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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문제작·수작·범작…연말 극장가 채운 화제작들

김지혜 기자 작성 2021.12.26 14:59 수정 2021.12.26 15:41 조회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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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업시간 제한으로 극장가에 또 한 번 어둠이 드리웠지만 일말의 위안이라면 어느 때보다 풍성한 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한 프랑스 문제작부터 장외 그랑프리였다는 평가를 받은 일본의 수작, 대체 역사물로 옷을 갈아입은 할리우드 첩보 액션물, 18년 만에 돌아온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SF 액션의 네 번째 이야기까지 상차림이 다채롭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스크린의 80%를 장악하고 있어 이 영화들을 보려면 '극장을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동반해야 한다. 그러나 발품을 팔아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들이다.

티탄

◆ '티탄', 올해의 문제작 or 과대평가작

'티탄'은 올해 칸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영화였다. 파격적인 설정과 전개로 영화를 본 관계자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이 작품이 수작인가 괴작인가에 대한 논의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칸영화제는 어느 영화제보다 거장에 대한 예우와 신성의 발견에 집중하는 영화제다. 올해는 '발견'에 힘을 실었다. 문제적 영화인 '티탄'에게 황금종려상를 수여했다.

어린 딸을 차에 태운 아버지는 아이의 치기 어린 행동을 제어하지 못해 교통사고를 내고 만다. 끔찍한 사고로 아이는 머리에 티타늄을 박고 살아가게 된다. 카메라는 10여 년 후 어른이 된 알렉시아(아가트 루셀)의 행적을 쫓는다. 모터쇼 현장, 슈퍼카 위에 올라선 여성들의 육체가 전시되는 오프닝부터 강렬하다. 영화는 공포, 스릴러, 드라마를 혼합한 것 같은 무드로 초반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티탄

공포 영화 '로우'로 주목받았던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파격적인 전개를 통해 우리 사회 속 이분법의 경계, 규범의 벽을 깨부순다. 여성과 남성, 인간과 기계의 구분에 대한 도발적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에 반기를 든다.

파괴적이고 극악스러운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설정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또한 알렉시아의 일탈과 폭주를 다룬 전반부와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다룬 후반부의 스토리 구성이 조화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영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이 영화만의 강렬한 에너지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파격적인 콘셉트과 과도한 자극만 난무한 영화로 볼 수 있으나, 확실히 요 근래 영화에서 보지 못한 방식으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인 것은 확실하다. 물론 이 영화가 완전히 새로운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아니다. 새로움보다는 과감함, 깊이보다는 패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드라이브

◆ '드라이브 마이 카', 생의 바닥에서 길어 올린 희망

단 몇 줄의 로그라인으로 요약할 수 없는 영화다. 러닝타임이 179분이라서 아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의 넓이, 캐릭터의 깊이 때문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내가 아니고서는 도로지 알 수 없는 타인의 심연을 섬세한 손길로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택한 '영화 속 연극' 형식은 새로운 문법이 아니다. 아스가르 파라디의 '세일즈맨'이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 '그녀에게' 등 거장의 수작에서 익히 봐온 형식이다. 그러나 하마구치는 이 형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용한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 다루려는 인물이 영화 속 연극과 조응하는 순간은 '마법의 시간'에 가깝다.

드라이브

아내가 죽은 후 살아갈 이유를 잃은 남자가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여자와 교감하는 이야기를 보는 데 왜 3시간이 필요한 지는 영화를 보면 완벽히 이해가 가능하다.

'해피 아워', '아사코' 등을 통해 자신만의 연출 방식을 확립해온 하마구치 류스케의 연출력은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전까지는 이야기 안으로 감독 스스로가 완전히 몰두하는 연출력에 감탄했다면 이번 작품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이야기로 관객에게 대화를 거는 듯한 확장된 화법을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원작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감독만의 언어로 새롭게 이야기를 확장해나갔다는 면에서 또 한 번 박수를 칠만하다.

칸영화제의 수상 성적이 곧 영화의 순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황금종려상이 '드라이브 마이 카'가 아닌 '티탄'이었다는 건 다소 아쉬운 선택이다. 올해 최고의 영화를 극장에서 놓치지 마시길.

킹스맨

◆ '킹스맨:퍼스트 에이전트', 킹스맨인데 킹스맨 아닌듯한 대체 역사물

흥미로운 대체 역사물이다. 1차 세계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킹스맨의 기원을 그리는 이번 영화는 20세기 세계사의 주요 사건을 끌고 와 플롯을 만들었다. 영국의 자성와 반전 메시지, 아들을 잃은 한 남자의 개인적 상처를 '킹스맨'을 창설하는 대의와 연결시켰다.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건 B급 유머와 병맛으로 점철된 시리즈의 특색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킹스맨인데 킹스맨이 아닌 느낌이다. 아이디어와 콘셉트로 흥한 영화는 결국 그것에 발목이 잡힌다는 것을 생각하면 '킹스맨' 시리즈의 갑작스러운 노선 변경은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여겨진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던 '킹스맨'의 얼굴들이 없다는 것도 관객들에겐 또 하나 적응 못할 요소다. 콜린 퍼스도 없도, 테런 에져튼도 없다.

콜린 퍼스의 빈자리는 랄프 파인즈가 채웠다. 어느 순간부터 연기 잘하는 '감초 조연'으로 자리매김한 듯 하지만 랄프 파인즈는 연기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영국 대표 연기파 배우다. 그는 품격 있는 연기로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여기에 젬마 아터튼, 디몬 하운수, 매튜 구드, 해리스 딕킨슨, 찰스 댄스 등의 매력적인 배우들이 제 역할을 하며 영화에 기여한다. 특히 라스푸틴으로 분한 리스 이판의 기괴한 매력은 영화의 주요한 볼거리다.

매트

◆ '매트릭스:리저렉션', 감독도 못 찾은 부활의 명분

'매트릭스' 시리즈는 18년 전에 3편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시리즈의 부활에는 확실한 명분과 지향이 필요하다. '매트릭스'는 할리우드의 몇 안 되는 성공적인 트릴로지였기에 4편의 제작은 3편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 두 가지 노선이 있었을 것이다. '매트릭스:리저렉션'은 예상했던 노선을 이탈해 동어반복과 답습의 늪에서 빠져버린 듯하다.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매트릭스'라는 히트 게임을 만든 개발자 토마스 앤더슨으로 살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세 편의 '매트릭스'는 토마스 앤더슨이 만든 유명 게임 시리즈다. 앤더슨은 현실과 가상을 혼돈해 자살을 시도한 바 있어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앤더슨을 소환한 게임 회사 사장은 네 번째 매트릭스 게임을 개발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때부터 앤더슨은 다시 현실과 가상의 혼란스러운 경계에 놓인다.

라나 워쇼스키 감독은 네오와 트리니티를 살릴 수 있는 단편적인 아이디어만으로 이 영화를 출발시킨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야기는 산만하며, 철학은 고루하고, 연출은 나태하다. 올드 팬들의 반가움을 부르는 '매트릭스' 시리즈의 시그니처 액션 장면이 서비스처럼 등장하지만 자기 복제는 한 두 씬에 그쳤어야 했다.

매트릭스

게다가 지금은 2021년이다. 20년 전 영상 혁명이라 불렸던 테크닉의 재현은 지금 이 시대에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네오와 트리니티의 둔탁해진 육체와 늘어난 주름 때문만은 아니다. 감독은 이들의 부활에 매력적인 명분을 부여하지 못했다. 이들이 매트릭스 세계관에서 다시 뛰어다닐 서사적 토대가 빈약하다 보니 '사랑의 힘'으로 점철되는 엔딩은 두 배우의 고군분투마저 허망하게 만든다.

전반적으로 '매트릭스' 시리즈 팬들에게는 전혀 새롭지 못한 동어반복이며, 신규 고객에겐 전 시리즈를 예습하지 않고서는 따라가기 버거운 세계다. 영화 초반 벅스는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좌충우돌하는 토마스를 보며 "새 걸 만들면서 왜 오래된 코드를?"이라고 읊조린다. 이는 '매트릭스:리저렉션'을 보면서 드는 근본적인 의문과 같았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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