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영화 스크린 현장

'아름다운 별, 영원히' 강수연, 영화인들과 함께 한 마지막 길(종합)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5.11 11:41 수정 2022.05.11 11:44 조회 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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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연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나의 사부님,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별이 돼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배우 강수연'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대중들은 '월드 스타'를 가장 먼저 언급하겠지만, 영화인들에게 강수연은 가족이었고 스승이었다. 연기 외길 50여 년, 강수연이 한국 영화계에 남긴 발자취는 너무나 뚜렷했다.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같은 화려한 이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 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을 챙기고, 나아가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발로 뛰었다. 영화인 모두의 가슴에 '강수연'은 아로새겨져 있었다.

55년 짧은 생을 마감한 故 강수연의 영결식이 10일 오전 영화인들의 참석 아래 진행됐다. 이날 식은 영화진흥위원회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됐다. 약 2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영결식을 관람하며 실시간 댓글을 달 정도로 추모 열기는 뜨거웠다.

강수연

영결식은 배우 유지태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김동호·임권택·문소리·설경구·연상호가 추도사를 했다. 가장 먼저 추도사를 읖은 건 고인과 33년 인연을 자랑하는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었다.

김동호 이사장은 "한 달 전에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했는데 이 무슨 일이냐"며 고인과의 이별을 황망해했다. 이어 "강수연은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월드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명예를 지고 살아왔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잘 버티면서 더 명예롭게, 더 스타답게 잘 견디면서 살아왔다. 또한 당신은 억새고도 지혜롭고 강한 가장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색하지도 않고 부모님과 큰 오빠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왔고 동생을 잘 이끌어왔다"라고 고인이 짊어져야 했던 책임과 부담을 위로하기도 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본 고인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면서 "누워 있는 당신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강수연 씨 부디 영면하시길 바란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강수연

영화 '씨받이'와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연출하며 강수연에게 '월드 스타'의 칭호를 선사했던 임권택 감독은 "수연아, 친구처럼 동생처럼 네가 곁에 있어 늘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 서둘러 떠났니. 편히 쉬어라"라고 짧고 굵은 추도사를 전했다.

배우들의 추도사는 절절했다. 고인과의 추억을 담은 일화들과 후배들에게 끼친 영향력을 언급하는 내용이었다. 설경구는 강수연을 '사부', 자신을 '조수'로 표현하며 선배로부터 받았던 '가르침'을 언급했다.

영화 데뷔작 '송어'(1998)에서 강수연을 처음 만났다는 설경구는 "영화의 경험이 없던 저를 세세히 이끌어줬다. 또한 선임부터 막내까지 챙겨주던 따뜻한 선배였다. 선배의 조수였던 것이 저는 너무 행복했다"면서 "나의 친구, 나의 누이, 나의 사부님. 보여준 사랑과 배려, 헌신 잊지 않겠다. 함께해서 행복했다. 너무 보고 싶다. 당신의 영원한 조수 설경구"라며 추도사를 전했다.

문소리는 '언니'라는 정겨운 표현으로 고인과의 인연과 추억을 나눴다. 자신이 사랑했던 고인의 대표작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와 '경마장 가는 길'을 언급하면서 '배우 강수연'의 발자취를 더듬었고 추도사 말미에는 눈물을 흘리며 "언니 잘 가시길 바란다. 언니의 한국 영화를 향한 마음 잊지 않을 것이다. 언니의 가오도 목소리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다음에 우리 만나면 같이 영화하자"고 다짐했다.

강수연

강수연의 유작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도 추도사에서 고인과의 추억을 곱씹었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작이었던 자신의 초기작 '돼지의 왕'을 언급하며 강수연이 있었기에 오늘날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또한 "강수연 그 자체가 한국 영화다. 무거운 멍에를 선배는 무거워하지 않았다"면서 "'정이'를 준비할 때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두려움도 컸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배우가 강수연이었다. 한국 영화의 아이콘이자 독보적인 아우라를 전하는 강수연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용기를 내 강수연 선배에게 제안했고 '한번 해보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라고 말했다.

고인과 함께 한 유작을 잘 성공시키겠다는 다짐도 전했다. 연상호 감독은 "영결식이 끝나고 다시 편집실로 돌아가 강수연 선배의 얼굴과 마주할 것이다. 강수연의 연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선배의 마지막 영화를 함께하며 동행을 하게 됐다. 선배의 마지막 백이 되어주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강수연

영화인들의 추도사가 마무리된 후에는 강수연의 동생인 강 모 씨가 나와 "영화인들 때문에 고인의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았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이후에는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는 관에 손을 올리며 고인과 작별인사를 나눴고, 누군가는 절을 하며 고인에게 예를 다했다. 대부분의 영화인들은 눈시울을 붉혔고 오열했다.

영결식을 마친 후에는 정우성, 설경구, 연상호 등의 영화인들이 운구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인들과 함께 더 의미 깊었던 '영화인 강수연'의 영결식이었다.

강수연 영정사진

강수연은 1969년 4살의 나이에 동양방송 전속 아역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83년 방영된 KBS1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하이틴 스타로 도약했으며, 성인이 돼 출연한 영화 '고래 사냥 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의 잇따른 성공으로 당대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다.

1986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1989년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도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하며 '월드 스타'의 수식어도 얻었다. 199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시기에는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질적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2000년대에는 행정가로 변신해 영화계 현안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냈고,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오랫동안 주춧돌 역할을 해왔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도 활약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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