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1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나인 퍼즐', 장르로 진화한 윤종빈…웰메이드 추리물 탄생

김지혜 기자 작성 2025.05.27 16:39 수정 2025.05.27 18:43 조회 3,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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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윤종빈과 추리 스릴러, 감독과 장르의 조합부터 흥미롭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범죄와의 전쟁시대:나쁜 놈들 전성시대', '공작', 시리즈 '수리남' 등을 통해 시대 혹은 집단 속 사람들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세밀하게 다뤘던 윤종빈 감독이 디즈니+ 시리즈 '나인 퍼즐'로 추리 스릴러물에 도전했다.

'나인 퍼즐'은 남성 중심의 서사에 몰두해 온 윤종빈 감독이 처음으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이다. 매 작품 시대의 공기를 영화적으로 재현하고, 캐릭터의 독보적 매력을 통해 배우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부여했던 그의 장기가 이번에도 발휘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렸다.

지난 21일 공개된 '나인 퍼즐'은 윤종빈 감독의 장르 확장과 탐구,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서도 기어이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결과물을 만들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웰메이드다. 연출, 연기, 촬영, 미술, 음악, 편집 모든 부문에서 준수 그 이상이다.

1차 공개된 6화까지의 이야기는 스릴러적 긴장감보다는 연쇄살인의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추리적 요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인공 이나(김다미)에게 배달되는 퍼즐 조각이 예고 살인의 성격을 띠면서 이들이 어떻게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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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살인이 유발하는 호기심과 프로파일링의 재미…"살아있네"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건 윤동훈(지진희) 총경의 죽음이다. 시신의 최초 발견자는 조카인 이나(김다미)다. 이 사건을 조사하던 한샘(손석구)은 이나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이나는 사건 당일의 기억을 잃었다. 결국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고 만다.

10년이 흘러 이나는 프로파일러가 되고, 한샘이 일하는 한강경찰서와 공조하는 관계가 된다. 어느 날 이나에게 삼촌의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퍼즐 조각과 딱 맞는 퍼즐이 배달되고, 이나는 또 다른 살인 사건의 최초 목격자가 된다. 이나는 10년 만에 연쇄살인이 다시 시작됐음을 확신하고 한샘과 함께 수사에 나선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시리즈는 9개의 퍼즐이 연쇄 살인의 중요한 키(KEY)다. 첫 번째 살인 사건은 총경, 두 번째 살인 사건은 바 여사장, 세 번째 살인 사건은 바 여사장의 전 연인, 네 번째 살인 사건은 유력 건설 회사 대표가 타겟이었다. 네 개의 사건은 언뜻 보기엔 별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동물적 직감과 냉철한 분석력의 소유자인 이나는 이 사건에 동일한 배후가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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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퍼즐'은 회당 하나씩의 살인 사건을 등장시켜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나의 프로파일링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극의 재미를 선사한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인상적인 샷은 이나의 프로파일링 과정을 연극적으로 재현한 장면이다. 단순히 말로만 프로파일링의 결과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과정을 유추하고 재조합하는 이나의 머릿속을 정지화면으로 재현해 범행 동기와 범인 도출 과정을 시청자들이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윤종빈 감독

이번 작품은 윤종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유일하게 직접 각본을 쓰지 않았다. '터널'(2017)로 주목받았던 이은미 작가의 각본을 본 윤종빈 감독은 이야기가 가진 흡입력에 빠져들었다고 전했다. "살아있네", "사탄 들렸어?"와 같은 윤종빈 감독 특유의 대사발은 없지만 추리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력을 바탕으로 한 밀도 높은 각본은 인상적이다. 경찰 접대 의혹과 개발 특혜 비리 등 우리 사회 뉴스 면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사건들이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한다.

윤종빈 감독의 작품 중에서 유독 세트 촬영이 많은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부터 '만화적'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나인 퍼즐'만의 독특한 개성에 대해 말했다. "현실과 만화, 이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리얼리즘의 관점을 넘어서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한 것처럼 한강경찰서 내부, 이나의 심리상담실, 한샘과 이나의 베이스캠프 기능을 하는 한샘의 집 등 장르적 특징과 캐릭터들의 분위기와 성격을 반영한 공간 설정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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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다미X손석구의 케미…연기 잘하는 사람들 다 모은 특출진

윤총경 살인사건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한샘은 여전히 이나를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한다. 그 사이 이나는 프로파일러가 됐고, 한샘은 잇따라 터지는 살인사건을 이나와 함께 공조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나 역의 김다미와 한샘 역의 손석구의 관계성이 흥미롭다. 둘은 톰과 제리처럼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샘에게 호감을 가지고 들러붙는 이나와, 그런 이나를 계속해서 의심하고 불편해한다. 한샘을 향한 이나의 감정이 동료애인지 애정인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김다미가 연기하는 이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에 서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이나는 '나인 퍼즐'의 중심축이지만 거듭해서 의혹을 제기하는 한샘의 시선에 의해 시청자 역시 의심을 거두지 못하게 된다.

추리 스릴러 장르의 중심 캐릭터로서 이나는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삼촌을 시신을 발견하고도 태연하게 대처한다던가 삼촌이 죽은 자리에 그려진 현장보존선에 눕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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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흐른 후에도 마찬가지다. 삼촌의 주검을 발견했던 고등학생때와 비교해 전혀 성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소시오패스 혹은 ADHD 유형의 인물과는 다르다. 장난꾸러기 같은 매력이 있으면서도 자기 일인 프로파일링에는 천부적인 직감과 분석력을 자랑하는 천재과의 인물이다. 반면, 정서 불안과 불면증 등으로 주기적인 심리 치료를 받는 연약한 내면의 소유자기도 하다. 이 복합적인 캐릭터는 김다미의 개성 있는 연기와 만나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한샘 역시 이나 만큼이나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다. 6회까지 봤을 때는 한샘이 이나를 10년째 용의자로 의심하는 이유가 불분명하다. 한샘의 전사를 최소화함으로써 인물 자체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는 인상도 준다. 언뜻 보이는 목 부위의 문신 자국이 언더커버의 흔적이라고 한 것도 궁금증을 자극한다. 사건의 발생 이후 약 10년을 건너뛴 것은 작가와 연출의 분명한 의도가 있어 보인다. 생략된 과거의 이기는 향후 전개를 통해 차차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김다미와 손석구의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이색 조합이 연쇄 살인이라는 소재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매회 등장하는 특별출연진을 보는 재미도 좋다. 지진희, 박규영, 노재원, 이주영 등은 특별 출연이라지만 사실상 조연으로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옥자연과 이희준은 5회, 이성민은 6회에 등장해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여기에 박성웅, 김응수와 호화 특별출연진의 화룡점정이 될 한 특급 배우의 출연까지 예고돼있어 이들이 향후 사건에서 어떤 활약을 할지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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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된 퍼즐은 4개…7회부터 떡밥 회수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9개의 퍼즐이 모두 나와야지만 연쇄살인의 거대한 조각이 맞춰진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배속(물론 디즈니+에는 이 기능이 없다)으로 본다거나 건너뛰기를 하며 볼 수 없게 만든다.. 이 판에 뛰어든 이상, 시청자들도 이나와 한샘의 추리에 동참하며 같이 사건을 풀어나가게 된다.

6회까지 등장한 퍼즐은 모두 4개. 남은 5회에서 5개의 퍼즐 조각이 어떤 식으로든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1차 공개분의 마지막 회차인 6회에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중,후반부의 핵심키를 제시하면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살해된 세 사람이 범인인 사건은 어떤 사건이며, 이것이 나인 퍼즐 설계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를 추리하며 보는 것이 중반 이후 최대의 관람 포인트다. 또한 범인이 이미 등장한 인물 중에 있을지, 아직 등장하지 않은 제3의 인물인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무엇보다 범인의 범행 동기는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라 중, 후반부 전개를 어떤식으로 이어갈지 극본적으로, 연출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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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까지는 탄탄한 빌드업으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고, 던진 떡밥만으로도 벌써부터 다양한 추리들이 나오고 있다. 극 중에 등장한 다채로운 공간, 주요 캐릭터들이 입고 쓰는 의상과 소품, 색깔의 의미 등을 힌트 삼아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다 보면 감독과 작가가 설계한 거대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쾌감에 빠져든다.

윤종빈 감독은 보여준 것과 보여주지 않은 것을 통해 시청자들과의 밀당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밀었으니 이제 당길 차례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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