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연빠로' 정가영 감독, 연애담 한 우물만 파는 이유

김지혜 기자 작성 2021.12.20 21:45 수정 2021.12.21 09:50 조회 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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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정가영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술자리 플러팅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녀 관계의 주도권을 남자가 쥐는 여느 연애담과는 다르다. 들이대는 여자가 있고, 밀어내는 남자가 있다.

또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가영'이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까지 했다면 '이 가영'은, '그 가영'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본인의 이름과 같은 캐릭터를 본인이 직접 연기해오지 않았던가.

정가영 감독의 적나라한 연애담은 날 것의 대사까지 더해져 흥미를 유발한다. 취중진담이 오가는 누군가의 술자리를 훔쳐보는 듯한 묘한 기분은 영화가 선사하는 흥미로운 덤이다.

독립영화계에서 '연애담' 하나로 마니아층을 확보했던 정가영 감독이 오버그라운드에 진입했다. 첫 번째 상업 영화인 '연애 빠진 로맨스'에는 '정가영다운 것'과 '정가영답지 않은 것'이 공존한다. 보다 많은 관객과 만나기 위한 절충과 타협은 정가영의 개성을 조금 죽였지만, 로맨스 장르가 힘을 쓰지 못한 극장가에서 뒷심을 발휘하며 관객의 폭넓은 선택을 받았다.

세상의 반인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내는 연애담은 때론 '나의 이야기'같고 완전한 '남의 이야기'같기도 하다. 공감이 중요한 이 장르에서 정가영 감독은 자신의 개성을 아낌없이 투영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했다. 그 기세가 상업영화로도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확실한 건 하나다. 정가영 감독의 영화에는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가영의 '가영'이 아닌 전종서의 '자영'과 손석구의 '우리'가 그 재미를 책임졌다.

연애

Q. 첫 번째 상업영화를 완성했다. 기분이 어떤가?

A. 처음에는 마냥 꿈에 부풀었던 것 같다. 촬영하면서 내가 부족한 걸 느꼈고, 공부하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봉을 앞두고는 설레고 긴장되더라.

Q. 상업영화 제안 과정이 궁금하다.

A. 독립 장편 영화 세 편('비치 온 더 비치', '밤치기', '하트')을 만들고 나서, 독립영화로 할 수 있는 건 충분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상업에 도전해보고 싶더라. 지금 제작사 대표님을 만났다. 제가 이제까지 다뤄온 주제들을 상업영화에 녹여내 보자고 하셔서 시작하게 됐다. 준비는 4년 전부터 시작했고 CJ랑 공동 제작을 하면서 상업 영화 구조로 시나리오가 개발된 게 2년 정도 됐다.

Q. 시나리오가 좀 수정된 것으로 안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A. 아무래도 독립영화를 만들 때는 남녀 주인공 딱 2명이고, 사건이나 전개 이런 거보다는 '아무말 대잔치' 하는 느낌이 강했다. 상업영화는 달라야 했다. 메인 캐릭터뿐만 아니라 서브 캐릭터도 나오고 이야기 구조 역시 발단, 전개, 위기, 해소 등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야 관객에게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겠다 싶더라. 그래서 각색가의 도움도 받았다.

연애

Q. 기존에 영화를 만들던 방식이 확고했던 편이라 나름의 타협이라면 타협일 텐데 수용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A. 제작사 대표님 의견과 CJ의 의견을 많이 들었다. 보다 완성도 있는 각본을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는 의견이 관객들의 생각이면 어떡하지'하는 불안이 컸다. 많은 관객이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에 귀 기울였고 반영하려고 했다. 또 독립영화를 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해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야지'라는 마인드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Q. 연출 영화 중 처음으로 직접 출연하지 않고 연출만 했다.

A. 연출만 하기도 바쁘더라.(웃음)

Q. 특별출연으로라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영화 끝까지 정가영을 찾았다.

A. 그런가. 하하. 사실 특별 출연을 하려고 했었다. 우리와 자영이 처음 만나 밥을 먹는 평양냉면집 신에서 소주 가져다주는 아줌마 역할을 하려고 했었다. 그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었는데 보조 출연자들도 많고 현장이 조금 정신없었다. 그 상황에서 출연까지 했다가는 욕먹겠다 싶어서 마음을 접었다.(웃음)

정가영

Q. 영화에서 '우리'와 '자영'은 데이팅 앱으로 만난다. 요즘 연애의 한 방식이기도 할 텐데 보편적이지 않아 낯설기도 하다. 취재나 조사를 어떻게 했나? 혹시 경험해본 적도 있는지 궁금하다.

A. 최근까지 2G폰을 썼다. 작년에 이 영화 촬영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그러다 보니 어플 사용법도 낯설어서 직접 해보지는 못했다. 데이팅 어플을 해봤다는 주변 사람들의 후기를 듣고 시나리오 쓸 때 참고했다.

Q.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오작교미'라는 데이팅 앱 이름도 그렇고 남자 주인공 이름인 '박우리', 여자 주인공 이름인 '함자영' 등 작명 센스가 남다르다. 그건 배우 이름을 따온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나 직설적이면서도 시적인 '밤치기'라는 영화 제목도 그랬다. 실제로 캐릭터 이름을 짓거나 영화 제목을 짓는데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지 궁금하다.

A. 그런 편인 것 같다. 아이디어를 평소에도 빼곡하게 수집하려고 한다. 그게 캐릭터 이름이 됐든, 영화 제목이 됐든, 대사가 됐든, 활용하고자 한다. 영화 '극한직업'를 보면서 '나도 10초마다 한 번씩 웃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코미디 영화로서 훌륭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영화를 만들어서 부럽더라. 그래서 나도 아이디어 수집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Q. 이번 영화에선 직접 연기를 하진 않지만 '남자 정가영'과 '여자 정가영'이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정가영이 아닌 배우가 정가영의 영화에 출연해도 감독의 대사를 이렇게 잘 소화할 수 있구나라는 점에서 놀라웠다. 좋은 의미에서 손석구와 전종서가 정가영의 아이덴티티를 충실히 반영한 아바타라는 느낌도 들었다.

A. 우리와 자영이 단순하고 철이 안 든 인물이긴 하지만 그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귀여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종서 배우는 그동안 강렬한 역할, 속을 알 수 없는 역할을 많이 해서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랑은 조금 동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영화에서 현실에 달라붙어있고 친근한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촬영 전과 후 전종서에게 새로운 면들을 많이 봤다. 손석구 배우의 경우 아직까지 잘 보여주지 않은 내면의 개구쟁이 같은 본능이 있다. 드라마에서 조금조금씩 그런 면이 삐져나올 때 철석같이 알아보고 '저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Q. 앞서 전종서 배우와 인터뷰를 나눠보니 "정가영 감독은 캐릭터에 대한 확실한 디자인이나 그림이 있어서 의도된 바대로 연기해주길 원했다"라고 하더라. 이 점에서 종전에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맡긴 감독들과는 달랐다고 하더라. 조율 과정이 필요했을 것 같다.

A. 제 디렉팅이 자유롭지 만은 않다고 느꼈을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에 요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배우마다 성향이 다르지 않나. 종서는 본인이 연기의 자유를 많이 줬을 때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테이크를 여러 번 갈 때마다 다 다르게 해 볼 테니 보시고 선택해달라"라고 하더라. 실제로 믿고 맡기니까 전종서의 진가가 나오더라.

연애

Q. 유독 술자리 장면이 많은 영화다. 특히 우리와 자영이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의 티키타카가 영화 재미의 팔할을 차지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정가영의 영화는 늘 찰진 대화신이 있었다. 대화신 잘 쓰는 팁이 있다면?

A. 나는 남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의 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끈을 서로 팽팽하게 잡아당긴다고 생각을 하고 서로 주고받는다는 느낌으로 대화신을 쓴다.

Q. 과거 연출작인 '너와 극장에서'에서 "영화 속 정가영이 실제 정가영이냐는 질문이 지긋지긋하다"라고 말했다. 지긋지긋한 질문을 한번 더 하려고 한다. 사적인 경험과 기억을 꺼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은 사실 좀 부끄럽기도 하고 자기 검열이 계속 이뤄져야 하는 창작 작업에서는 쉽지 않은 과정 같다. 이제는 본인만의 방식이 생겼을 것 같다.

A. 예전에는 내 안의 것을 많이 끄집어내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너무 다 끄집어내서.(웃음) 이제는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포인트가 다 다르지 않나. 그래서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는 편이다.

정가영

Q. 일관되게 남녀의 연애담을 만드는 이유가 궁금하다. 보다 넓은 의미로는 인간관계에 주목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과도한 해석인가? 남녀관계에 집중하는 영화로만 봐주는 게 좋은가?

A. 어렸을 때부터 남녀의 연애 감정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보면 누가 누구 좋아하는 것에 과도한 관심을 보이고 집착하는 애들이 있지 않은가. 그게 나였다. 그래서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나 보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다. 관객이 보고 느끼는 바에 따라 그저 여자가 남자 꼬시는 영화라고도 볼 수 있고, 한 사람의 성장담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 영화에서 다뤄지는 관계나 감정이 어떤 시기에 누구라도 가질 수 있을 법한 감정이고 관계들이어서, 많은 분들이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혹은 '나에게도 저런 관계나 감정이 찾아올까' 하는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Q. 만약 내게 캐스팅의 모든 권한과 자유, 허용이 주어지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있다면 어떤 배우를 캐스팅해보고 싶나?

A.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아주 소소한 멜로 영화인데 재밌고 사랑스럽다. 그 영화 속에서 전도연, 설경구 선배의 조합과 연기가 너무 좋았다. 다시 한번 두 배우를 캐스팅해서 수수한 멜로를 만들어보고 싶다.

Q. 너무 기대되는 조합이다. 그런데 정말 수수한 멜로가 맞나? 정가영의 수수함은 잘 상상이 안된다.

A. 그렇다. 내가 원래 수수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Q. 시나리오를 쓸 때 분량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쓴다는 과거 인터뷰를 봤다. 일주일에 3일, 하루에 다섯 페이지씩. 그게 가능한가? 진정한 직업인의 면모가 보인다.

A. 시놉시스 단계에서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몰아서 쓰는 편인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면 하루에 쓸 분량을 정해놓고 할 때가 마음이 편하더라. 그래서 그렇게 하는 거다.

정가영

Q. 영화를 좋아하고, 연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중학교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서 '출발! 비디오 여행' 피디가 되는 게 꿈이었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그리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다시 들어갔다. 단편 영화를 만들다가 그 학교에서도 나왔다. 혼자 독립적으로 소설도 써보고 음악도 만들어보고 했는데 영화로 돌아갔다. 단편 영화부터 만들기 시작해 지금까지 왔다.

Q. 정가영의 인생 영화가 궁금하다.

A. '러브레터'와 '봄날은 간다'를 좋아한다.

Q. 연애담이 아닌 다른 장르의 영화도 만나볼 수 있을까?

A. 고민 중이다. 멜로 이야기가 좋긴 한데 해보고 싶은 다른 이야기도 많다. 스릴러와 호러도 워낙 좋아해서 도전해보고 싶다. 잘해야 하는 거니까 지금은 꿈만 꾸고 있다. 또 멜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Q. 첫 번째 상업영화다 보니 흥행에 대한 부담이 끌 것 같다.

A. 나는 우리 영화가 재미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나만 재밌으면 안 되는 시스템이니까 관객들도 많이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만약에 영화가 잘 안되더라도 첫 번째 상업영화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칭찬을 많이 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웃음)

Q. 차기작은 결정됐나? 궁극적으로 정가영이 하고 싶은 영화가 궁금하다.

A.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데 차기작은 '82년생 김지영'을 만든 봄바람 영화사와 하게 될 것 같다. 궁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는 재밌으면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Q.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가 있었다면 추천해달라.

A. 'D.P.'! 드라마 자체도 재밌었고 손석구 배우가 우리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와서 연기도 너무 잘하더라. '역시! 저렇게 잘하는 사람이었어!' 하면서 봤다.

ebada@sbs.co.kr

<사진 = '연애 빠진 로맨스', '밤치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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