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메가박스가 올해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1등상을 수상한 '첫여름'의 8월 6일 단독 개봉을 앞두고 허가영 감독과의 일문일답을 공개했다.
'첫여름'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41기 허가영 감독이 연출한 단편영화로, 손녀의 결혼식 대신 남자친구 학수의 사십구재(四十九齋)에 가고 싶은 영순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순의 개인적 내면과 사회적 기대 사이의 갈등 속에서 자신을 찾는 여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서사와 영순 역을 맡은 배우 허진의 깊이 있는 연기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올해 칸영화제 '라 시네프(La Cinef)' 부문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1등상을 수상하며 국내외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첫여름'은 오는 9월 2일(토) 메가박스 구의 이스트폴에서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이 모더레이터로 참여하는 메가토크를 진행한다. 허가영 감독은 이날 관객을 직접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특별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다음은 '첫여름' 허가영 감독의 일문일답-
Q.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 1등상 수상 후 전국 관객들과 만남을 앞둔 소감은?
"기쁘고 설렌다. 단편 영화의 극장 상영은 굉장히 드문데, 영화제를 너머 극장에서 많은 관객에게 이야기가 닿을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첫여름'이 관객들을 만나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어떤 새로운 의미를 얻을지 궁금하다. 이 영화가 그저 하나의 이야기로, 누군가의 삶으로, 그 자체로 사랑받길 희망한다. 더불어 다른 단편 영화들도 관객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Q. '손녀의 결혼식과 애인의 사십구재 사이를 고민하는 노년의 여성'이라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첫여름'의 첫 시작은 어땠나?
"'첫여름'은 제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됐다. 물론 대부분 픽션화됐지만 '영순'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한 뿌리는 외할머니다. 대학생 시절 할머니께서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다섯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대화는 마치 친구와 나누는 연애담 같기도 했고,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남은 여성의 영웅담 같기도 했다. 자신을 혐오하고 연민하면서도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그 움직임 그리고 춤을 출 때 얼마나 자신다워지는지 꿈꾸듯 말씀하시던 할머니의 상기된 얼굴이 제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노인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진 개인의 얼굴과 이야기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이후 할머니의 사십구재에서 스님들의 불경소리가 순간 콜라텍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드넓은 대웅전에서 누구보다 자유롭고 사랑스럽게 춤을 추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고, 아주 오랜 기간 그 장면에 사로잡혀 제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곤 했다. 첫여름은 이 장면으로부터 시작됐고, 이 장면을 향해 질주하는 영화다."
Q. 영화의 제목을 '첫여름'으로 정한 이유는?
"저에게 '영순'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 치는 여자였다. '영순'의 찬란한 시절과 충만하고 쨍한 여름을 영화를 통해서라도 되찾아주고 싶었다. 그렇게 첫 시놉시스를 쓰자마자 '첫여름'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Q. 노인에 대한 감독님의 달라진 시선과 '영순'을 통해 관객과 우리 사회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삶과 사랑은 특정한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럼에도 노인들의 욕망은 납작하게 그려지곤 한다. 노년기라는 생애주기의 특수성은 분명 있지만, 노인 역시 청년과 같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 이 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영순이 아닌 한 여자로서 영순과 동행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각자의 세계 속에 있는 노인에 대한 개념을 깨부수고 뒤집어보고 질문을 남기고 싶었다."
Q5. 허진 배우님을 캐스팅한 이유와 에피소드가 있는지.
"'영순은 무조건 70대 배우를 캐스팅한다'가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우연히 젊은 시절 허진 선생님의 영상을 봤고,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됐다. 영화의 첫 장면에 영순이 입은 얇은 티셔츠는 선생님께서 첫 미팅 때 입으셨던 의상이다. 단박에 영순처럼 보였고, 첫 리딩 후 확신의 환호를 했다.
'영순'은 허진 선생님을 만나면서 많은 부분 바뀌었다. 대사 하나하나를 선생님의 언어로 바꾸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이 다투기도 했다. 그래서 허진 선생님과의 작업을 연애와 같았다고 표현하곤 한다.
허진 선생님은 손녀뻘인 어린 감독의 말을 지나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다. 서로 존중하며 함께 영순을 만들어 갔기에 '첫여름'이 탄생할 수 있었다."
Q. '첫여름'은 장편이 아닌 단편 영화로 탄생했는데, 단편이라는 형식이 어떻게 '첫여름'에 힘을 더했다고 생각하나?
"단편 영화는 강력한 임팩트가 힘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 동안 재치 있는 캐릭터나 장면으로 관객의 마음에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장편 영화가 큰 도화지에 여러 색을 입힌 세밀화라고 한다면, 단편 영화는 거칠지만 그 자체로 스타일과 힘이 있는 목탄 크로키 같은 느낌이 든다. '첫여름'은 단편 영화이기에 마지막 장면에 힘을 더 실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Q. '첫여름'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나 어려웠던 점은?
"이 이야기는 제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됐기에 각별했다. 대부분 픽션화 되어 달라졌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보로 삼았다는 이유로 결코 손가락질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20대 여성으로서 여성 노인을 대상화하고 납작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다짐을 거듭했다. 청년인 제가 전혀 다른 생애주기를 산 노인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부딪혔던 벽과 마주한 빈칸들은 배우들과 답사를 하며 만났던 노인분들께서 넘고 채워 주셨다고 생각한다."
Q. 작품의 주요 오브제이자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나비 브로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영순은 어두운 집에 갇혀 춤을 추는 나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나비는 콜라텍으로, 사찰로 날아가 그 공간에 맞춰 춤을 춘다. 그리고 결국 다시 그 집으로 날아 돌아온다. 나비의 여정이 커다란 콘셉트였고, 소품도 자연스레 나비 브로치로 설정했다."
Q. 봉준호 감독님을 비롯한 여러 감독님은 기발한 단편 영화로 시작해 세계적인 거장이 됐다. 장차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
"인간에 대한 저만의 시선과 이해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다. 인간의 삶과 가깝기에 솔직하면서도, 당연한 것들을 흔들며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다작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사진 = 배준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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