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시네마Y] '문단속'이라는 단어를 영화 제목에서 볼 줄이야

김지혜 기자 작성 2023.03.08 16:54 수정 2023.03.08 17:33 조회 2,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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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문단속', 어린 시절 할머니나 엄마에게서 익히 듣던 정겨운 단어다. 사투리는 아니지만 이 단어가 주는 정겨움은 아마도 동양 문화권의 사람이라면 보다 생생하게 다가올 것이다.

문단속의 사전적 정의는 '사고가 없도록 문을 잘 닫아 잠그는 일'이다. 아파트 중심, 도어록 시스템이 보편적인 현대의 주거 문화에서 사람이 힘을 들여 문을 열고 닫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문을 열고 닫는 행위는 주인공들에게 필사의 사명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자신의 신작에 '문단속'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했다. 이 단어가 가지는 상징과 은유는 영화를 보고 나면 단박에 이해가 된다. 동일본 재지진이라는 일본인의 아픔과 트라우마를 되새기고, 상실의 아픔을 간직한 이들의 상처를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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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와 소타는 다가올 재난을 막고 세상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한다. 이 영화에서 문이란 재난을 들일 수도, 막아낼 수도 있는 통로다. '열고, 닫는다'는 문의 기능은 때론 비극이 되고 때론 희망이 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풀어낸다. 재난으로 폐허가 된 공간을 배경으로 주요 이야기를 풀어내는 로드 무비식 구성을 사용했다. 재난의 통로가 되는 문, 다리가 세 개 뿐인 의자 소토, 신비의 고양이 다이진 등 기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콘셉트와 캐릭터 등도 흥미롭다. 캐릭터 간 감정선은 덜컥거릴 때가 있지만, 메시지와 이야기를 연결하는 아이디어만큼은 전작에 비해 한층 진화했다.

스즈

일본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지만 정서적으로는 가장 먼 나라다. 이 영화가 반일 감정이라는 진입장벽을 뚫어내는 힘은 공감대다. '지진'이라는 재난은 그리 익숙지 않지만 우리 역시 천재지변이나 불가항력의 사고로 인해 다수의 인명을 잃은 바 있다. 신카이 마코토가 그리는 상실의 충격과 아픔, 망자에 대한 애도, 남은 자들을 향한 위로는 국경과 정서를 넘어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앞선 재난 2부작('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비해 OST 비중을 줄였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주로 삽입한 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관객이 좀 더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야기는 영화의 말미, 폭발적인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지난해 11월 일본에서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은 3연속 기록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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