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수)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할리우드 배우들의 '둔갑술'…오스카와 라즈베리 사이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4.06 15:43 수정 2022.04.06 17:47 조회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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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갑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변신의 귀재'라는 말은 배우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매 작품, 새로운 캐릭터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배우에겐 그만큼 자신의 롤을 잘 수행했다는 훈장 같은 의미의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배우가 캐릭터를 소화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중 콘스탄틴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창안한 '메소드 연기'(Method Acting)는 오랫동안 배우들이 추구해온 방법이다. 극 중 인물과 배우의 동일시를 이뤄내는 극사실주의 연기 방식이다. 이는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으로 유명한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에 의해 '드니로 어프로치'(De Niro Approach: 맡은 배역을 위해 자신의 외부적 조건을 변화시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기 스타일)로 파생되기도 했다.

애초부터 외형 묘사가 중요한 캐릭터들이 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실존 인물을 연기하거나 원작이 있는 작품 속 인물을 연기할 경우 특히 그렇다. 배우와 캐릭터의 외모 간극이 클 때 배우들은 체중을 늘이거나 빼고, 분장의 힘을 빌린다. 영화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CG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여전히 극영화에서는 배우 스스로의 노력에 더 많이 기댄다.

최근 몇몇 영화에서 배우들이 특수분장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지우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구현해내 놀라움을 자아냈다. '어떤 배우가 누구를 연기했다'라는 사전 정보가 없다면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누군지 모를 정도다.

이 정도면 분장술이 아닌 둔갑술이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배우 본연의 얼굴을 지우고 캐릭터로 자신의 연기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겠다는 배우의 의지와 욕심이 엿보이는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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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세요?"…분장술 넘어선 둔갑술 수준

제시카 차스테인, 콜린 파렐, 자레드 레토는 최근작에서 모두 극단적인 분장을 하고 연기를 펼쳤다. 공통점은 엔딩 크레디트를 보지 않고 극장을 나섰다면 모두 누군지 몰라볼 수준의 페이스 오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타미 페이의 눈'에서 1970~80년대에 세계적인 종교 방송망과 테마파크를 세운 TV 전도사 '타미 페이'로 분했다. 영화가 정식으로 공개되기 전 오픈된 포스터와 캐릭터 스틸에서 타미 페이의 외모를 고스란히 재현해내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전작에서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 역할을 잇따라 맡으며 '차도녀' 이미지를 구축해온 배우였기에 이번 변신은 더욱 놀라웠다.

'더 배트맨'의 콜린 파렐과 '하우스 오브 구찌'의 자레드 레토는 '누구세요?' 수준의 변신을 감행했다. 제시카 차스테인의 경우 분장을 통해 캐릭터의 외형에 근접하게 다가간 경우라면 콜린 파렐과 자레드 레토는 둔갑 수준의 특수 분장을 했다.

콜린 파렐은 '더 배트맨'에서 펭귄맨으로 분했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1편에서 데니 드 비토가 연기해 유명세를 탄 악역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데니 드 비토보다 큰 체구의 펭귄맨이 등장했다. 콜린 파렐은 100kg가 넘는 거구로 변신하기 위해 촬영 내내 팻 수트를 입고 연기했으며, 뾰족한 코와 흉터 가득한 얼굴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 분장을 감행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콜린 파렐임을 알아볼 수 없을 완벽한 외모 변신이었다.

자레드 레토는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구찌가의 망나니 파올로 구찌로 분했다. 대머리에 콧수염, 원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이탈리아 악센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 배우가 자레드 레토라고 생각한 관객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는 6시간에 걸친 특수분장으로 자신의 얼굴을 완전히 지웠다. 목소리까지 완벽히 변화를 줬기에 대부분의 관객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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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롯이 캐릭터로 승부…연기만 보인다

'타미 페이의 눈'은 영화 제목처럼 그녀의 눈을 클로즈업하며 시작된다. 거미 다리같이 까맣고 짙은 타미 페이의 속눈썹과 피에로의 그것과 같은 선명한 라인의 입술은 타미 페이를 상징하는 외모적 특징이다. 타미 페이는 기존 화장을 지우고 새롭게 메이크업을 하자는 방송 관계자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이는 제시카 차스테인이 이번 영화에서 특수 분장을 마다할 수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이게 제 트레이드 마크거든요. 이걸 빼면 제가 아니에요"

제시카 차스테인은 캐릭터의 20대 시절부터 50대 시절까지 폭넓게 연기했다. 부와 명예를 얻을수록 타미 페이의 의상과 외모는 더욱 화려해진다. 짙은 메이크업 아래 가려진 타미 페이의 자아는 병들고 지쳐간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이런 타미 페이를 연기하기 위해 매번 5~7시간에 가까운 분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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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레드 레토는 할리우드에서 메소드 연기를 추구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챕터 27'에서는 존 레논을 죽인 살인마 '마크 채프먼'을 연기하기 위해 30kg를 찌웠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는 26kg를 감량해 트렌스젠더 '레이언'을 표현했다. 이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는 또 한 번의 파격적인 분장으로 '조커'의 요란한 외모를 재현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잘생긴 얼굴을 그대로 활용한 적이 별로 없다. 그는 메소드 연기의 신봉자다.

최근 '모비우스' 개봉을 앞두고 국내 취재진과 만난 자레드 레토는 "육체적으로 도전적인 작품을 좋아하지만, 캐릭터의 영혼을 제대로 연기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그에게 육체적인 변화는 캐릭터의 영혼을 흡수하는 첫 번째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분장을 해야 할 정도로 배우와 캐릭터 간 외모 간극이 크다면 굳이 이 배우를 캐스팅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캐릭터의 외형에 유사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이들이 보여준 답은 '외모 싱크로율은 분장으로 극복 가능하지만 연기의 내공은 쉽사리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배우의 아이덴티티는 결국 연기에서 나온다.

타미

◆ 오스카와 골든 라즈베리 사이…찬사와 조롱의 희비

모든 둔갑술이 극찬을 받은 것은 아니다. 어떤 배우에겐 인생 최고의 환희를 안겼지만, 어떤 배우에게는 흑역사로 남기도 한다. 배우와 캐릭터의 매칭도 중요하고,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변신이었는가도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타미 페이의 눈'으로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과거 '헬프'와 '제로 다크 서티'로 두 차례 후보에 올랐고, 세 번째 도전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주연상 경쟁은 어느 해보다 치열했다. 니콜 키드먼, 올리비아 콜먼 등 오스카 수상 경력이 있는 배우와 인생 최고의 열연을 펼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기세가 매서웠지만 제시카 차스테인의 내·외면을 완벽히 통제한 메소드 연기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이번 시상식에서 '타미 페이의 눈'은 분장상도 수상했다. 차스테인의 메소드 연기를 가능하게 했던 분장술은 영화의 일등공신이었다. 

오스카

자레드 레토의 과감한 도전은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열린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골든 라즈베리는 그해 최악의 영화와 최악의 연기를 꼽는 불명예 시상식이다.

콜린 파렐의 경우도 자신을 꼭꼭 숨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존재감도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타 배우를 기용하고도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얻지 못했다면 도전적인 캐스팅은 절반의 성공에 그치고 만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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