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영화 핫 리뷰

[빅픽처] '벨파스트', 벨파스트에 의한·벨파스트를 위한 헌사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3.30 17:22 수정 2022.03.30 17:31 조회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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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파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어떤 이의 마음에는 여우가 살고, 어떤 이의 마음에는 늑대가 산다. 예술 두 살의 영화감독 케네스 브래너의 마음에는 9살 소년이 살고 있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돌아온 케네스 브래너는 신작 '벨파스트'에서 자신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9살 소년을 스크린에 소환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출발해 관객 모두의 향수를 자극하는 마법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벨파스트의, 벨파스트에 의한, 벨파스트를 위한 헌사다. 또한 고향을 떠나왔거나, 고향을 잊지 못하는 이들의 추억 소환 여행과 같은 영화다.

9살 소년 버디(주드 힐)는 용을 잡겠다며 칼과 방패를 들고 친구들과 골목길을 뛰어다닌다. 그러다 일상의 행복을 깨는 폭음 소리가 들려오고 골목은 아수라장이 된다. 천주교도를 몰아내려는 개신교도의 공격이었다. 정겹고 따뜻했던 골목길은 일순간 갈등과 반목의 화약고가 된다.

벨파

영화의 배경은 1969년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둘러싼 잔류파와 독립파의 갈등은 개신교와 천주교의 대립이라는 종교적 분열로도 이어졌다. 양측의 대립은 정치, 경제, 사회의 갈등으로 확대되며 무력 충돌로 치달았다.

천진난만한 9살 소년의 눈에 경계와 분리란 있을 수 없다. 동네는 개신교도 주민과 천주교도 주민들이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경계일 뿐 아이들의 세계에 바리케이드란 존재하지 않는다. 버디는 짝사랑하는 캐서린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지, 그녀의 종교가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시대의 공기를 배제하고 낭만만을 취한 것은 아니다. 필터란 존재하지 않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오히려 시대의 아픔과 나라가 처한 상황을 단순하게 전달한다. 어른들이 주고받는 현실 대화는 버디에겐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언어지만, 이념과 신념이 대립하는 풍경이 익숙한 영화 밖 관객에게는 선명하게 와닿는다. 특히 이 비애는 비슷한 아픔을 겪은 바 있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버디의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영국 런던으로 출퇴근하는 목수다. 가족을 위한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그는 국경을 넘는 일이 힘겨워지자 영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한다. 두 아이의 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버디의 엄마를 조국을 떠나는 것이 싫다며 반대한다. 두 사람은 런던 이주를 놓고 오랜 시간 갈등하지만 벨파스트 내 종교적 대립이 심화되며 가족의 안위를 위한 이민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다.

벨파

'벨파스트'가 아름다운 건 고향과 가족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영화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기에 버디는 곧 케네스 브래너다. 케네스 브래너는 아픈 시대를 관통하면서 영화로 받았던 꿈과 위안을 생생하게 회고한다.

소년 버디에게 영화는 꿈의 세계인 동시에 이상향이다. 영화의 컬러는 흑백이지만 영화 속 영화는 컬러로 등장한다. 시대의 아픔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건 흑이지만, 꿈의 세계를 상징하는 건 총천연색의 컬러로 설정했다. 이 심플한 대비는 영화적 효과로도 인상적이다.

버디가 보는 영화, 만화책은 훗날 영화감독이 될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다. 벨파스트라는 문화·역사적 공간의 서사이면서 동시에 버디(케네스 브래너)의 성장 서사인 이 영화는 상처의 땅에서 꿈을 키운 한 소년의 결정적 순간들로 가득하다.

1:300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아역 배우 주드 힐의 천진난만한 연기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또한 버디에겐 '인생 학교'의 스승과 같은 존재로 등장하는 할아버지 역할의 시아란 힌즈, 할머니 역할의 주디 덴치의 연기도 일품이다. 최연소 배우의 순수와 최고령 배우의 관록의 어우러지는 장면 장면마다 관객은 웃다 울다를 반복하게 된다.

벨파

북아일랜드의 아픈 역사는 그간 수많은 영화의 소재로 쓰였다. 뜨겁고 격렬한 언어로 민중의 독립성과 저항심을 그렸던 영화들에 익숙했다면 '벨파스트'는 조금 다른 톤과 매너다. 분명 아픈 역사지만, 활력과 유머가 시종일관 흐른다. 또한 따뜻하고 정겹게 희망도 함께 길어 올린다.

아일랜드계 감독과 배우들이 의기투합했다는 것도 영화의 사실성을 높인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과 제이미 도넌, 시아란 힌즈는 실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이며, 케이트리오나 발피, 주드 힐은 아일랜드 출신이다. '벨파스트'는 같은 뿌리를 지닌 이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고향의 향수를 복원해낸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네가 누군지 아니? 넌 벨파스트 출신 버디야"

케네스 브래너는 버디의 할아버지의 입을 빌려 벨파스트 출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영화에 아로새긴다.

'벨파스트'는 모두의 어린 시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고향을 향한 헌사, 아름다웠던 추억의 노스탤지어에 관한 영화다. 감독은 영화 말미 말한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겨졌지만 우리의 추억만큼은 그곳,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겨져 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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