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다고 칩시다. 겨우 걸어 다니는 정도의 아이고, 특별한 주의를 요하죠. 그런데 20년이 지나 보니 그 아이가 갑자기 달리고 있는 거예요. 제겐 '더 폴: 디렉터스 컷'이 그런 영화입니다"
타셈 감독은 '더 폴: 디렉터스 컷'이 한국에서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사랑받고 있는 것에 대해 '부활'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화를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는 제작 당시 3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하고도 580만 달러의 매출밖에 기록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했던 흥행 성적과 "비주얼은 훌륭하나 이야기가 뚝뚝 끊긴다"는 비평가들의 혹평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이 영화가 이렇게 재조명받는다는 게 상당히 놀랍네요. 제가 영화를 만들 즈음에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았는데, 상실감이 컸습니다. 그때 형(프로듀서 아짓 싱)이 이 영화를 만들자고 하더군요. '그래. 영화는 만들고, 삶은 계속되야지'라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지금 영화를 다시 보니 그때 제가 상당히 야심 찼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아마도 다신 이런 영화를 못 만들 것 같습니다"

'더 폴:디렉터스 컷'은 스턴트맨 '로이'(리 페이스)가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에게 전 세계 24개국의 비경에서 펼쳐지는 다섯 무법자의 환상적인 모험을 이야기해 주는 영화. 타셈 감독이 어린 시절 보고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다는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1981)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인도 출신인 타셈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뒤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2000년 데뷔작 '더 셀'로 호평을 받으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차기작 착수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더 폴'의 제작비는 영화의 비주류성을 생각하면서 상당한 거액인 3천만 달러였다.
타셈의 비전과 실력을 눈여겨본 절친 데이빗 핀처,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타셈에게 투자자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타셈은 "이 작품은 제작비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왜냐하면 시나리오가 제대로 없고 가이드만 있는 상태였다. 제작자들이 시나리오는 어디 있냐고 물으면 아역을 캐스팅하면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를 몇 개국에서 찍을 계획이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고 답하곤 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박스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제작비를 구하러 다닐 당시에 나도 박스를 들고 다니면서 이 안에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겼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데이빗 핀처 덕분에 수많은 투자자와 미팅을 하긴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고 제작 과정의 난항을 밝혔다.
두 절친이 투자자를 연결해주지는 했지만 핀처와 존즈는 영화 크레딧에 제공(Presented by)으로 이름을 올려 '더 폴' 공개 당시 영화가 주목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이 작품은 인도의 구글리 필름스, 미국의 앱솔루트 엔터테인먼트, 딥 필름스, 래디컬미디어, 영국의 트리 탑 필름스까지 5개의 제작사가 힘을 모아 완성할 수 있었다.
'더 폴'은 2006년 토론토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됐고, 같은 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그러나 정식 개봉은 2008년 5월에서야 이뤄졌다. 북미 배급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할리우드의 파워맨이었던 미라맥스의 하비 와인스타인이 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으나 15분 가량 편집할 것을 요구했고, 타셈 감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로드사이드 어트랙션의 배급으로 소규모 개봉을 하게 됐다. 한국에서는 같은 해 11월 관객과 만났다.
타셈 감독의 가슴에 불을 지핀 뒤 무려 28년 만에 완성된 영화였지만, 개봉 당시에는 과작이자 괴작 취급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타셈 감독은 "평론가들 절반이 혹평을 퍼부어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더 폴'은 스턴트맨 로이가 병실에서 만난 꼬마 아이 알렉산드리아에게 옛날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다. 액자식 구성을 띄는 이 영화는 로이의 이야기와 알렉산드리아의 머릿속 상상이 어우러지며 영화가 전개된다. 언뜻 보면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은 채 전개되며 황홀한 이미지가 범람하는 영화처럼 여겨진다. 이야기와 상상, 이상과 현실, 꿈과 영화, 절망과 희망, 자기혐오와 타인의 위로 등 광범위한 이야기와 주제를 천일야화에 녹여낸 '더 폴'은 시각적 황홀경에 한 번 빠지면 이야기의 매력까지 만끽할 수 있는 영화다.

특히 이 작품은 비주얼아트에 가까운 영상 미학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CGI가 하나도 없다. 타셈 감독은 18개국 28개의 로케이션을 통해 천일야화의 시각적 황홀경을 완성했다. CG는 물론 AI가 화두인 현시대에 '더 폴'의 수공업은 예술의 경지로 느껴질 정도다.
타셈은 이에 대해 "아무리 훌륭한 특수효과를 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구식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다 반세기가 지나면 레트로한 느낌 때문에 멋져 보이기도 한다"며 "내가 선택한 로케이션들은 모두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에 CG를 사용하면 모자 위에 모자를 덧쓴 것 같은 느낌이 날 거라 생각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런 집요함은 필생의 역작을 만든 기반이 됐다.
'더 폴' 뿐만 아니라 '더 셀', '신들의 전쟁' 등의 작품을 통해서 타셈은 비주얼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 왔다. 특히 인도 출신이라는 문화적 배경과 어우러져 형성된 듯한 매혹적인 비주얼은 그의 연출 세계의 상징이 됐다.

이 배경에 대해 타셈은 "저도 인도 출신이고, 제 아버지는 이란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셨다.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된 영화를 많이 봤다. 그런 경험을 통해 비주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는 극단을 좋아한다. '더 폴' 이후 만든 세 편의 영화는 모두 비주얼적인 작품이었다. 가장 최근에 만든 영화는 비평가들이 유일하게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한데 그 작품에는 판타지가 없다. 오로지 인간관계에 집중한 작품이다. '더 폴'은 너무 극단적인 영화라 20년 걸려 인정받은 것 같다. 이런 일이 다신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더 폴'은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뒤늦게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극장에서 내려간 뒤 DVD와 OTT 등으로 유통되며, 느리지만 폭넓게 입소문을 탔다. 타셈 감독도 이 영화의 재평가에 대해 인터넷의 공을 언급하기도 했다. 타셈 감독이 무려 16년이나 흘러 4K 리마스터링 버전의 재개봉을 결정한 것도 이런 재평가의 흐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가 처음 완성됐을 때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 돈으로 개봉을 준비해야 했죠. 작년에 토론토영화제를 갔는데 평론가들이 "'더 폴'을 재공개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더라고요. 20년 전에 내가 그렇게 영화를 알리고 싶어 했을 때는 왜 가만히 있었느냐고 되물었죠. 그랬더니 "난 10살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전혀 다른 세대가 이 영화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형에게 이 영화에 다시 비용을 투입해 재개봉을 해야겠다고 말했죠."
그렇게 4K 리마스터링 버전이 탄생했다. '더 폴'은 제작 때부터 4K를 염두하고 촬영했다. 이 작품이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해 4k 상영관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이었음에도 최신 기술로 작업한 것이다. 이는 타셈의 선견지명이었고, 4K 리마스터링 버전 개봉이 수월할 수 있었던 신의 한 수가 됐다.
단, 당시 참여했던 제작사의 상당수가 문을 닫은 터라 원본 파일 회수가 쉽지 않았다. 또 일부 장면은 4K 해상도에선 효과가 완전하지 않아 네거티브 필름 복각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원 개봉 당시 삭제했던 장면을 되살려 완전무결한, 그야말로 오리지널 '더 폴'로 부활할 수 있었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더 폴'로 관객과 다시 만난 타셈은 "사실 '더 폴'이 처음 공개됐을 때 왜 사람들이 안 좋아했는지 모르겠더라. 어떤 영화와도 같지 않은 새로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어떤 패턴을 벗어났을 때 그만의 장점이나 가치가 있다. '기생충'이나 '올드보이'의 경우도 기존과 달라서 사람들이 열광한 거다. 그런데 이 영화의 경우는 관객이 뭔가 다른 걸 기대했던 것 같긴 한데 그 기대와 완전히 달랐던 것 같다"라고 동시대에 사랑받지 못한 이유를 스스로 분석했다.
16년이 흘러 영화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에 대해서는 "패션의 경우도 20년 뒤에 어떤 옷이 레트로로 유행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내 영화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면서 "만약에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면 다른 결과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한 영화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건 괜찮다. 나는 사람들이 "정말 환상적이에요"라고 말해도 좋고 "이 영화, 거지 같아요"라고 말해도 좋다. 그런데 그저 "괜찮다"고 하면 겁이 난다"고 말하며 '더 폴'의 남다른 개성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더 폴'은 지난해 12월 25일 개봉해 지난 2월 5일까지 전국 10만 명을 모았다. 100~200만 명도 아닌데 대수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국 50~60개 상영관에서 한 달 여만에 거둔 성적이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자신의 생활반경을 벗어나 상영관을 찾아가야 하는 여건을 감수한 관객들의 선택이 있기에 가능했다.
영화를 보고도 줄거리조차 기억조차 나지 않은 500만 흥행작이 있는가 하면, 한 번 보고도 수년간 잊히지 않은 체험이 되는 10만 영화가 있다. '더 폴'은 후자다.
기자회견을 마치며 타셈 감독은 "미국에서도 한 주 동안 몇 개관에서 상영을 했는데 몇 분만에 매진됐고 인기가 많아져서 8주 확대 개봉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한국 관객들이 내 아이(작품)가 계속 달리게 해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이어 "캄사합니다"라고 한국어 인사말을 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 관객을 향한 진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진 = 백승철 기자, '더 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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