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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하우스 오브 구찌', 신데렐라는 없다…가족 사업 뒤흔든 핏빛 비극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1.14 18:11 수정 2022.01.14 18:16 조회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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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프랑스에 세계적 명품 브랜드 샤넬과 에르메스, 루이비통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구찌와 페라가모가 있다. 창업자(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딴 구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명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1970~80년대 세계적인 브랜드로 거듭났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더블G 로고와 홀스빗 로퍼, 뱀부백, 재키백 등의 히트 아이템은 명품이 '대중의 허영', '꿈의 쇼핑' 등으로 확산되는데 적잖은 역할을 했다. 패션은 시대와 유행에 따라 변화하지만 명품의 가치는 시대와 세대를 막론한다. 그래서 명품은 명품이다.

이 굴지의 명품 브랜드는 한 세기 가까이 이름값을 유지해오고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부침도 적잖았다. 구찌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경영권 다툼, 매출 하락 등의 큰 위기를 겪으며 '한 물간 명품'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했다.

구찌

'하우스 오브 구찌'는 구찌 가문의 흥망성쇠를 가족 경영과 청부 살인 사건으로 조명한다. 연출은 '에이리언', '블레이드 러너, '델마와 루이스', '글래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 '프로메테우스', '마션' 등을 만든 할리우드 거장 리들리 스콧이 맡았다.

의붓아버지가 운영하는 운송회사의 경리로 일하며 무료한 삶을 살던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는 한 파티에서 구찌 성을 가진 마우리치오(애덤 드라이버)를 만난다. 성이 곧 명함인 남자를 만난 파트리치아는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하고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구찌 가문의 후계자인 마우리치오는 파트리치아와 결혼하기 위해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배우 출신이며 세상을 떠난 아내를 잊지 못하는 로돌프(제레미 아이언스)는 아들이 데려온 여자의 의도를 의심하며 결혼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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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마우리치오는 소박한 삶에 행복을 느끼지만 파트리치아는 구찌 가문의 후광을 포기하지 못해 남편을 부추겨 경영에 복귀하도록 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큰아버지 알도(알 파치노)를 발판 삼아 가족 사업에 한 발씩 다가선다. 그 과정에서 사촌인 파올로(자레드 레토)와는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되며 가족 관계도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구찌 가문의 정식 일원이 되고 싶은 파트리치아의 욕망은 도를 넘어서게 되고 마우리치오는 그런 아내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파트리치아와 마우리치오의 사랑과 결혼, 구찌 가문의 권력 다툼, 청부 살인 사건까지 크게 세 파트로 전개된다. 언뜻 보면 구찌 가문의 며느리가 되는 파트리치아의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환상이 걷힌 세월의 끝에는 치정과 살인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구찌의 성장과 번영은 가족 경영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영화는 초반부터 가문의 역사와 위용을 보여주는데 공을 들인다. 법학도인 마우리치오는 집안의 별종처럼 그리며 그의 선택이 불러올 파장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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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라 게이 포든이 쓴 동명의 논픽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소설의 판권을 2000년대 초반에 사들였을 정도로 이 이야기에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20여 년 만에 나온 결과물은 영화적 완성도로는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

'하우스 오브 구찌'는 특정 인물에 포커싱을 맞추지 않고 거리두기를 한다. 피로 엮인 관계들이 각자의 이해득실을 따지다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는 상황을 조소하는데 집중한다. 그러다 보니 특정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기 어렵고,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입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물신주의에 대한 풍자극으로는 효과적일지 모르겠으나 신문 기사가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영화적 미스터리와 다층적 딜레마로 풀어내지 못한 평이한 각본이 아쉽게 느껴진다.

스콧 감독의 작품 중 이 영화와 한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는 '올 더 머니'(2017)와 비교해도 그렇다. 게티 가문의 납치사건을 그렸던 영화는 미국의 대표 재벌이었으나 자린고비였던 폴 게티에게 포커싱을 맞추며 인간의 끝없는 탐욕이 초래한 비극을 서늘하고도 쓸쓸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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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하우스 오브 구찌'는 거장이 만든 작품답게 기술적으로는 훌륭하다. 촬영부터 미술, 음악 등 모든 요소가 이야기와 분위기에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마우리치오가 파트리치아를 데리고 자신의 저택으로 들어갈 때 관객을 우피치 미술관을 안내하는 느낌마저 든다.

파트리치아로 분한 레이디 가가의 연기가 가장 돋보인다. 음악 영화 '스타 이즈 본'(2018)으로 가수 출신 배우의 강점을 보였던 레이디 가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의 역량을 한껏 뽐낸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레이디 가가는 이번 영화에서 체중을 증량하고, 이탈리안 악센트 기반의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실존 인물과의 싱크로율을 높였다.

특히 부와 권력을 향한 욕망을 드러내는 감정 연기가 일품이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패션에도 묻히지 않는 다양한 표정들은 파트리치아 불안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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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할리우드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보이고 있는 애덤 드라이버는 차분하고 학구적인 캐릭터를 맡은 만큼 힘을 뺀 연기로 레이디 가가를 빛내는 역할을 했다.

관록의 배우들의 호연도 만날 수 있다. 제레미 아이언스, 알 파치노는 구찌가의 원로로 등장해 화려하진 않아도 단단한 연기로 영화를 빛낸다. 또한 젊은 연기파 배우 자레드 레토는 잘생긴 얼굴을 파격적인 분장으로 가리고 구찌 가문의 사고뭉치인 파올로를 익살스럽게 연기해냈다. 파격적인 분장과 체중 증량 탓에 크레딧을 확인하기 전까지 동일 인물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리들리 스콧은 20세기 할리우드가 탄생시킨 명품 감독이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3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내놓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라스트 듀얼'과 '하우스 오브 구찌' 두 편을 미국에 개봉시키는 저력을 발휘했다. 또한 독수리가 날아드는 리드 필름만으로도 관객을 설레게 하는 제작사 '스카이 프리'를 통해 후배들의 영화도 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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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라고 해서 매번 걸작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연륜은 무시할 수 없는 평균값을 보장한다. 거장의 평작은 신성에겐 아무리 고군분투해도 닿을 수 없는 경지다.

최근작들이 "리들리 감독 치고는…"이라는 전제를 달고 봐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변하지 않은 명품의 가치처럼 리들리 스콧의 작품들도 전작들과의 비교 우위만 따지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충분한 재미를 보장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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