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범죄도시4'가 개봉 13일 만에 전국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돌파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빠르면 이번 주 주말, 늦어도 다음 주 중 천만 돌파가 확실시된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트리플 천만은 한국 영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진기록이지만, 이 화려한 수치 이면에 한국 영화계의 고질적 문제인 스크린 독점이 자리하고 있다.
'범죄도시4'는 개봉 첫날인 지난달 24일 2,930개의 스크린에서 1만 5,674회 상영했다. 상영점유율은 81.9%, 좌석점유율은 85.5%, 좌석판매율은 35.7%였다. 상영점유율은 영화관의 전체 상영 횟수에서 한 영화가 차지하는 비율, 좌석점유율은 극장 전체 좌석 수 가운데 해당 영화에 할당된 좌석 수의 비율, 좌석판매율은 배정된 좌석 수에서 실제 관객 수가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이후 일주일 내내 80%가 넘는 상영점유율과 1만 5천 회 이상의 상영 횟수를 유지하며 빠른 속도로 관객 수를 늘려나갔다. 개봉 첫 주말(금,토,일 3일 기준)의 경우 전국 2,980개의 스크린에서 5만 774회 상영 됐고 291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는 역대 주말 기준, 가장 많은 스크린에서 상영된 신기록이다. 그러나 회당 관객 수로 계산하면 평균 58명 밖에 들지 않았다.
2주 차의 상영점유율은 70%대, 상영 횟수는 일일 평균 1만 4천 여회로 소폭 낮아졌으나 여전히 전체 스크린의 과반 이상을 독점했다. 개봉 2주간 주말과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연휴에는 좌석판매율이 30~40%까지 올라갔으나 평일 수치는 10%대 초중반까지 떨어졌다. 상영점유율과 좌석점유율 대비 좌석판매율의 불균형이 크다. 이는 공급과잉에 가깝다.
'범죄도시4'가 개봉 3주간 확보한 상영점유율 70%는 올해 첫 천만 흥행작인 '파묘'와 지난해 천만 흥행에 성공한 '서울의 봄'의 평균 상영점유율 50%를 상회한다.
'흥행 공룡'의 등장에 한국 상업영화들이 개봉을 피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장에 영화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범죄도시4'가 개봉하던 전후로 '쿵푸팬더4', '정순', '챌린저스', '고스트버스터즈:오싹한 뉴욕', '스턴트맨', '여행자의 필요' 등이 상영 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많으면 9.5%('스턴트맨'), 적게는 1.2%('챌린저스')의 상영점유율에 그쳤다.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싶어도 아침이나 밤시간대에나 겨우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극장이 스크린을 배정하는 기준은 예매율이다. '범죄도시4'는 개봉 전후 9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예매율로 관객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극장은 예매율을 근거로 '범죄도시4'에 극장을 몰아주다시피 하면서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고 있다.
그러나 주말 30%, 평일 10% 대의 좌석판매율을 보면 알겠지만 스크린, 상영 횟수가 과도하게 많았다. '범죄도시4'가 상영된 관들은 대부분 평균 절반 이상의 관객을 채우지 못했다. 스크린 수를 줄여 좌판율을 높이고, 일부 관을 여러 영화와 나눴다면 휴일 연휴 관객들은 넓은 선택의 폭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 영화 산업의 고질적 문제는 다양성 결여다. 제작의 다양성은 배급 문제와도 연결된다. 멀티플렉스 3사가 국내 영화관의 90%를 독점하고 상업영화 위주의 편성을 하면서 관객들은 극장에서 자신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어렵게 됐다. '범죄도시4'는 분명 재밌는 영화지만, 모두가 이 영화만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영화계에서 스크린 상한제 필요성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북미와 유럽은 이미 자리 잡은 시스템이다. 미국은 1948년 파라마운트 판례(이른바 '영화 산업 독과점 금지법')를 통해 영화 제작과 배급, 상영 겸업을 금지시켰다. 미국은 일찌감치 소비자들의 영화 선택권을 침해하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과점 행위에 철퇴를 내렸지만 한국 영화계는 21세기에도 스크린 독점 논란을 돌림노래처럼 반복되고 있다.
전통적 문화 강국인 프랑스 역시 8개 이상의 스크린을 보유한 극장에서는 영화 한 편이 일일 상영 횟수 30%를 초과할 수 없고, 15~27개 스크린을 보유한 대형 멀티플렉스에서는 한 영화에 1일 최다 4개 스크린만 배정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법적 규제는 없지만, 영화관 스스로 특정영화가 최대 상영 횟수의 25%를 초과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의 법안의 핵심은 영화의 다양성 및 소비자의 선택권 확보, 상업영화와 비상업영화의 공존이다. 이는 건강한 영화생태계의 기본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앞선 두 편이 연속 천만 흥행에 성공했고, 4편까지 천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를 두고 한국 영화의 부활이라고 말하는 영화인은 거의 없다. '범죄도시'팀만의 축포일 뿐이다. 물론 영화는 죄가 없다.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배제한 채 돈이 된다고 믿는 영화만 밀어주는 극장이 문제다.
지난 7일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의 이하영 정책운영위원은 "이것(스크린 독점)이 배급사와 제작사의 잘못인가. 극장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려고 한 결과가 아닌가"라며 "왜 영화계를 망가뜨리고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라는 성토는 쏟아지고 있고,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0년 넘게 반복되고 있는 스크린 독점 방지를 위한 제도적 논의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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