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4일(일)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조승우는 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학전'에 바쳤나

김지혜 기자 작성 2024.01.19 17:18 수정 2024.01.22 14:31 조회 7,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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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조승우는 의외로 상복이 없다.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하게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을 넘나들며 24년째 최고의 배우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실력이 트로피로 잘 연결되지는 않았다.

가장 최근 수상은 2018년 드라마 '비밀의 숲'으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것이고, 뮤지컬로는 2016년 '베르테르'로 예그린뮤지컬어워드 남자 인기상을 받은 것이다.

지난 15일 열린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조승우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으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 시상식이 여덟 차례 진행되는 동안 처음으로 받은 상이었다.

그는 수상이 얼떨떨한 듯 "1회 때부터 함께 했는데 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팬들이 시상 셔틀하러 간다고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냐고 하는데도 좋았다. 뮤지컬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즐기는 축제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영광이었는데 이렇게 상까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승우는 이날 수상의 영광을 대학로 극단 '학전'(學田)과 '학전'을 이끌었던 김민기 대표에게 바쳤다. 그의 수상 소감에서 조승우의 현재와 조승우의 과거를 만날 수 있었다. 더불어 '학전'이 지난 33년간 한국 대중문화에 남긴 '위대한 유산'에 대해 되새길 수 있었다.

조승우

◆ '오페라의 유령'은 조승우에게도 도전이었다

"각종 병원을 다녔지만 드레스 리허설 때까지도 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첫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부담감은 어깨를 짓눌렀다. 숨이 안 쉬어지고 다 포기하고 싶었다. 모든 시간이 지옥 같았다. 뮤지컬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지난해 4월 부산에서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시작한 조승우는 소속사를 통해 진솔한 고백을 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꿈의 뮤지컬이 거대한 벽처럼 여겨졌던 순간을 글로 풀어냈다. 공연을 앞두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하차까지 고민했다는 내용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추리 작가 게스통 르루가 1910년 발표한 소설을 영국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로 만든 작품.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났지만 태생부터 기형적인 얼굴 때문에 가문을 쓴 유령이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면서 펼쳐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조승우는 타이틀롤인 '팬텀'역을 맡았다.

조승우

성악 전공자가 아닌 뮤지컬 배우가 '팬텀'의 하이바리톤 음역대를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처절하고 절박한 감정을 담아 노래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감정이 쏟아져 나올 때 고음역대의 노래를 흔들림 없이 소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승우는 '팬텀' 역을 맡은 네 명의 배우 중 유일하게 성악 전공자가 아니다. 하이바리톤 음역대의 뮤지컬 넘버를 소화해야 했기에 보컬 발성 레슨을 받으며 공연을 준비했다.

조승우는 엄살꾼이 아니다. '못 한다' 보다 더한 고통은 '안 된다'가 아닐까. 그는 생애 처음 겪은 극한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공연의 막을 올렸다. 부산 공연 초반은 우려도 나왔다. 목 상태는 물론 컨디션이 100%는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과 경험, 관록의 힘은 컸다. '조팬텀'은 회를 거듭할수록 무르익어 갔다.

연기란 감정 예술이다. 학문으로 배운 테크닉보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 조승우가 공연계에서 최고의 배우인 이유는 바로 그 점이다.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감정의 층을 겹겹이 쌓아올려 레이어를 만들고, 상승시키다 하강시키는 방식으로 감정의 층위를 조절하는 연기 압권이었다. 성대를 사용하는 기술은 전공자들에 비해 노련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목소리에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능력은 최고다.

조승우의 말대로 팬텀은 왜곡된 사랑에 빠진 인물이다. 팬텀이 처음 등장하는 미궁 장면의 무드도 '공포'에 가깝다. 이 공포는 미스터리적 무드와 결합해 극 초반 관객을 긴장시킨다. 그러나 팬텀과 크리스틴이 교감하며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조승우표 팬텀은 인물의 '광기'보다는 '고독'이 크게 보인다. 관객이 팬텀에 몰입할수록 크리스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조팬텀' 가창의 백미는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이 아닌 '그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다. '감정 예술가' 조승우의 진가 제대로 드러나는 넘버다. 크리스틴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노래에 담아냈다. 목소리, 표정, 손짓 하나 하나에도 감정을 실었다. 노래를 마친 후 들릴 듯 말 듯 '크리스틴'을 부르는 장면의 여운은 공연이 끝나고도 잊히지 않는다.

뮤지컬 공연은 '현장의 예술'로서 불변의 가치가 있지만 조승우의 무대는 고비용과 시간, 치열한 티켓팅의 과정을 거쳐서라도 직관할 가치가 있다.

조승우

지난해 11월 중순, 서울 공연 후 대기실에서 만난 조승우는 부산, 서울로 이어진 8개월간의 여정에 대해 "힘들다. 100회 차까지 소화하게 됐다"고 말하며 지긋이 미소 지었다. 목 관리 잘하시라는 말에는 "그럼요. 저 (공연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답했다. 늘 그러했듯 감정에 솔직하고, 표현에 가감이 없다. 부산, 서울을 거쳐 대구로 이어진 공연을 소화하고 있는 조승우는 이번 주 공연 100회 차를 넘긴다.

조승우는 어느 날 공연 중간 의상을 갈아입으며 스태프들에게 "이 작품 정말 명작인 거 같아. 나 지금 되게 행복하다"는 고백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제나 머물러있지 않고 고통을 감수하다 보면 한 발짝은 아니라도 반발짝은 앞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 조승우의 대표작은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헤드윅', '베르테르'를 꼽을 수 있다. 조승우는 이 작품들을 20여년에 걸쳐 수차례 연기하며 나이에 따른 변화를 보여줬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야' 하면서 한다. 그런데 할 때마다 여태껏 못 느꼈던 감정과 메시지를 느끼게 되고, 심지어 그 이야기와 캐릭터에 더 궁금증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동안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시선의 변화에 따른 재해석과 변화에 중점을 뒀다면,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은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에겐 그 '한 발'이 어렵다. 필요성도, 가치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의 가치는 시간과 나이를 막론하고 값지다.

조승우

◆ '학전'은 조승우의 시작이었다…충무로 명배우의 산실

"이 모든 상의 영광을 '학전'과 김민기 선생님께 바치겠다"

조승우는 이날 시상식 소감 말미, 수상의 영광을 '학전'과 김민기 대표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그는 '학전'에 대해 이름 그대로 "배움의 터전이었고 집 같은 곳이었고 추억의 장소"였다고 말했다. 또한 학전을 이끈 김민기에 대해서는 "스승님이자 아버지이지 친구이자 가장 친하고 편안한 동료"라고 표현했다.

학전은 조승우가 배우 인생을 시작하고 꽃을 피운 터전이었다. 그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을 통해 20살의 나이에 스크린에 데뷔했다. 1:1000 경쟁률의 오디션을 뚫고 임권택의 '픽'(PICK)을 받았고, 이 작품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감독상을 받았다.

칸영화제에서 돌아온 조승우의 다음 행보는 영화 촬영이 아니었다. 그해 가을 막을 올린 학전 뮤지컬 '의형제' 오디션에 참여했고, '걸인' 역을 따냈다. 이 작품은 뮤지컬 배우 조승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조승우는 이듬해 영화 '와니와 준하'를 찍었고, 같은 해 학전의 대표작인 '지하철 1호선'에도 출연했다. 영화와 뮤지컬을 오가는 행보는 이때부터 정립됐다. 이후에도 조승우는 자신의 위치와 인기에 상관없이 '의형제'와 '지하철 1호선' 무대에 올랐고, 연기의 가장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다.

조승우

1991년 3월 서울 대학로에서 문은 연 학전은 소극장 이름이자 극단명이다. 극단 연우무대가 입주하기로 한 공간이었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김민기 대표가 극장 운영을 하게 됐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이곳에서 막을 올려 공연 문화의 신화(약 8,000회 공연, 누적 관객 70만 명)를 썼고 들국화, 유재하, 강산에, 동물원, 안치환 등 통기타 가수들이 라이브 콘서트 문화를 꽃피웠다.

'학전'은 조승우만의 배움터가 아니었다.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등 충무로의 명배우들이 학전에서 연기의 순수와 열정을 불태웠다.

33년간 역사를 이어오던 학전이 오는 3월 14일 폐관 소식을 전했다. 계속된 경영난과 암투병 중인 김민기 대표의 건강 악화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끝은 아니다. 학전에서 활약했던 가수 박학기, 박승화, 윤도현, 작곡가 김형석, 배우 설경구, 장현성, 감독 방은진 등이 힘을 모아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오는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민기 대표도 배우 장현성의 입을 빌어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꼭 다시 일어나겠습니다"라며 부활을 약속했다.

영국의 전설적인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은 "연극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강박적인 필요를 작가나 배우만 느끼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관객도 이 절실함을 함께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대학로의 전설적인 극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이 작금의 현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살려야 한다"는 대중의 공감대이다. 누구에게나 가슴이 기억하는 공연 한 편은 있을 것이다. 그 리스트에서 극단 '학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공연을 보기 위해 대학로를 찾았던 그 설레는 기억으로부터 너무 멀어졌다고 할지 모르지만, 추억은 우리 마음에 기록돼 있다. 그리고 학전의 문은 아직 열려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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