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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007 노 타임 투 다이', 다니엘 크레이그를 보내줄 시간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9.30 18:28 수정 2021.09.30 18:34 조회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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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007 노 타임 투 다이'(감독 캐리 후쿠나가)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라스트 댄스와 같은 의미를 지닌 영화다. 장장 15년 간 '제임스 본드'로 살았던 다니엘 크레이그는 스스로 퇴장 선언을 번복할 여지까지 없애며 팬들에게 확실한 이별을 고했다.

대관식만큼이나 중요한 은퇴식은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여전한 카리스마와 매력으로 종횡무진 활약했고, 전편에서 첫 등장한 본드걸 레아 세이두는 빼어난 감정 연기로 로맨스를 강화한 이번 작품을 빛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앞선 시리즈에 대한 오마주를 통해 클래식한 매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다소 긴 러닝 타임과 늘어지는 전개 탓에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작진이 선택한 영화의 대미는 올드 팬들의 격렬한 반응이 예상된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다니엘 크레이그의 라스트 댄스는 건너뛸 수는 없다. 이번엔 진짜 그의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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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내주는 오프닝…자체로 한 편의 영화

'007 스카이폴'부터 오프닝 시퀀스는 007 시리즈를 상징하는 하나의 인장이 됐다. 제임스 본드의 화려한 등장과 닥쳐올 위기를 요약하는 오프닝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영화가 될 만큼 탄탄한 짜임새를 자랑한다. '노 타임 투 다이'도 마찬가지다.

약 20여분의 오프닝은 과시적인 화려함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그림 같은 풍광, 최첨단 자동차와 각종 무기 등 물량 공세로 완성된 액션, 화려한 카메라 워킹, 끝내주는 주제가까지 시작부터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끌어올린다.

무엇보다 이 시퀀스의 끝엔 어김없이 명품 보이스가 깔린다. '007 스카이폴'은 아델이었고, '007 스펙터'는 샘 스미스였다면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빌리 아이리쉬다. 그녀의 몽환적인 목소리는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특별한 시작을 알린다. 여기까진 완벽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러닝 타임은 무려 163분이다. 제작진은 다니엘 크레이그의 은퇴식에서 무엇 하나 덜어낼 수 없다는 마음으로 편집에 임한 건지 압축의 미학은 찾아보기 힘들다. 액션에서 멜로, 가족 영화로 방향을 전환을 하며 제임스 본드에게 닥친 오해와 위기 그리고 로맨스에게 긴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다 보니 중간중간 액션이 곁들여도 늘어짐은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오락 영화를 보는 것은 얼마 만인가를 생각하면 2시간 40분이 아깝진 않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중무장한 액션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액션의 손맛이 이 영화에는 넘친다. 2억 5천만 달러(한화 약 2,964억 원)라는 역대 최고의 제작비를 투입하고, 영국·이탈리아·노르웨이·자메이카 곳곳을 배경으로 완성된 액션 신은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선사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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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최고라더니…실패한 빌런의 설계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보헤미안 랩소디'로 유명한 라미 말렉의 출연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전 세계적 성공과 함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거머쥔 라미 말렉이 '007 영화'에 출연하고 '악역'을 맡는다는 사실은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기 충분했다. 제작진은 "역대 최고의 악역이 될 것"이라고 자부했지만 공개된 영화 속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비했다.

007 시리즈는 이상하리만치 빌런의 설계에 있어 취약점을 드러내 왔다. 앞서 출연했던 크리스토퍼 왈츠나 하비에르 바르뎀, 매즈 미켈슨 역시 명배우의 역량을 캐릭터를 통해 100% 발산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는 초반 사핀(라미 말렉)과 마들렌(레아 세이두)의 과거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빌런의 등장에 대한 호기심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본격 등장한 사핀은 원한과 복수의 동기를 충실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애초에 캐릭터 빌딩이 이것밖에 안됐다면 각본의 게으름이고, 편집에 의해 분량이 잘려나갔다면 배우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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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적'이라는 수식어를 내세웠지만 영화 속에서 그의 위용은 다소 초라하게 묘사돼 제임스 본드와의 대결도 싱겁게 전개된다.

오히려 아나 디 아르마스가 더 돋보였다. 신입 CIA 요원 '팔로마'로 분한 아나 디 아르마스는 파티걸에서 여전사로 일순간 변신해 시원스러운 총기 액션을 선보인다. 여성 캐릭터의 출연이 앞선 어느 편보다 많았지만 아르마스는 20분 남짓한 짧은 분량에도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향후 재등장을 기대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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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멜로→가족극…장엄한 마지막을 위한 드라마

화려한 액션으로 포문을 열었지만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앞선 어떤 작품보다 멜로 드라마의 성격이 강하다. 올드 팬들이라면 '007 여왕폐하 대작전'(1969)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제임스 본드와 마들렌 스완(레아 세이두)의 이별과 재회는 어떤 측면에서는 진부한 클리셰다. 어떤 이들은 신파 과잉이라는 지적도 할 수 있지만, 외강내유의 제임스 본드가 안정과 안착을 원하는 평범한 남성의 욕망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 가능한 서사의 흐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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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다니엘 크레이그와 레아 세이두의 빼어난 감정 연기가 진부함을 품격으로 탈바꿈시켰다. 레아 세이두가 연기한 마들렌은 보호받아야 할 여성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주체적인 여성이자 강한 엄마로 표현된다. 그러면서도 사랑을 향한 갈구를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고난도의 액션 연기와 섬세한 감정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펼치며 우아하면서 치열한 '라스트 댄스'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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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드, 제임스 본드...' 아쉬운 본드의 작별 인사

다니엘 크레이크는 숀 코네리, 로저 무어와 함께 역대 최고의 제임스 본드로 꼽힌다. 그를 발탁할 당시만 해도 '미스 캐스팅' 여론이 뜨거웠지만 첫 영화 '007 카지노 로얄'(2006)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발산하며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강력한 남성미와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품격 넘치는 특유의 분위기는 다니엘 크레이그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여기에 50대의 나이임에도 완벽한 자기 관리로 단단한 몸을 만들고, 날렵한 몸동작으로 고난도의 액션을 무리 없이 소화해왔다.

15년 간 총 5편의 007 영화에 출연한 다니엘 크레이크는 배우로서 확실한 이정표를 세웠지만 특정 캐릭터로만 기억되는 한계 또한 가지고 있었다. 007 시리즈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영화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다양하게 채우려는 노력은 했지만 팬들은 '제임스 본드'로서의 그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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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칠 때 떠나고 싶은 마음과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망 끝에 그는 몇 차례 007 시리즈의 하차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다시 돌아와 5번째 여정을 통해 마침표를 찍게 됐다.

그러나 다니엘 크레이그를 보내주기 위한 제작진의 고민은 충분했는가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 어떤 복귀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기 위해 가장 극단적인 마지막을 설정했겠지만, 15년 간 함께 했던 제임스 본드를 다소 허망하게 보낸 것은 아닌가 하는 불만은 올드 팬들 사이에서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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