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습도 다소 높음', 코로나19에도 영화의 웃음꽃은 핀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9.05 01:10 수정 2021.09.05 13:58 조회 361
기사 인쇄하기
습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습도 다소 높음'(감독 고봉수)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영화인들을 위한 응원가 같은 영화다. 유례없는 악재 속에 감독은 감독대로, 배우는 배우대로, 극장은 극장대로, 관객은 관객대로 영화와 강제 거리두기를 당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잖아"라고 말한다. 이 메시지에는 눈물 한 방울뿐만 아니라 웃음 한 바가지도 얹었다. 그게 바로 고봉수식 위로다.

코로나19로 파리만 날리는 낭만극장, 긴축 경영을 위해 에어컨까지 꺼버렸다. 극장의 유일한 직원인 충길(김충길)은 더위와 싸우며 손님맞이에 한창이다. 오늘은 영화 '젊은 그대'의 시사회가 있는 날이다. 충길은 혼자서 일하는 노고를 임금 인상으로 보상받고 싶지만 사장(신민재)은 자신도 힘들다며 애써 모른 척한다.

습도

범상치 않은 외모의 무명 배우 승환(백승환)은 미모의 여성과 소개팅 중이다. 상대가 마음에 쏙 드는 승환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시사회에 가자고 제안한다. 여성은 마지못해 따라나서지만 폭염에 택시도 아닌 버스 이동을 고집하는 승환에게 크게 실망한다. 땀범벅이 된 여성은 극장에 도착하자마자 몰래 줄행랑을 쳐버린다. 승환은 낙심하지만 이내 자신의 영화를 보러 시골에서 올라온 두 형님을 맞이하느라 정신이 없다.

시사회 시간이 다가오고 영화를 연출한 이희준 감독과 주연 배우 고주환, 차유미도 극장에 도착한다. 낭만극장에 모인 영화인과 관객들은 '젊은 그대'를 보며 각자의 생각에 빠진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는 관객과 감독, 진행자 간의 묘한 신경전까지 벌어지며 시사회는 예상 밖 방향으로 흐른다.

습도

'습도 다소 높음'은 단관 극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일을 그렸다. 시사회를 계기로 주요 인물들이 한 공간에 모이게 되고 각자의 기대 속에서 '영화'와 마주하게 된다.

영화를 업(業)으로 한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다. 코로나19 시대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며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영화와 영화인, 극장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영화 속 영화 설정을 통해 배우들을 조명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는 감독과 관객의 입장을 보여준다. 이 모든 과정은 영화 그리고 극장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돼버렸다. '습도 다소 높음'은 코로나19라는 재앙을 통해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경험과 기억들을 소환한다.

고봉수 감독의 영화는 가내수공업과 같다. 감독이 연출을 하고 각본을 쓰고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한다. 다소 투박한 완성도는 B급 감성과 어우러져 '고봉수 월드'를 관통하는 개성으로 자리매김했다.

배우들 역시 연기뿐만 아니라 스태프가 돼 영화 만들기에 기여한다. 제 것만 잘하면 되는 여타 제작 환경과는 달리 이들은 영역을 가르지 않고 영화에 투신한다. 때문에 "우리가 함께 만든 영화"라는 애정과 자부심이 영화 안과 밖에서 느껴진다.

습도

'델타보이즈', '튼튼이의 모험'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고봉수 감독 특유의 페이소스는 이번 영화에서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우울한 현실을 잊게 하는 건 웃음이고, 소소한 행복은 웃음과 함께 온다는 것을 이 영화는 어김없이 보여준다.

'성난 황소', '시네마 천국 등 명작에 대한 오마주도 돋보인다. 백승환의 새도우 복싱 장면은 '성난 황소'를 떠오르게 한다.

고봉수 감독은 작품마다 김충길, 신민재, 백승환 등 '고봉수 사단'의 멤버들에게 번갈아가며 주인공의 롤을 부여해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백승환이 사실상의 주인공이다. 그는 힘든 여건 속에서 꿈을 키워나가는 배우 역할로 등장해 관객의 연민을 자극하고, 응원의 박수를 이끌어낸다.

이희준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독립영화 감독을 연기한 이희준은 힘들게 영화를 만들면서도 창작자로서의 자존심, 자부심만큼은 잃지 않은 감독들의 모습을 투영했다. 고봉수 감독과의 첫 작업임에도 기존 멤버들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캐릭터 또한 자신만의 개성으로 표현해냈다.

영화의 제목은 불쾌지수 유발이 예상되는 날씨 예보에서 따왔지만, 사실상 반어법이다. 이 영화의 웃음 기상도는 매우 맑음이다.

ebada@sbs.co.kr

광고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