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수리남' 윤종빈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9.22 13:37 수정 2022.09.23 16:52 조회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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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윤종빈 감독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시대의 결핍과 집단의 갈등, 인물의 사정을 아울러 매력적인 드라마로 만들어내는 특유의 감각은 학습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야기의 재미를 살려내는 촉수와 동물적 감각에서 기인한다. 여기에 다양한 경험이 더해져 농익은 연출력은 매체와 플랫폼을 넘어 어디에서도 통한다.

이야기꾼 면모는 작품에서도 드러나지만 대화에서도 여실히 느껴진다. 작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하는 그의 화술은 또 한 편의 파생 콘텐츠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의 첫 OTT 드라마 '수리남'의 인터뷰 자리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듣는 이의 귀를 열게 했고, 호기심을 자극했다.

2000년대 중반 중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에서 맹위를 떨쳤던 마약왕 조봉행 사건을 극화한 '수리남'은 실화를 다루는 그의 능수능란한 솜씨가 온전히 드러난 수작이다.

드라마틱한 실화라고 해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극의 재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는 취사선택이 중요하다. 여기에 하나 더 감독의 뷰파인더라고 할 수 있는 시선과 주제의식도 필요하다.

"실제가 더 영화 같았다"는 그의 말에서 각본 집필의 어려움이 엿보이기도 했다. 쉽게 믿을 수 없는 실화를 어떻게 하면 영화적으로, 드라마적으로 만들지가 관건이었던 작업이었다는 말이다.

윤종빈 감독은 취사선택과 차별화를 통해 '수리남'을 매력적인 픽션극으로 완성했다.

수리남

◆ 실화와 픽션 사이...윤종빈의 취사선택

드라마든 영화든 대중 문화 콘텐츠는 어쩔 수 없이 만든 이의 시선이 반영된다. 특히 연출자가 각본과 연출을 겸하는 경우 성향과 취향이 작품에 더욱 짙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윤종빈 감독은 '남미를 뒤흔든 한국(출신)의 마약왕' 이야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요소요소에 넣었다.

'수리남'을 본 많은 사람들이 비교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마약 소재 드라마 '나르코스'와 '브레이킹 배드'를 그 역시 일찌감치 봤다. 그러나 콘텐츠를 재밌게 보는 것과 영향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는 '수리남'을 만드는 데 있어 마약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평범한 인물이 큰 사건에 휘말리며 범죄자를 잡는데 협조하게 되는 '언더커버'(undercover·위장수사)에 방점을 찍었다.

윤종빈 감독은 "이 시리즈를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힘을 빼고, 감독과 작가로서의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자'였다"고 말했다.

서양의 장르물에서 익숙한 소재인 '마약'을 한국 드라마로 요리하면서 윤종빈은 자신만의 색깔을 더했다. 한국적인 식재료인 홍어라던가 사람들을 쉽사리 현혹하는 사이비 목사 이야기 여기에 가족의 생계와 행복을 위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전통적 가장의 이미지가 드라마 전반을 지배한다.

"의도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녹이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만나본 실존인물 K씨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게 돈 벌어 자식들 대학에 입학시키고, 시집 장가도 보냈다. 홍어 이야기도 실제 인물의 사연에서 따온 것이다"

넷플릭스 '수리남' 스틸컷

윤종빈 감독은 조봉행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실존 인물 K씨를 세 차례 만났고, 그의 녹취록을 참고해 각본을 써내려 나갔다. 평범한 인물이 마약 조직의 보스와 한 집에 살며 은밀하게 작전을 전개했고, 성공시켰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실제가 더 영화적이어서 덜어낼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도 적잖았다.

"드라마와 달리 K씨는 3년간 조봉행의 집에서 살았다. 머리를 빡빡 밀고 차이나타운에 들어가서 중국 갱과 싸움을 펼쳤다고도 하더라. 그런데 그건 너무 '디파티드'나 '무간도' 같아서 뺐다. 극 중 에피소드처럼 총격전도 실제로 했다고 하더라. 무슨 깡으로 그랬을까.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드라마로 만들 때 강인구의 전사를 1회에 빼곡하게 넣었다. 그가 보통사람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회가 쳐진다는 지적은 각본 단계에서도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늘어지더라도 후반 전개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강인구의 전사(前史)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을 넣었다"

'마약'이라는 소재 자체를 중심으로 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코카인의 역사도 공부했다고 했다. 또한 마약 전쟁을 둘러싼 남미와 미국의 관계 그리고 미국 DEA(마약단속국)에 관한 것도 찾아봤다.

윤 감독은 "그런 걸 알아야 이야기를 제대로 꾸며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국과 관련한 것이었다. 만약 해외의 마약이 미국 내에 유통된다면 미국은 당사국의 허락 없이도 들이닥쳐 마약사범을 잡아갈 수 있다. 과거 미국이 마약 밀매 혐의를 받은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를 체포한 사건도 있지 않았나. 너무 깡패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넷플릭스 '수리남' 스틸컷

◆ 마약왕과 언더커버...그리고 아버지 서사

'수리남'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촬영을 진행했다. 수리남 현지 촬영은 불가능했기에 그곳을 생생하게 재현할 공간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이 낙점됐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으로 올 로케이션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윤종빈 감독은 제주도의 한 리조트를 전요환의 저택으로 꾸몄고, 주변에 진짜 야자수를 심어 남미의 풍경을 재현했다. 여기에 수리남의 차이나타운과 전요환 저택의 내·외부는 전주, 부산, 무주 등의 촬영을 더해 이어 붙였다. 그 결과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다. 감쪽같은 가짜가 만들어졌다.

그간 한국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사람과 공간도 담아냈다. 강인구의 교도소 장면들에서 등장한 죄수들은 실제 도미니카 교소도의 죄수들이었다. 또한 수리남 대통령궁으로 등장한 공간은 '대부2'에도 등장한 바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대통령궁이다.

"죄수들은 영치금을 넣어주고 촬영에 동원했다. 수리남의 대통령궁으로 등장한 공간은 도미니카 공화국 대통령궁인데 영화 '대부2'의 쿠바 장면에 나온 곳이기도 하다. 도미니카 측에서 촬영 협조를 잘해주었다. 한 번은 해질 때쯤 드론을 띄워 촬영해야 하는 신이 있었는데 갑자기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들어와야 하니 드론을 내려달라고 하더라. 그런데 '꼭 이 시간에 찍어야만 하는 매직 아워신이니까 조금만 늦게 돌아오면 안 되냐'고 부탁했다. 결국 그쪽에서 협조를 해줬다. (웃음)"

수리남

공간과 의상은 배우가 캐릭터에 보다 더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전요환을 연기한 황정민은 신들린 듯 연기해냈다. 한국의 사기꾼으로 출발해 수리남의 마약왕이 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서사는 황정민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에 의해 설득력을 얻었다. 전요환이 수리남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사람들을 휘어잡은 결정적 계기로 '사이비 목사'라는 설정을 넣은 것도 신의 한 수였다.

"그 부분이 실화와 크게 다른 점이다. 사이비 목사로 설정한 이유는 극의 리얼리티를 불어넣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하면 강인구가 전요환과 엮이게 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목사라는 직업이 안성맞춤이었다. 그 직업 하면 떠오르는 권위와 믿음이 있지 않나. 사람들이 쉽게 잘 믿기도 하는 직업이다. 여기에 사이비 목사라면 더 재밌는 설정이 될 것 같더라"

'수리남'의 수려한 프로덕션과 연기는 생동감 넘치는 각본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매력적인 서브플롯의 유기적 연결과 찰진 대사들이 더해져 장르적 재미와 캐릭터의 매력, 한국적 정서까지 살아났다.

"코카인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주님의 은총입니다", "홍어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식사는 잡쉈어?"와 같은 대사들도 인상적이다. 윤종빈 감독은 "제 아이디어도 있고 각본을 같이 쓴 권성휘 작가의 아이디어도 있다"고 말했다. 황정민의 입에 착착 붙는 욕대사도 마찬가지다.

수리남

"황정민 선배의 자연스러운 애드리브도 있고, 제가 현장에서 추가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아, 오늘 은혜로는 날이네"라는 대사를 그냥하면 밋밋 하니 욕을 더하는 식으로 대사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욕을 하는, 사이비 목사니까 넣을 수 있는 설정이었다"

시청자 입장에서 개연성 부족으로 보일 수 있는 몇몇 설정에 대해서도 윤 감독의 변을 들어봤다. 크게 두 가지였다. 먼저 강인구가 전요환의 믿음을 살만한 이유가 크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는 질문을 던졌다.

윤종빈 감독은 "브라질 거래 장면에 드러나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본질적으로 어떤 활약보다는 전요환은 촉으로 강인구가 자신과 같은 과라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무엇보다 돈에 대한 공통된 욕망이 가장 컸다. 전요환은 죄다 거짓말이고 가짜인데 그가 진심인 두 가지가 있다. 돈과 야구. 강인구도 돈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보였을 것이다. 또한 "현대 자동차에서 1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라는 강인구의 말처럼 필요할 때 거짓말을 잘하고 임기응변이 좋은 모습을 보면서 "얘 내과인데?"라는 흥미와 믿음을 가졌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민간인인 강인구가 위험천만한 국정원의 비밀작전을 끝까지 끈질기게 수행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의견도 전했다. 윤 감독은 "그가 엄청난 정의감이 있어서 '이 사람을 꼭 잡아서 뭘 해야겠다'는 아니다. 실존인물 K씨는 '돈도 다 잃고 내 인생도 망했기 때문에...' 라고 하더라. 그러나 그건 너무 관념적이라 작품 안에서 설명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돈 설정을 세게 넣었다. 국정원이 선수금을 주지 않았나. 잔금을 받기 위한 노력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친구 응수의 비극을 영화적 설정으로 집어넣었다. 그건 강력한 동기 부여인 동시에 그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설정이 될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

수리남

'수리남'에는 한국 가장에 대한 묘사가 꽤 흥미롭게 등장한다. 강인구가 목숨을 걸고 비밀작전을 수행하다가도 한국에 있는 자식들과 통화할 때 천연덕스럽게 시험 점수를 체크하는 모습은 우리의 정서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과거 '범죄와의 전쟁'에서부터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향수가 이번 작품에도 드리워져 있다. '범죄와의 전쟁'이 부정적인 묘사도 있었다면 '수리남'에서의 묘사는 따뜻하고 정겹다. 그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어떤 존재이며, 작품의 서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제가 나이가 들고 아빠가 되어서 그런 건 아니고, 실존 인물이 그랬다. 두 작품 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범전'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나쁜 짓도 하는 아버지라면 '수리남'은 가족 때문에 혹은 아버지기 때문에 선을 넘지 않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강인구는 중간에 전요환이 제안하는 돈의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끝까지 선을 넘지 않는다. 그건 자기 딸 같은 애들에게 약 먹이는 인간이랑 손 잡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건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작품에 아버지에 대한 묘사가 많은 것에 대해서는 "내 무의식에 아버지에 관한 어떤 것이 있을 수는 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제 스스로 그리움, 연민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제가 영화인 중에 결혼을 일찍 한 편이다. 빨리 아빠가 되고 싶었다. 아무래도 아버지와 좋은 추억이 없다 보니 역으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러한 개인적 정서가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는지는 나도 내 무의식를 한 번 체크해봐야 알 것 같다"고 답했다.

수리남

◆ "시즌2 제작? 4년을 매달렸는데 시즌2까지 하려면 8년 글쎄..."

윤종빈 감독은 OTT 드라마를 통해 플랫폼을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껏 영화를 내놓을 때 받았던 것보다 더 많은 연락을 받았다. 기억도 잘 안나는 초등학교 동창부터 해외에 파견 나가 있는 친구, 자동차 보험 담당자한테까지 '드라마 잘 봤다'며 연락이 오더라"고 웃어 보였다.

특별히 남자 시청자들이 크다고 반응하자 "제 작품은 여자들이 별로 안 좋아하긴 하죠"라고 반응했다. 윤종빈의 작품 세계를 보면 크게 자신의 경험으로 한 이야기거나 취재를 통해 매력적인 픽션을 완성한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공통점은 남자들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거의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군대 이야기, 밤세계의 이야기, 아버지의 이야기, 남북 관계에 관한 이야기, 마약 조직 소탕 작전 등이다. 이제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제 경험도 있고, 친구 아버지 이야기도 있고, 취재도 섞여 있다. '군도'를 제외하고는 늘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해왔다. 제가 가장 잘하는 거긴 한데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르적인 색채가 덜한 미니멀한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작품은 이제 관객들이 극장에서 보길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볼거리가 많고 ,스펙터클이 있고, 액션이 있는 즉 눈과 귀를 자극시켜주는 영화를 보길 원하시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제가 말한 류의 작품들은 OTT로 많이 가지 않을까 싶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미니멀한 형식, 사람 냄새 많이 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런데 배우들이랑 아이템 이야기를 해봐도 '수리남' 을 이야기할 때랑 미니멀한 작품을 이야기할 때 반응부터가 다르다. 관객이든 배우든 장르적이고 볼거리가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윤종빈

윤종빈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여야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면 가장 좋다. 어쨌든 영화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매체지 않나. 투자한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늘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떤 영화를 만들지가 고민이다"라고 덧붙였다.

'수리남' 시즌2 제작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그는 "엔딩을 보면 아시겠지만 닫힌 결말이다. 이 작품을 만드는데 약 4년이 걸렸다. 시즌2를 한다면 내 인생에서 또 4년을...힘든 일이다"라고 솔직히 말했다.

새로운 매체와 플랫폼 진출에 대한 윤종빈의 첫 도전은 성공적이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리얼리즘 드라마를 만드는 그의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발군이다.

그렇다고 해도 변함없는 사실은 윤종빈의 정체성은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 드라마를 하며 드라마만의 매력을 느낀 반면 영화의 매력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을 터. 윤종빈의 차기작은 아마도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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