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3일(수)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전지적 독자 시점', 원작 안 본 기자의 시점

김지혜 기자 작성 2025.07.23 11:22 조회 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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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독시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김독자'(안효섭)는 게임회사 계약직으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그의 유일한 낙은 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을 읽는 것이었다. 10년 넘게 연재를 이어온 소설이 주인공 유중혁이 홀로 살아남는 결말로 끝나자, 독자는 허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작가에게 원망의 마음을 담은 메시지를 보낸다.

이후 퇴근길 3호선 지하철에 오른 독자는 "당신이 원하는 결말을 직접 완성해 보라"는 작가의 답장을 받게 되고 지하철은 동호대교 한가운데에 멈춘다. 일순간 소설의 첫 페이지가 현실로 펼쳐지고, 사방에서 괴수들이 공격해 오기 시작한다. 이 과정 중에 독자는 '멸살법'의 주인공인 '유중혁'(이민호)과 대면하게 되고 시나리오의 미션을 함께 클리어 해나갈 새로운 동료들도 얻게 된다.

독자는 유일하게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다. 수용자 입장이었던 열독자에서 작가의 전지전능한 권한을 부여받은 독자는 괴수들의 맹렬한 공격에 맞서 자신만의 결말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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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조회수 3억 뷰를 자랑하는 싱숑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영화화한 '전지적 독자 시점'은 올여름 극장가의 '뜨거운 감자'다. 영화 관람 패러다임의 변화와 작품의 질적 하락으로 관객들은 한국 영화를 외면한 지 오래다. 그러자 투자배급사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투자 편수를 줄이거나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위험을 피해 왔다.

이른바 7말 8초의 텐트폴 시장에 제작비 300억 규모의 대작을 내놓는 건 모험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건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위험한 투자라는 점뿐만 아니라 수십, 수백만 시어머니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슈퍼 IP(지식 재산)를 영상화한 도전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날의 검이다. 동명의 영화 제목만으로도 자동 광고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동시에 수백, 수천만 시어머니의 간섭과 눈총까지 안고 가야 한다.

영화의 연출은 '더 테러 라이브'와 'PMC: 더 벙커'를 만든 김병우 감독이 맡았다. 그는 데뷔작 '더 테러 라이브'에서 98분의 시간을 리얼 타임에 가깝게 활용하며 관객을 테러 현장으로 안내했다. 이는 500만 흥행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작품인 'PMC'는 FPS(1인칭 슈팅 게임)를 극영화 형식에 녹여냈으나 실패한 실험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 실패의 쓴맛을 봤다. 그의 성공과 실패의 경력으로 인해 세 번째 연출작 '전지적 독자 시점'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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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우 감독의 데뷔작 '더 테러 라이브'가 영화 시작 10분 만에 관객을 사건 안으로 끌어들였던 것처럼, '전지적 독자 시점'도 빠르게 관객을 독자가 쓰는 소설 속 세상으로 안내한다. "당신이라면?"이라는 질문은 '멸살법'의 작가가 독자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하지만, '전독시'의 제작진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체험의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설계된 오락물이다.

이런 포맷의 영화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공 사례가 없다. 영화란 상상력의 산물이고, 영화라는 세계에선 어떤 이야기도 펼쳐질 수 있지만 한국 관객들은 유독 판타지 장르에 높은 눈높이를 적용해 왔다. 땅에 발을 붙이지 않은 허무맹랑한 상상력은 시각적 구현으로 비현실성을 극복할 수 있지만 판타지 장르는 유독 진입장벽이 높다. 게다가 원작인 웹소설은 1,000화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영화는 소설의 정수를 압축해 2시간 안팎으로 전달해야 하는 분량의 한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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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이해하고 몰입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코인', '성좌', '배후성' 등 이야기 속 주요 키워드를 이해해야 한다. 제작진은 김독자의 내레이션을 극 중간중간 등장시켜 게임의 룰을 설명하거나 독자 내면의 변화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원작을 안 본 관객에게 유효한 친절한 선택이지만, 흐름을 끊는 '설명충'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방식이다.

선택과 집중,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에는 어김없이 거쳐 가야 하는 관문이다. 영화를 연출하고 각본까지 쓴 김병우 감독은 인물들의 개인 서사는 축소하거나 생략했고, 설정 역시 변형하거나 압축했다. 이야기를 단순화해 원작을 보지 않는 관객도 아우르고, 속도감도 높이기 위한 선택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배후성이라는 설정도 변화를 줬다. 원작에서는 신화와 설화 속 캐릭터 혹은 한국의 위인들이 배후성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위인 설정은 채택하지 않았다. 이 설정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 원작 팬들에겐 분명 논란이 될 만한 선택이며 실망을 부르는 각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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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 시점'은 영화로 즐기는 한 편의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몰입이 쉽다. 미션을 클리어하면 다음 라운드로 진입하는 게임의 특성을 받아들이고 독자가 맞닥뜨리는 위기 상황에 몰입해 즐기다 보면 발생하는 재미가 있다. 관객이 이 과정에 기꺼이 빠질 준비가 됐다면, '전지적 독자 시점'은 체험형 영화로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낼 수도 있다.

다만, '이 정도면 충분할까'라는 생각을 쉬이 떨치긴 힘들다. 이야기에 탑승한 순간 끌려는 가지만 속도감을 위한 이야기의 편의적 압축과 캐릭터의 부실한 빌드업, 소설 속 세계를 현실화한 2% 부족한 CG 등이 온전한 몰입을 막는 것도 사실이다. 한 마디로 이 낯선 세계를 팔짱 끼고 관망하기 시작한다면 영화는 굉장히 엉성해 보이고, 재미가 없어진다.

또한 '모두 함께 살아남는다'라는 바른 결말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독자와 동료들의 사투는 '연대'라는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지만 이것이 감정의 동화로까지 이어지는가에 대한 개인 차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병우 감독은 지향점을 향해 군더더기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연출했지만, 과도한 절제와 생략으로 인해 드라마 파트에서도 충분히 예열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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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세계의 새로운 작가인 독자가 안내하는 가이드와 그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관객이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는가. 김독자를 중심으로 한 6인의 서민 히어로 무비가 되어야 할 영화지만 캐릭터들의 매력은 두드러지지 않으며 대부분 기능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이야기 안에 녹아든 인물이 아닌 특정 스테이지마다 활약하기 위해 게임에 등판한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안팎으로 내포한 진입장벽은, 관객이 이 영화에 대한 눈높이를 어느 정도에 두고 있는지에 따라 극복 여부가 달라진다. 원작을 몰라도 재밌으면 그만이다. 다만, 그 재미라는 것은 주관적이라 정량화하기 힘들다. 또한 원작을 사랑한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

슈퍼 IP가 가진 무궁무진한 상품성과 확장성에 포커스를 맞춘 이 기획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궁금해진다. 영화 보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관객의 평가가 더욱 엄혹해진 시대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모 아니면 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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