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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임신 중지는 여성의 선택…'레벤느망'이 말한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3.15 16:14 수정 2022.03.16 22:24 조회 3,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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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여자만 걸리는 병이에요. 집에 있는 여자로 만드는 병"

촉망받는 문학도인 안(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의 성적이 곤두박질 치자 대학 교수는 "어디가 아픈 거냐"라고 묻는다. 이때 돌아온 안의 대답은 '임신'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정의다. 여성이 원치 않은 임신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공포감과 속박감을 입으로 내뱉은 대사였다.

노동자 집안의 유일한 고학력자인 안은 모범적인 대학 생활을 하며 교사의 꿈을 키워나간다. 때때로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파티도 즐기는 등 자유도 즐긴다.

어느 날, 생리주기가 늦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안은 병원을 찾아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의사에게 임신을 중지시켜 달라고 간청하지만 불법이며 처벌받을 수 있다며 매몰차게 거부당한다. 원치 않은 임신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 것이라는 공포감은 시한폭탄이 돼 안을 시시각각 옥죄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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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느망'(감독 오드리 디완)은 한 여성의 임신 중지에 관한 기록을 담은 영화다. 임신한 안의 몸의 시간에 따라 3주 차부터 12주 차까지를 담았다. 놀랍도록 사실적인 묘사는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82)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했기에 가능했다.

시대 배경은 임신 중절이 허용되지 않은 1960년대 프랑스다. 당대 프랑스의 사회적 공기도 안과 주변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세밀하게 묘사한다. 성(性)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시덕거리던 안의 친구들은 친구의 임신 소식에 싸늘하게 등을 돌린다. 임신의 책임을 나눠가져야 할 남자는 안의 고통과 불안을 외면하며 무조건적인 중절 수행만을 강요한다.

영화는 안의 변화하는 몸 상태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녀가 처한 상황도 보여준다. 안에게는 꿈이 있다. 출산을 하면 학업을 중단해야 하고, 사회 진출도 어려워진다. 딸의 성공만을 바라는 부모님의 열망도 적잖은 부담이다. 자신의 몸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느끼지만,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아 원망하게 될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결국 불법적인 방식으로 임신을 중지하기로 결심한다. '불법적인 방식'은 목숨을 걸거나 법의 처벌을 받는 최악의 결과도 포함한다.

1.37:1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비와 클로즈업의 잦은 사용은 관객을 인물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밀착시킨다. 러닝타임은 100여 분 남짓이지만, 12주의 기록은 담은 영화는 보는 이들을 내내 숨 막히게 한다.

임신을 중지시키기 위한 안의 노력은 시간에 쫓길수록 더욱 과감해진다. 영화는 행위 자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행위를 감행하는 인물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포커스를 맞춘다. 몇몇 장면에서는 의도적으로 카메라의 앵글을 뒤나 옆으로 잡지만, 결정적 장면에서는 안의 몸이 임신이며 탯줄로 아이와 연결돼 있었음을 시각적으로 확실히 인지시킨다. 이런 연출 방식은 안의 시간을 공유하고, 그녀가 시도하는 행위들을 체험하는 효과를 준다. 신예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의 섬세한 연기도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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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소재의 영화는 적지 않았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여성의 임신과 임신 중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영화는 안을 임신에 이르게 한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원치 않은 임신이 여성의 무분별한 쾌락과 욕망의 결과라는 식의 단죄적 시선을 거부한다는 의도일 것이다.

'레벤느망'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다룬다. '중절'이라는 단어 대신 '임신 중지'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도 이와 궤를 함께 한다. 낙태죄 공방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인 '태아 생명권'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는 배제했다. 영화는 엄마이기 전에 여성인 한 사람의 자유와 선택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는 현재까지도 유효한 논의다.

영화를 연출한 오드리 디완은 "원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임신중절을 하느냐, 아이를 낳고 자신의 미래를 희생하느냐의 딜레마"라고 꼽으며 "여자들이 임신 중지를 결심하게 되는 순간에 얼마나 공포에 휩싸였을지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감독은 이 '딜레마'와 '공포'를 관객에게도 느끼게 하며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질문을 넘어 논의의 장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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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잉태하고 낳을 수 있는 생물학적 경험은 오로지 여성만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이야기가 여성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처절한 고백록은 남성도 함께 보고, 귀 기울여야 한다. 

'임신은 축복'이지만, 이는 자유의지가 동반됐을 때의 말이다. 영화는 개인의 꿈과 미래를 뒤흔든 원치 않은 임신과 임신 중지 과정을 '사건'(L'Événement)이라고 명명했다.

'레벤느망'은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만장일치의 결과였음을 밝히며 "심사위원들이 이 영화를 정말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사랑하기는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불편하지만 존재했을 과거, 어떤 이의 삶의 역사에 관한 의미 있는 기록이다.

세계 다수의 국가에서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다. 한국은 2019년 낙태죄가 사라졌지만 후속 입법이 진행되지 않아 법의 공백 상태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프랑스는 1975년 합법화됐다. 영화의 원작자인 에르노는 자신의 가족과 결혼 등을 다룬 자전적 소설로 명성을 얻었지만, '임신 중지'에 관한 아픈 경험을 고백하기까지는 무려 40년이나 걸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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