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유아인이 말하는 '연기의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김지혜 기자 작성 2021.12.07 14:15 수정 2021.12.08 09:24 조회 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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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어떤 사람은 '유아인의 연기는 다 똑같아'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유아인이 자신에게 내려지는 일부 대중의 박한 평가를 스스로 언급했다. 흥미로운 순간이었다. 배우들이 대중의 평가나 반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알지만 타인의 시선에 비교적 자유로울 것 같은 유아인도 대중의 의견을 귀담아두고 있었다.

연기란 것은 줄기는 쉬워도 느는 것은 어렵다. '연기파 배우'라는 수식어를 10년 이상 달고 살아온 배우들도 한, 두 작품의 부침으로 인해 쉽게 평가절하 되는 것을 보지 않았던가. 뻔한 말이지만 맞는 말이 '연기엔 왕도가 없다'다. 그래서 배우라는 예술가는 끊임없이 연기라는 영역을 탐구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이 직업에게 부여된 숙명이다.

배우 유아인의 30대는 흥미롭다. 초반 무렵,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자신의 연기력을 불태웠다면, 중반을 지나면서부터는 발화점을 낮추며 외연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솔직히, 유아인이 이토록 영리하게 자신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유아인처럼 연기 색이 강한 배우는 새로움을 보여주기 쉽지 않다. 매 작품, 다른 캐릭터를 부여받지만 에너지를 태우는 방식의 연기를 구사하는 유아인의 경우, 어떻게 해도 유아인이 보일 수밖에 없다. '새로움'이라는 강박 속에서 이 배우가 찾은 길은 '변주'처럼 보인다. 점점 더 유연해지고 노련해지고 있다.

지옥

전작 '소리도 없이'에서 무언(無言)의 캐릭터를 맡았던 유아인은 신작 '지옥'에서는 말로써 대중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종교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가 연기한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는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교리로 불안에 빠진 사람들을 현혹한다.

정진수는 천사가 죽음을 고지(告知)하고, 사자가 나타나 시연(試演)을 하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신의 의도'라고 주장한다. 신은 죄를 지은 자를 벌함으로써 인간이 좀 더 정의로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또한 공포만이 인간을 참회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가 하는 말은 대중에게 참이요, 진리다. 그러나 이 인간은 정작 자기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

정진수는 '신의 의도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대중에게 그럴듯한 연설을 한다. 이에 빗대 매 작품, 변화와 변주를 통해 자신의 연기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유아인에게 '새로움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져본다. 답은 최근 그가 보여준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지옥'에서의 연기는 그 집대성처럼 느껴진다.

지옥

◆ 유아인의 연기한 정진수....철저한 객관화의 산물

연상호 감독의 신작인 '지옥'은 지난달 19일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부산행'으로 K-좀비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나, '반도'로 주춤했던 연상호에겐 자신의 역량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린 결과였다. '지옥'의 주역인 유아인은 국내외의 뜨거운 반응에 대해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저마다의 해석과 반응을 내놓는 지금 상황이 작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반갑고 감사해요. 무엇보다 시즌 2에 대한 기대를 많은 분들이 가져준다는 것에서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작품이구나', '연상호 감독이 대단한 떡밥을 던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연상호 감독의 영화적 비전은 독창적이고 흥미롭다. 만화적 상상력을 실사로 구현하면서 그는 비주얼 분야에서 독자적 세계를 확립했고, 특유의 직선적인 메시지는 현시대에 시사점을 던지며 대중을 빠르게 매료시켰다. 다만, 그의 작품에서 감독은 보일지언정 배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연출에 있어 캐릭터를 구체화해나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고, 배우에 대한 연기 디렉팅 역시 섬세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배우 스스로 준비돼있지 않으면 묻혀버리는 경향도 드러난다. '지옥'의 유아인은 훌륭했다. 그는 정진수라는 인물을 다층적으로 분석했고, 준비된 연기로 웹툰을 능가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연상호 감독님이 배우에게 주는 부담이란 게 있어요. "알아서 잘해주실 거잖아요"라고 하시면서 배우 어깨에 짐을 올려놓고, '나 몰라라' 하는 척해서 배우를 미치게 하는 측면이 있죠.(웃음) 전 그걸 좀 도발적으로 느꼈어요. 그래서 애쓰게 된 측면이 있죠. 그동안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하긴 했지만 이렇게 선이 굵은 캐릭터, 캐릭터성이 두드러지는 인물을 통해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 연장선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어떻게 다른 식으로 변주하면서 보여줄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정진수가 가진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적용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유아인

'지옥'의 거대한 미스터리를 추동하는 것은 정진수다. 사이비 종교 지도자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온화한 성품과 낮은 자세를 보이는 정진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중을 설득하며, 반감을 가진 이들에게는 자신만의 확고한 논리로 맞선다. 광기와 탐욕의 얼굴을 숨긴 채 입바른 말로 대중을 호도하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단단한 신념으로 대중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인물은 중반 이후 자신의 연약한 내면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전달한다. 유아인은 정진수를 어떤 인물로 생각했을까.

"나약함의 발현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에게 있어서 선과 악은 자기 합리화의 영역일 뿐이죠. 내뱉는 단어는 정의롭고, 신념 덩어리고, 논리적인 척 하지만 사실 다 궤변이잖아요. 선을 따지고, 정의와 대중을 위한 선동을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구제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어요. 그걸 외적으로 아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내면은 누구보다 연약하고, 나약하죠. 정진수처럼 자신이 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은 누구도 믿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선도 자신이 절대적인 선이라고 주장하진 않거든요."

묘사적인 측면에서는 "그의 내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했어요. 내면을 끊임없이 추측하게 하는 것으로 이 극의 몰입감을 극대화해야 했죠. 내면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최대한 지양했어요. 흔히 생각하는 사이비 종교 수장의 이미지를 피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죠. 정진수 특유의 차분함이 수준 높은 차원의 트위스트는 아니지만 선입견을 한 끗 차이로 비켜가면서 캐릭터성을 유지하고 신선해 보이도록 신경 썼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지옥

인물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정진수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과거와 현재, 모순적인 내외면을 형상화했다. 유아인은 범상치 않은 인물을 만들어가는 숙제를 하면서 자기 안의 불안, 불완전함을 참고했다고 덧붙였다.

"제가 정진수처럼 초자연적인 사건을 겪진 않았지만, 그가 그 사건을 통해 겪게 되는 외로움이나 절망 같은 걸 비슷하게 느낀 경험이 있어요. 우리 모두 도달해본 감정들이지 않나요? 저는 예전에 썼던 짧은 글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을 누군가 조금만이라도 알아준다면 조금 덜 외로울 텐데'라는 내용이었어요. 외로움과 고독을 외부로 전이하려는 인간 욕망은 정진수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 외로움과 고독은 대개 건강한 방식이 아닌 부정적인 방식으로 발현되곤 하죠. 정진수가 그런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유아인

◆ 단점조차 장점으로 승화…유아인의 '변주'엔 특별함이 있다

"연기를 오래 하고, 많이 한다고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자기가 고민하고 애쓰는 만큼 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고민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그게 버겁긴 하지만요. 대중에게 실망을 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은 거 같다는 말이 감사하면서도 도전과 성장이랑 강박 속에 중독돼있는 자신이 힘겹기도 하네요. 하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죠. 때론 실패하고, 때론 성공하고. 어떤 분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테고, 어떤 분들은 '유아인 연기는 똑같아'라고 하겠지만요."

'지옥'에서 정진수의 마지막은 강렬했다. 유아인이 준비한 모든 것이 망라된 장면이 진경훈(양익준)과 대치해서 벌이는 긴 독백신이다. 특유의 떨리는 목소리에 감정의 고저를 입히고, 전에 못 봤던 표정을 더해 정진수의 마지막 궤변을 완성했다.

유아인의 연기는 교육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늘 전형성을 벗어난 새로운 해석이 나온다. 시리즈 전체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을 그는 어떤 식으로 준비했을까.

지옥

"그렇죠. 제가 정규 (연기) 교육을 받은 배우는 아니죠.(웃음) 경험을 통해 이런 시도, 도전을 하면서 '좋은 연기가 뭘까', '더 좋은 표현이 뭘까'를 고민하고 연기를 구체화하는 다양한 시도를 해봐요. 게으른 성미에 대한 합리화기도 하지만 저는 즉흥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에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 만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면서 연습도 하게 됐어요. 대사가 너무 긴 신들은 사전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편인데 그렇다고 해서 철저하게 계산을 한다거나 대본을 달달 외우지는 않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감독님이 당일날 대사를 바꾸셨는데 어차피 대사를 외워 가지를 않아서 그 변화 자체가 어렵진 않았어요. 감독님이 대본에 그려져 있는 것보다 강렬한 감정적 표현을 원하시면서 '여기선 터트려 주십시오'라고 했는데 그게 제가 생각한 정진수와는 결이 좀 달랐어요. 그래서 과잉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고민하면서 빌드업해나갔어요. 모든 신, 모든 상황, 모든 작품을 그렇게 접근하지는 않지만 제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편이에요."

이 장면은 원테이크로 단 한 번만에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감독이 아침에 급히 바꾼 대사를 완벽하게 연기해낸 유아인을 보며 연상호는 "명확한데 자유롭다"라고 표현했다. 이는 신(scene)의 의도에 부합하면서도 연기 형식면에서는 자유로웠다는 의미일 것이다. 감독이 배우에게 원하는 최고의 그림을 완성한 셈이다.

지옥

유아인은 총 6부작인 이 작품에서 3부 만에 퇴장한다. 중심 캐릭터의 이른 퇴장은 시청자로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다. 실제로 이 작품의 활기는 정진수가 사라지면서 급격히 떨어지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그의 남긴 잔재가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4부부터도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지옥'이 보여주는 살풍경, 즉 집단이나 개인의 혐오, 광기, 폭력을 유아인도 조금 다른 형태지만 경험해본 바 있다.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온 유아인에게 불가피하게 다가온 논란의 시간이기도 했다. 유아인에게 우회적으로 물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그는 다소 곤란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이 질문에 신중하게 대답했다.

"저야 뭐 그 중심에 서있었던 인물이잖아요. 음...음...음...(그는 머리를 쥐어짜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이가 들어서 이렇게 (말 하나도) 조심하게 됐네요. 음...어떻게 극복했냐고요? 누군가 나를 때리는데 그게 핵심이 없으면 수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나에게 가해진 힘 자체가 때로는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부가 텅 빈 솜방망이 같을 때도 많아요. 그건 떨치면 되는데 너무 수용하며 살 때가 있었어요. 개인으로서, 배우로서, 유명인으로서 대중을 상대하는 입장에서 그 모든 과정이 싸우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세상을 이해하고, 사회를 이해하고, 그분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배워나가는 과정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지금도 그 과정이고요. 그러다 보니 내가 무뎌지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냥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삶을 소화하고 있어요."

유아인

유아인은 최근 2년 간 무려 다섯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쉬지 않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배우란 불덩이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며, 어떤 작품 안에서도 그것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서 그 잔여물 때문에 속상해한다."고 했던 예전 인터뷰 속 말이 떠올렸다. 불덩이를 화가 아닌 에너지로 채우며 유의미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최근 작품을 많이 하긴 했는데, 저는 배우가 일이긴 하지만 일보다는 제 삶이 더 중요해요. 일이 삶 속에 들어와 있긴 해도 삶을 잘 살고 싶어서 일을 하고, 일을 잘하고 싶어서 삶을 잘 살아내려고 애써요. 최근 들어서 일을 많이 하는 건 노는 게 전처럼 재미가 없어요.(웃음) 자유 시간이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반복해서 하는 말이지만...계속 나를 펼치면서 갔을 때는 천천히 갔는데,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끼면서부터는 한계를 부수는 강박 속에서 나를 못살게 굴고, 도전을 이어가기 위해 등 떠미는 같은 느낌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그 한계를 조금도 넘어서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한계를 조금만 넘어서도 감사한 일인데 그 한계가 너무 강렬하게 느껴져서 계속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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