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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비상선언', 항공 블록버스터의 진화…아쉬운 용두사미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8.06 11:00 수정 2022.08.08 10:39 조회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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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한재림 감독의 신작 '비상선언'에서 가장 먼저 놀란 점은 '하이재킹'(운항 중인 항공기를 불법으로 납치하는 행위)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 놀란 것은 기내 안에서 승객의 공포를 유발하는 행위, 그 공포를 스크린 밖 관객에게 확산시키는 설정들이 예상을 벗어난 점이었다.

베테랑 형사 팀장 인호(송강호)는 비행기 테러 예고 영상 제보를 받고 사건을 수사하던 중 용의자가 실제로 인천발 하와이행 KI501 항공편에 타고 있음을 파악한다. 딸의 치료를 위해 비행 공포증임에도 불구하고 하와이로 떠나기로 한 재혁(이병헌)은 주변을 맴돌며 위협적인 말을 하는 낯선 이가 신경 쓰인다.

하와이로 이륙한 KI501 항공편에서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비행기 안은 물론 지상까지 혼란과 두려움의 현장으로 뒤바뀐다. 이 소식을 들은 국토부 장관 숙희(전도연)는 대테러센터를 구성하고 비행기를 착륙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28 000 피트 상공, 150명의 승객 한재림 감독 작품 비상선언 8월 IMAX 대개봉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누구나 한 번쯤 비행기 안에서 극한의 공포감을 느껴봤을 것이다. 짧은 터뷸런스에도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폐쇄된 공간이 유발하는 공포, 공간을 빠져나가 봤자 사방이 뻥 뚫린 하늘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탈출이 생존을 담보하지 않는 공간이 '나는 비행기' 안이다.

'비상선언'은 공항에서 시작해 빠르게 주요 인물들을 비행기에 태운다. 테러범의 정체도 바로 공개된다. 테러의 발생 자체보다는 테러 발생 후 종결까지의 과정이 핵심인 영화다.

영화는 사람들이 크고 작게나마 경험한 바 있는 비행기 안 공포를 기술적으로 실감 나게 묘사하며 관객을 빠르게 몰입시킨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몸이 들리고, 머리카락이 쭈뻣 서는 장면은 여느 한국 영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극한의 체험이다. 사운드 효과도 일품이다.

이는 미국에서 들여온 보잉 777기 동체를 세트로 만든 후 유압식 기계장치에 올려놓고 흔들거나 회전시켜가며 터뷸런스 상황을 현실화했다. 배우가 상황을 가정하고 연기를 한 후 특수효과를 덧입혀 완성한 게 아니라 기체를 360도 회전해가며 실제 상황과 같은 긴박함을 살렸다. 항공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보여준 기술적 성취는 놀라운 수준이다. 이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어우러지며 영화의 재미를 끌어올린다. 이 영화의 특화된 기술력을 만끽하기 위한 최적의 상영 포맷으로 4DX, 4DX SCREEN, 수퍼 4D를 추천한다.

비상

테러범이 살포하는 생화학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도 빛과 먼지 등의 효과를 통해 실감 나게 그렸다. 코로나19 시대를 살고 있기에 바이러스의 감염과 확산은 비행기 납치 테러라는 설정보다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최근 재난 영화의 흐름은 재난의 공포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비상선언' 역시 인재 혹은 사회적 재난에 포커스를 맞추며 재미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려고 한다.

기내 테러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한 사람에 의해서 발생하지만 승객의 목숨을 건 착륙은 개인과 집단, 사회와 국가의 무수한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비행기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시스템이 부재한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 시행착오와 엇박자의 연속이다.

한재림 감독은 '비행선언'을 통해 재난 블록버스터와 사회 드라마를 결합하려는 야심을 보여준다. 그의 명확한 의도는 풍자와 비판이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국가, 타국의 위험을 외면하는 이웃 국가, 극한의 상황에서 피어오르는 이기주의, 다수를 희생하라는 여론의 폭력성 등 재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설정했다. 감독은 이런 상황들을 연쇄적으로 등장시킨 후, 위기와 해소를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전개를 중반 이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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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문제는 신파가 아니다.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승객들이 느낄 여러 감정들의 묘사가 억지스러운 설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위기의 설정과 해소 방식, 그 방향성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연쇄적인 위기 상황들은 갈등과 해소의 반복적 구조로 관객을 다소 지치게 만든다. 또한 축소해 묘사해서는 안 되는 이슈들을 장르 영화의 재미를 위해 편의적으로 소비한다는 인상도 준다.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 너무 많은 담론을 담으려다가 중심을 잃은 형국이다.

영화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극한의 상황을 제시한 후 사람들의 크고 작은 선택들을 보여준다. 특히 후반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두 가지 선택이 등장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몇 해 전 국가적 참사 앞에서 거대한 무기력함을 경험한 바 있다. 개개인에게 크기는 다르겠으나 누구도 무관하지 않을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비상선언'의 설정과 선택들은 오락으로 불편함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휴머니즘이나 이타주의로 쉽게 귀결되지 않는다.

한재림 감독은 사실상 영화의 엔딩을 열어놨다. 후반부의 결정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끊고 매조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조금 이상한 분위기를 풍긴다.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엔 어색하고, 새드엔딩이라고 한다면 이 장면이 가진 의도에 대해서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 역시 한 인물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고, 그가 종전에 가졌던 트라우마를 생각한다면 후자일 경우 너무나 잔인한 엔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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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송강호, 전도연, 이병헌, 김남길, 김소진, 임시완, 박해준 등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나온다. 그러나 캐릭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없다. 캐릭터 자체의 개성과 매력을 부여받지 못하다 보니 배우의 역량과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송강호가 연기한 캐릭터는 공감할 수 없는 선택을 하며 아쉬움을 남긴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로 꼽히는 전도연은 이 영화의 미스 캐스팅이다. 캐릭터 자체로도 존재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며, 연기의 톤 앤 매너도 적절하게 설정됐다고 보기 어렵다.

영화를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배우는 테러범을 연기한 임시완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두고 평가하자면 맥거핀 역할에 그쳤지만, 연기력과 존재감 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비상선언'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국 최초의 항공 블록버스터 장르를 새롭게 개척했다. 다만,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서스펜스와 스펙터클을 다잡은 전반부와 달리 재난 드라마에 집중한 후반부에 대한 관객의 만족도는 크게 갈릴 것을 보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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