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김고은은 데뷔 10년 차를 맞은 2022년 그 어떤 해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두 편의 드라마를 촬영했으며, 한 편의 영화를 개봉했다.
한동안 드라마 활동에 집중했기에 영화에 대한 갈증은 어느 때보다 컸을 터. 특히 촬영을 마치고도 코로나19로 인해 3년이나 개봉을 하지 못한 영화 '영웅'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으로 뮤지컬 영화에 도전해 연기는 물론 노래까지 하는 이중고를 극복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김고은은 영화계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한 배우다. 그러나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단발성으로 재능을 뽐내는 것과 노래가 대사를 대신하는 뮤지컬 영화에서의 가창은 다른 의미다.
언젠가 한 번쯤 작업하리라 생각했던 윤제균 감독과의 만남이 '영웅'이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관객의 한 명으로서 즐겼던 뮤지컬 '영웅', 캐릭터 '설희'를 영화로 만나게 될지도 몰랐다.
모든 것이 도전의 연속인 작업이었다. 특히 윤제균 감독이 고집한 '현장 라이브 녹음'은 촬영을 앞둔 김고은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부담과 스트레스로부터 빠져나오는 법은 '연습' 뿐이었다고 했다.
Q. 이번 작품은 현장 라이브 녹음 방식으로 촬영했다. 현장 라이브라고 해도 후시녹음으로 사운드를 보강을 했을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는가?
A. 현장에서 인이어 마이크를 차고 연기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사전 녹음, 현장 녹음, 후시 녹음을 모두 다 했는데 현장 라이브를 70프로 정도 사용하고, 그걸 보정하고 나머지는 후시녹음으로 합치는 과정을 거쳤다.
Q.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인 건 알지만 뮤지컬 영화는 고차원적인 도전이었을 텐데.
A. 그렇다. 노래방에서만 노래를 불렀지 일로 부른 건 처음이었다. 어쨌든 잘 해내야만 했기 때문에 부담이 있었다. 노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스스로 많이 답답하기도 했다. 연습밖에 답이 없더라.('뮤지컬은 너무 어려워'라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A. 개인적으로 뮤지컬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국내에서 본격적인 뮤지컬 영화를 제작한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이 있었다. 처음에 대본을 받았을 때는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뮤지컬 '영웅'을 보러 갔다. 그 후 시나리오를 다시 읽으니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그려지더라. '영웅'이라는 작품이 주는 울림과 감동이 있기 때문에 작품적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Q. 대학(한예종) 동기들 중에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거나 뮤지컬 출연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다.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그들에게 어느 때보다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
A. 그렇다. 공연하는 친구들이 많아 조언을 얻었다. 물을 2리터 정도 마신다길래 나도 물을 의식적으로 많이 마시려 했다. 그리고 목을 보호하기 위해 잘때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잤다. 촬영이 없는 날에도 목을 감싸며 지냈다.친구들은 내게 '긴장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해라', '대화하듯이 노래를 불러라' 라고 조언했다. 그건 나도 아는데 노래가 나와야 감정을 싣든지 하지!!라고 답하곤 했다.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혼자 너무 괴로워하니까 친구들이 내내 격려를 많이 해줬다.
Q. 조선의 마지막 궁녀에서 독립운동을 돕는 첩보원으로 변신한 설희 캐릭터를 설계한 과정이 궁금하다. 원작에도 있는 인물이긴 하지만 영화만의 설희가 완성되었다. 사전에 연구나 공부가 많이 필요했을 것 같다.
A. 그때의 시대상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잘 알지 않나. 대본을 꼼꼼하게 살피는 과정이 첫 번째였다. 설희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가사에 집중해서 이 인물의 감정선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줘야 했다. 한 신 안에서 많은 표현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가사에 쓰인 감정선들에 더 집중하며 고민하고 연기했다. 명성황후의 수많은 궁녀 중 한 명이 아닌 인간적 친밀감을 형성한 사이라는 관계성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뮤지컬 '영웅'에서 연기하셨던 분들의 영상도 많이 봤다.
Q. 설희는 대사 할 때와 노래 부를 때 감정이 확연하게 다른데, 순간 감정에 몰입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설희는 표현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마음속에는 요동침이 큰 인물이다. 노래를 부르기 전에도 마음은 잡고 있었다. 노래에 담겨있는 고저나 이런 것들이 부르면서 더 몰입하게 되는 측면도 있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노래를 많이 불렀다.
Q. '당신을 기억합니다 황후마마여'와 '내 마음 왜 이렇까'는 뮤지컬 원곡이 있고 '그대 향한 나의 꿈'은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곡이다. 노래를 직접 부를 때 원곡이 있는 곡과 없는 곡의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한 가창할 때 원곡에서 가져온 포인트가 있었다면?
A. 원곡을 의식하기보다는 곡의 흐름에 따라 불렀다. 뮤지컬은 보다 명확하게 소리를 내고 노래를 객석에 잘 전달하는 것이 포인트지 않나. 그런 지점보다는 감정으로 인해 나오는 호흡에 집중하며 노래를 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신경 쓴 부분은 대사가 거의 없는 설희가 가사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생각해서 가사를 뭉그러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가사 전달력에도 신경을 썼다.
Q. 영화 속에서 보인 룩(한복과 기모노 의상을 비롯해 여러 스타일의 화장)을 통해 김고은의 새로운 얼굴은 본 것도 좋았다. 그런 룩을 하고 연기를 할 때의 마음은 어떤가? 명성황후 시해 장면에서의 연기와 이토 히로부미 살해에 실패한 후 장면 연기들이 참 좋았다. 절규하며 노래를 부를 때 약간의 쇳소리 같은 것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여겨지더라.
A. 예전에는 연기할 때 그렇게 디테일이 많은 의상과 화장을 안 해봤던 것 같다. 나도 좀 새로웠다. 정통 방식으로 기모노를 입었다. 입는 과정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힘들었다. 한복도 영화 속에서 입어본 게 처음이었다. 옷차림이 사람의 마음가짐에 영향을 주는 면이 있어서 참 좋았던 거 같다. 나에게 하나의 무기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랄까.
Q. 일본 무용에 일본어 연기까지 부담감이 상당했을 것 같다.
A. (웃음) 습득력이 좀 좋은 편인 것 같다. 일단 무용의 경우 연습만이 살길이니까 선생님을 만나서 배웠다. 연습한걸 영상으로 찍기도 해서 개인적으로 연습을 많이 했다. 극 중 설정상 설희는 일본인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본어를 구사해야 했다. 일어는 전혀 몰랐다. 일어 선생님과 함께 하며 준비했고, 선생님이 말씀하면 바로 따라서 대사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Q.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가장 감정적으로 와닿은 신은 무엇이었나?
A. 두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첫 번째는 명성황후 시해 장면이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인생 최고로 목놓아 울었다. 정말 소리를 많이 지르면서 울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중에는 목에서 피맛이 나더라. 얼굴도 너무 부어서 난리가 아니었다. 두 번째는 설희가 기차에서 '조선의 딸이기를 빌고 빌고 기도해'라는 대목을 부르는 장면이다.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 와닿았고, 그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서 가슴이 아팠다. 그 장면은 테이크를 꽤 많이 갔는데 그 대목에서 목이 너무 매여서 소리가 잘 안 나올 정도로 몰입했다.
Q. 다른 배우들의 출연 분량은 완성된 영화를 통해서 확인했을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
A. 내가 등장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출연진이 다 같이 합창하는 '그날을 기약하며'라는 넘버가 웅장하고 좋더라. 배우들의 표정도 고스란히 느껴져서 '아 저 장면 찍을 때 좋았구나' 싶었다.
Q. 설희를 연기하면서 배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연기적으로, 인간적으로 배운 점이 있다면?
A. 설희의 결단과 똑똑함, 대범함을 보며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가 어떻게 저렇게 대범하고 용기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연기적으로는 설희가 느꼈을 극단적 감정들을 내가 잘 표현해야 했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 시대엔 분명 설희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마음을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Q. 정성화 배우가 자신의 인생 캐릭터로 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너무나 훌륭히 잘 해냈다. 비록 극 중에서 함께 붙는 신은 없었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모습은 어땠나? 배우로서 배우고 싶었던 점이 있었다면?
A. 선배님을 보면, 물론 타고나신 부분도 많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인 것 같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노력을 하시더라. 그런 지점들이 존경스럽다. 또한 성실함도 본받고 싶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체중 감량을 많이 하셨다. 그러면 말수가 적어지거나 에너지가 떨어지거나 예민할 법도 할 텐데 계속 웃으면서 장난 치시더라. 그분이 계속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것도 잊을 정도로 융화가 됐다. 너무 좋은 사람이고 좋은 배우다.
Q. 이번 작품은 유독 육체적,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일적으로 몸이 지칠 때 충전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또한 슬럼프나 부침을 느낄 때 이겨내는 자신만의 노하우도 있을 것 같다.
A. 나는 되게 간단하다. 여유가 있을 때 예능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재밌는 것 보면서 깔깔거리고 웃고, 노래방을 간다던지 친구나 지인을 불러내 수다를 떤다. 만약 친구가 시간이 안되거나 하면 엄마, 아빠에게 영상통화라도 걸어서 마주 보면서 한잔하기도 한다. 최대한 그날 스트레스는 그날 풀려고 한다.
Q. 촬영 현장에서 어떤 선배이자 후배인지도 궁금하다.
A. 어떤 선배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고, 후배로서는 최대한 선배들을 어려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선배가 돼 보니까 후배가 마음이 훨씬 마음이 편한 것을 알았다. 더 쉬운 후배가 되려고, 더 가까운 후배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나마 개그감이 좀 괜찮아서 현장에서도 재밌게 있으려고 유머를 친다.
Q. 데뷔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연기 인생에서 이번 영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지,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게 있는지도 궁금하다.
A. 이번 영화는 새로운 장르에 대해서 도전했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 영화에도 뮤지컬 영화가 선보일 수 있고 그 여정에 함께 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그냥 '좋은 배우'로 남고 싶다. 또 '저 배우가 나오는 거면 이유가 있겠지?'하는 믿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이루고 싶은 건? 꾸준하게 작품을 잘해나가고 싶다.
Q. 2022년 계획한 건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나? 2023년 새해 계획이 있다면?
A. 계획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MBTI에서 나는 J(판단형)가 아닌 P(인식형)가 나온다.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스타일이다. 오늘 하루를 잘 살고 싶고, 오늘 하루가 중요하고, 현재를 잘 살자 주의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서 연말이 됐다. 2022년에는 두 작품을 했고, 지금도 작품을 찍고 있다. '올 한 해도 잘 해냈다' 그런 느낌이어서, 2023년에도 지금하고 있는 것을 잘 마무리하는 게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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