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대본 리딩만 수십 번"…日 30년 차 배우도 놀란 거장의 연출법

김지혜 기자 작성 2022.01.10 10:42 수정 2022.01.11 15:09 조회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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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지마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일본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51)는 1992년 드라마 '하구레형사 순정파'로 데뷔해 올해로 데뷔 30년 차를 맞았다. TV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스타성과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현재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안정된 역량을 보여주는 배우로 손꼽힌다.

국내에는 영화 '인간합격', '메종 드 히미코', '사요나라 이츠카', 드라마 '스트로베리 나이트' 등으로 얼굴을 알렸다. 또한 김태희의 일본 진출작인 드라마 '나와 스타의 99일', 한일 합작 영화 '무명인'에 출연하는 등 한국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얼굴은 고독하고 쓸쓸한 기운을 풍긴다. 가벼움이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은 진중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사연 있는 남자의 미스터리함도 느껴진다.

그는 지난해 오랜 연기 경력에 전환점을 맞이한 영화를 만났다. 제74회 칸영화제에 출품돼 각본상을 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니시지마는 남자 주인공 '가후쿠'로 분했다.

니시지마는 과거에도 하루키 원작의 영화 '토니 타키타니'(2004)에 참여한 바 있다. 당시는 내레이션을 담당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극의 주인공으로서 활자화된 하루키 소설 속 인물을 형상화했다.

하루키의 소설은 수많은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 결과 '상실의 시대'부터 '토니 타키타니', '버닝', '드라이브 마이 카'까지 장편 영화로 만들어진 것만 네 번째다. 그중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가장 성공적인 결과물로 꼽힌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와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이 만났을 때 어떤 마법이 일어나는지를 180여 분의 러닝 타닝을 통해 보여준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감독의 예술'에 가깝지만, 극의 중심 역할을 한 배우 니시지마 히데토시도 연기 인생에서 화양연화의 순간을 맞고 있다. 그는 이 작품으로 미국 보스턴비평가협회와 전미비평가협회의 남우주연상을 잇따라 받았다.

드마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의 독특한 작업 과정을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연기한 연극 연출가 가후쿠의 배우 디렉팅 방식처럼 자신 역시 하마구치 류스케의 혹독한 연기 디렉팅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에는 일본 배우, 한국 배우, 중국 배우가 출연한다. 이들은 영화 속 캐릭터뿐만 아니라 영화 속 연극인 '바냐 아저씨'를 연기한다. 연극 연출가로 등장하는 가후쿠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배우들을 기용해 하나의 언어로 통일된 각본을 제시하지 않고, 각자의 언어로 연기하게 하는 실험적 연출을 구사한다. 언어 소통을 기반으로 한 교감이 아닌 배우와 캐릭터 간의 감정적 소통을 중시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배우와 배우 사이에 일어나는 '마법적 순간'을 관객에게 경험토록 한다.

이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실제 배우들에게도 적용한 방식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배우들에게 대사가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 감정을 배제한 채 반복적으로 리딩을 하도록 했다. 배우들이 개별적으로 세워오는 연기 플랜은 새로울 것이 없는 '단 한 번의 최선'에 머물 수 있기에 배우들이 한 데 모여 계속해서 각본을 소리 내 읽고, 대사를 받아들이며, 감정을 체화하는 과정을 추구한 것이다. 이것이 하마구치가 추구한 '시너지'였다.

드라이브

Q.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첫 호흡을 맞추셨습니다. 그와의 작업에서 있어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A.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소설의 경우 문장으로 주인공으로 감정으로 서술돼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에 들어갈 때 불안감도 적잖았습니다. 조금 더 관객들이 알기 쉬운 연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마구치 감독님이 "배우님이라면 괜찮아요 다 괜찮을 겁니다. 내면의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관객에게 전달될까 의문을 갖지 않더라도 잘 전달될 테니 감정에 충실해 주세요'"라고 하셨어요. 감독님의 말대로 현장에서 제 내면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이 멋진 스태프들이 잘 담아내 줄 거라는 신뢰와 확신도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서의 가후쿠는 제 개인적 표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마주하는 관객들이 서로 느끼고 교감하고 공감하면서 완성이 되는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Q. 각본이 굉장히 정밀하고 밀도가 높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연기를 구체화했나요?

A. 그렇습니다. 하마구치 감독의 연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은 각본입니다. 각본 자체가 굉장히 정밀합니다. 텍스트의 강도, 대사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것은 그만의 개성입니다. 배우로 하여금 대사를 몸에 밴 것처럼 나오기 위해서 대본 리딩을 여러 번 했습니다. 대사를 제 안으로 받아들이고 집어넣는 과정을 수 십 번 이상 거쳤습니다. 그런 과정이 실제 촬영에 들어갔을 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 배우 3명과 대화를 배제한 채 대본 리딩을 한 것도 기억에 남는데요.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드라이브

Q. 가후쿠는 아내 오토를 깊이 사랑했지만 동시에 아내를 파괴해버린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가후쿠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게 어쩌면 비겁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배우께서 이해한 가후쿠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의 입장과 선택이 이해가 갔는지도 궁금합니다.

A. 영화에는 묘사되지 않지만 두 사람의 과거에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감독님이 얘기해주셨어요. 과거에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행복한 관계였죠. 아내와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어느 날 자기 몰래 불륜을 저지르는 걸 알게 되죠.

기자님이 생각하는 캐릭터와 제가 생각하는 캐릭터는 좀 다른 것 같은데요. 가후쿠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지내고, 내면을 잘 알 수 잇는 캐릭터인 건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 오토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를 잘 이해하는 관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속을 알 수 없는 미묘한 관계기도 하죠. 그게 관객의 교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Q.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각본은 굉장히 섬세하죠. 일일이 사건이나 감정을 다 설명하지 않는 은유성도 돋보입니다. 배우로서 혹시 이런 감독님의 특징이 연기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나요? 상상력을 더 풍부하게 한다든지 어떤 작용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일단 하마구치 감독님의 각본 자체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라는 말 한마디에도 셀 수 없는 많은 감정이 들어가 있거든요. 이 작품은 저에게 도전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감독님이 항상 24시간 옆에 있어주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작품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늘 세심하게 답해주셨습니다. 감독님은 재능도 뛰어나지만 인간적인 면도 굉장히 훌륭합니다. 배우는 보통 각본을 읽을 때 캐릭터를 보고,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만 집중하는데 하마구치 감독님의 각본은 조금 달랐습니다. 하루키의 원작과 체호프의 희곡, 하마구치가 쓴 대사도 작용해 감정적인 면이 돋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관념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하마구치 스타일인 대본 리딩을 여러 번 했습니다. 영화 속 가후쿠의 작업 방식처럼 배우들은 감정을 배제한 채 대사를 여러 번 읽어서 감정을 새겨 넣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이는 텍스트의 유의미를 배우가 받아들이도록 하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의 의미가 배우의 몸 안에 들어가면, 감정은 배우 몸으로 들어가고 그게 표출이 되는 과정이었던 거죠.

Q. 감정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연기 연습을 했다는 것이 영화 속 연극처럼 인상적입니다. 영화 속에서 연극을 펼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연극 대사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도 과제였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A. 극 중 리허설 과정처럼 배우들은 6개 국어가 쓰여있는 시나리오를 보고 소리를 듣고 의미를 생각하고 그 의미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자체가 굉장히 길고 방대한 작업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보신 리허설 대본 리딩 현장보다 실제로 감독님이 지휘하신 현장은 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무대에서의 연기를 따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연기가 나왔던 것 같아요. 저희한테 영화적 시간(러닝타임)이 더 있었다면 '바냐 아저씨' 연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줬을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는 러닝타임의 제약 때문에 부분적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시간을 들여서 연극에 관한 연기 연습을 했고, 영화 속 연극 장면도 길게 찍었습니다.

드라이브

Q. 원작에서 주인공은 1인칭으로 서술되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변형이 배우에게는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원작의 존재로 인해 배우에게 어려웠던 부분과 도움이 됐던 부분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A.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랜 팬입니다. 그분은 제가 사춘기 때 데뷔를 했었고, 계속해서 그의 책을 읽어왔죠. 그의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어떤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캐릭터도 '이건 하루키 소설에 나올 법한 캐릭터'라는 이해가 있다는 전제하에 출발하죠. 그게 저에겐 플러스였습니다. 그런데 하루키의 캐릭터를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게 표현해내는 제 이미지가 조금만 다르면 어색하다고 느끼지 않겠어요? 그건 좀 어려웠던 부분입니다. 기존 하루키 캐릭터의 이미지와 제가 연기한 것 사이에서의 간극도 압박감도 작용했습니다. 하루키 소설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인생에 대한 회의감, 상실감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실함 안에서 세계를 계속 살아가는 면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 부분은 독자들이라면 잘 이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영화 속에서 재니스 창(소냐 위엔)과 유나(박유림)이 야외에서 연기 연습을 할 때 가후쿠가 '배우들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났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우님에게도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기하시면서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A. 그 신은 굉장히 상징적이지 않습니까? 배우들 안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대사로 말했는데 그 기적적인 감정을 저도 실제로 촬영하면서 느꼈습니다. 놀라운 순간이었죠.

Q. 아내의 내연남이자 자신이 연출하는 연극의 주인공이 된 다카츠키를 바라보는 가후쿠의 감정은 굉장히 복잡 미묘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처음 아내와 나타났을 때,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마주쳤을 때, 2년 후 히로시마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가 '칠성장어 여고생' 이야기를 전해 줄 때 등 각각의 상황에서 가후쿠가 어떤 감정과 생각이라고 해석하고 연기하셨습니까?

A. 다카츠키가 '칠성장어 여고생'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제게 큰 의미로 남아있습니다. 일단 가후쿠는 그간 다카츠키를 별로 인정하지 않았잖아요. '텅 빈', '별거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왔죠. 그런데 아내가 말해주지 않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칠성장어 여고생'의 또 다른 결말을 다카츠키가 얘기해주죠. 가후쿠도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닌 경계를 체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장면은 저뿐만 아니라 관객도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해주는 기적같은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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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영화제 각본상을 시작으로 LA 비평가협회, 뉴욕비평가협회 등에서 작품상 받았습니다. 영화에 참여한 일원으로서 감회가 남다르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A. 하마구치 감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돼 기쁩니다. 이번 작품은 그의 영화 연출의 집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하루키 원작이 가진 힘이 있었고, 감독님이 가진 연출의 힘이 상호 시너지를 이루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완성했고 높은 작품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Q. 니시지마 배우 역시 이 작품으로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캐릭터의 어떤 면이 심사위원이나 관객들에게 어필했다고 생각하시나요?

A. 가후쿠는 인생에서 상실감을 겪은 후 미사키를 비롯한 자신과 잘 알지 못했던 인물을 만나고 연극이라는 예술적인 것을 통해 상실감에서 재생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보여줍니다. 이 점이 현재를 살아가는 세계인들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영화를 보게 될 한국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드라이브 마이 카'가 한국에서 개봉하게 돼 매우 기쁩니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영혼들이 만나 빛을 발하는 작품입니다. 관객들도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뭔가를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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