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영화 핫 리뷰

[빅픽처] '샹치', 주인공보다 빌런이 더 매력적인 아이러니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9.13 17:18 수정 2021.09.13 19:11 조회 1,386
기사 인쇄하기
샹치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마블의 첫 아시안 히어로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이 우려를 딛고 박스오피스에서 선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갈리는 분위기다.

데뷔전 치고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와 액션에 치중했을 뿐 캐릭터와 서사가 빈약하다는 실망감도 적지 않다. 또한 영화 전반에 깔린 오리엔탈리즘(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불편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에도 관객들이 입 모아 동의하는 건 빌런으로 활약한 양조위의 매력과 존재감이다. 아시아 최고 배우로서의 연기력과 아우라를 마블 영화에서도 아낌없이 발휘했다는 평가다.

양조위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암흑 조직 '텐 링즈'의 수장 '웬우'를 연기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피의 복수를 시작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복수에 눈이 먼 웬우는 아들 샹치(시무 리우)와 딸 샤링(장멍)마저 내팽개친다.

샹치

마블 영화에서 조연의 사랑 이야기가 서브 플롯으로 등장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웬우의 전사는 샹치의 현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만큼 영화에서 메인 플롯만큼 중요한 기능을 한다.

웬우의 흑화 스토리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이 과정을 매력적으로 만든 것은 양조위라는 배우의 역량이다. 예순을 앞둔 명배우는 뒤늦은 할리우드 데뷔작, 그것도 히어로 영화에서 자신의 인장을 강렬하게 새겨 넣었다.

양조위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중화권 최고의 스타이자 연기파 배우로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아시아에서의 인기를 기반으로 할리우드에 일찌감치 데뷔했던 주윤발, 성룡과 달리 양조위는 자국 위주의 활동을 하면서 인기 스타에서 연기파 배우로 자가발전을 이뤄냈다.

특히 왕가위의 페르소나로서 '동사서독'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 등의 작품을 통해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덤을 확보했다. 1990년대에 20~30대를 보냈던 영화광 중에 양조위 한 번 마음에 품지 않았던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이런 양조위를 마블 영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기대감과 동시에 우려를 낳기도 했다. 주인공도 아닌 빌런으로 등장하는 그가 맥없이 소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양조위는 양조위였다. 다소 전형적인 서사 안에서도 그는 특유의 눈빛 연기와 나이가 무색한 액션 연기로 영화의 격을 높였다.

샹치

다만 '샹치'에서 양조위의 부각은 주인공 시무 리우의 아쉬운 존재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의 타이틀롤을 맡았음에도 시무 리우는 영화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버스 액션신'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을 장면을 남기지 못했다.

히어로 영화의 서사는 대체로 출발-입문-시련-귀환-각성-성장으로 이어진다. '샹치' 역시 이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무 리무가 연기한 영웅 탄생 이야기는 성공적이었을까.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을 통해 미국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시무 리우는 코미디 배우 이미지가 강하다. '샹치'의 초중반까지는 자신의 장기를 기반으로 아콰피나와 함께 괜찮은 코미디 호흡을 보여주지만 아버지 웬우가 등장하고 자신의 상처가 드러나는 부분부터는 감정 연기의 한계를 보여준다.

샹치

이 부자(父子)의 사연에서 관객은 샹치에 감정을 이입해야 하지만 되레 웬우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이는 시무 리우가 샹치의 아픔과 상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탓이 크다.

물론 마블의 첫 아시안 히어로를 바라보는 관객의 어색함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배우의 얼굴이 낯설다. 2시간 안팎의 영화를 통해 신인에 가까운 배우와 첫 선을 보인 캐릭터에게 정을 붙이기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영화 전반에 깔린 오리엔탈리즘도 이 영화에 온전히 몰입하기 힘든 요소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 동양인과 동양 문화의 판타지가 한껏 투영돼 있다. 더욱이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이르러서 '샹치'는 재미의 피치를 올리기보다는 난장으로 무너져버리는 인상마저 준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북미 첫 주말 7,000만 달러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14년 만에 노동절 박스오피스 기록을 깼다. 중국 개봉길이 막힌 가운데에서도 북미를 비롯한 월드 박스오피스에서 선전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샹치

지금까지의 분위기로 미뤄본다면 '샹치'의 속편 제작은 청신호다. 다만 속편에서 풀어야 할 숙제도 적잖다. 매력적인 빌런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또 주인공 샹치의 매력은 어떻게 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쿠키 영상에서도 암시되듯 '샹치'가 단순히 솔로 무비 출연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MCU에서 자리 잡은 히어로들 사이에서 신입인 샹치가 제 몫을 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물론 마블의 히어로 무비 역사에서 1편보다 나은 2편은 많았고, 전편보다 속편에서 더 매력을 발휘한 히어로도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캡틴 아메리카다.

페이즈 4기를 기점으로 마블은 무한 확장을 예고하고 있다. 여성 히어로에 이은 아시안 히어로의 등장은 MCU의 변화와 발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샹치'는 MCU에서 또 하나의 전설이 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절반의 성공일 뿐이다.

ebada@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광고 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