록은 마지막까지 '이 순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일단 팔부 능선은 넘었다.
[김기자의 POV]는 기자의 시점(Point of View)으로 컨텐츠를 풀어내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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