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코로나19 최악재에도 극장 고집…영화·관객 향한 류승완의 진심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8.25 17:07 수정 2021.08.25 17:15 조회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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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류승완 감독의 밝은 미소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전작 '군함도'(2017) 인터뷰 당시 그는 예민했고, 지쳐있었다. 그 마지막 기억으로부터 4년,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한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화상 카메라를 사이에 뒀지만 류승완 감독의 말과 손짓, 표정에는 '흥'이 가득했다.

'류승완은 영화에 미친 사람'이라는 배우 허준호의 말은 틀린 게 아니다. 류승완 감독의 인생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집념으로 점철돼있다. 때문에 그는 분신과 같은 영화들이 오해받고 곡해되는 상황을 유독 견디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심지어 '군함도'의 뼈아픈 논란 이후 '류승완이 영화를 관두고 한국을 떠난다더라'라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영화감독은 영화로 받은 상처를 영화로 회복한다. 류승완도 그랬다. '모가디슈'로 4년 만에 관객과 재회한 그는 전작의 시행착오를 만회하는 결과물로 관객들의 열렬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다.

류승완 감독은 '모가디슈'에 대한 관객들의 성원과 반응을 보며 '기적'과 '감동'을 이야기했다. 그 말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모가디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에 영화 흥행에는 호재라 할 수 없는 올림픽 시즌까지 겹쳤지만 '모가디슈'는 270만 명을 돌파해 300만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재미와 의미,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대중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지지와 응원이 느껴지는 결과다. 무엇보다 관객은 '류승완의 귀환'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데뷔 25년, 영화라는 한 우물만 판 류승완 감독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영화계 초유의 위기 사태에 대해 영화인으로서의 진심 어린 제언도 남겼다.

Q. 축하드립니다. 현재까지의 흥행에 만족하시는지요?

A. 물론입니다.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인사치레가 아니라 진심입니다. 물론 상황이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애초부터 이 영화를 만들 때 '기록적인 스코어를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은 없었기에 지금과 같은 성적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개봉을 앞두고 코로나19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A.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개봉 예정 시기를 작년 여름이라고 알고 계시는데 사실이 아녜요. 작년 이맘때 저희는 후반 작업 중이었거든요. 겨울 개봉을 고려하기도 했는데 코로나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저는 내심 관객들이 영화 속 무더위를 같이 느낄 수 있게 여름 개봉을 원했어요. 다행히 음향 작업이 모두 끝난 게 올 여름 초입이었어요. 다만 개봉을 앞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까지 격상돼 '지금 개봉하는 게 맞을까' 싶긴 했죠. 그런데 후반 작업을 하면서 영화계가 정말 어렵다는 걸 체감했어요. 극장, 감독, 배우, 스태프도 힘들지만 후반 작업 업체들도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더라고요. 영화를 개봉해야 하드 용량이 확보되는데 쌓이기만 하고... 우리가 계속 미룬다고 될 것도 아니니 개봉하기로 마음먹었죠.

류승완

Q. 최근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이슈인 한일관계, 남북관계 소재의 영화를 잇따라 만드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A. '군함도' 이후에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졌다기보다는 이 소재가 저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치밀한 사람이 아니라 계획해서 한 일은 아니고요. 제 인생도 계획 못하는데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시기에 이 영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또한 '군함도'를 하면서 대규모 군중 신과 심도 깊은 연출에 대한 훈련을 해보기도 했고요. '군함도'가 없었으면 '모가디슈'도 나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Q. 1990년대 남북관계는 물론 우리나라의 외교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연출을 하시면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 개인 간의 관계 등에 대한 특별한 깨달음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포커스를 어디 맞추느냐가 중요한데 저는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알고 있는 것도 두 시간 안에 표현하는 게 벅찬 일이었거든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어요. 거대한 이야기를 거대하게 표현하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를 표현하는 게 맞겠다 싶었어요. 국가에 대한 이념이나 질문하신 부분에 초점 맞추기 시작하면 이도 저도 안될 것 같았어요. 물론 그런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순 있겠지만 해답을 내리는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모가디슈

Q. 실화 기반의 영화이고, 실존 인물이 영화의 주요 캐릭터인 만큼 많은 조사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교사에 중요한 사건임에도 자료가 많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취재를 했고, 어떤 부분들을 영화에 반영하고자 했나요?

A. 영화 속 캐릭터의 실제 모델인 강신성 대사님을 비롯해 여러 외교관과 종군 기자를 만나서 1980~1990년대 아프리카 파견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국내외 서적들을 참고하기도 했고요. 영화엔 여러 사람들의 사연이 섞여 있어요. 당시 한국과 북한이 아프리카 대륙에 외교관을 파견한 건 UN 투표권 때문이기도 하지만 냉전 시대 이후 소련과 미국이 아프리카 국가를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우방국들에게 대사를 파견하라는 부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모가디슈'를 '영화 같은 실화'라고 하지만 실제 사건은 더 참혹했어요. 영화와 달리 당시 사람들은 방탄 장치 없이 탈출했거든요. 그 많은 인원이 이탈리아 대사관까지 가는데 단 1명 만이 희생당했어요. 기적 같지 않나요? 다만 영화를 보시는 분들에게 최소한의 설득 장치를 줘야겠다 싶어서 두꺼운 책으로 차를 막는 설정을 넣었어요. 그리고 당시 루마니아 대사관 사람들도 한국 대사관에 머물다가 탈출했다고 해요. 북한 대사는 8번 넘게 반군에게 습격당했고, 여직원들도 처참하게 폭행당하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영화에 다 넣을 순 없었어요. 당시 전쟁 상황을 자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는 뺄셈이 중요했습니다.

모가디슈

Q.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가 이야기의 배경이지만 실제 촬영은 모로코의 에사우이라에서 이뤄졌는데요. 100% 해외 로케이션 자체가 큰 도전이었을 것 같습니다.

A. 소말리아는 여행 금지국이라 촬영이 불가능했고, 대체지로 떠오른 곳은 케냐였어요. 소말리아와 케냐 사람이 피부색 등 외모가 가장 비슷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가 촬영하러 가기 전에 쇼핑몰 테러가 발생해 안전에 문제가 생겼어요. 또 도로 방향이 반대인 것도 케냐가 후보지에서 멀어진 큰 이유였죠.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촬영해서 촬영 장비 및 인력에 이점이 있는 모로코로 가게 됐어요. 에사우이라에서 카 체이싱을 비롯한 주요 촬영이 진행됐습니다. 미술팀의 손길이 닿은 거리를 보고 1992년 모가디슈에 있었던 현지 스태프는 "내가 경험한 모가디슈 거리와 너무 똑같다"며 감탄하기도 하더라고요. 이것은 제 능력이 아니라 스태프들의 힘이 컸어요. 배우들도 너무 많은 의지가 됐고요. 똑같은 환경을 제시하고 영화를 또 찍겠냐고 한다면 저는 또 찍을 거예요. 저는 이 사람들이라면 세계 어디에서도 영화를 찍을 수 있어요. 단, 밥차만 있다면요.(웃음)

Q. 소말리아 탈출 실화를 재구성하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과 주의를 기울였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A. 사람들과 사람들의 심리 상태였습니다. 스펙터클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너무 많은 요인들이 있었지만 저 스스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험을 관객들에게 체험하게 하는 것도 중요했어요.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그 상황 안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심정을 관객들도 같이 느낄 수 있게 하자'가 연출의 중요 포인트였습니다.

모가

Q. '군함도'가 있었기에 '모가디슈'가 있었다는 말에 공감하는데요. 소재를 장르와 결합하는 방식이나 인물들의 감정을 끌어내는 연출 등이 전작에 비해 한층 세련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색적 공간이나 역사적 배경을 액션의 무대로 소비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A. '군함도'를 통해 이런 걸 배웠던 것 같아요. 소재가 좋을수록 소재주의에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는 걸요. 극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다룰 때 유지해야 하는 접점 거리라는 게 있다는 거죠. 이런 영화는 준비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과정에서도 너무 많은 요소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명쾌한 답을 드리기는 힘들기도 해요. 지켜보는 분들이 오히려 객관적으로 보시지 않을까 싶네요.

Q. 전작에 이어 또 한 번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감독으로서의 스트레스도 적잖을 것 같습니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힐 때 '내가 이 미친 짓을 왜 시작했지?' 같은 후회를 한 적은 없으셨나요? 그런 스트레스의 과정들을 어떻게 헤쳐나가셨는지도 궁금합니다.

A. 사이즈가 큰 영화를 하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니라, 이 소재의 영화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예산이 커진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저라고 손익분기점이 높은 영화를 만들고 싶겠어요? 저도 부담 없이 영화를 만들고 싶죠.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다루려다 보니 알뜰살뜰하게 만들어도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규모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의 고충이 있긴 해요. 그리고 반대로 제작 규모가 커서 좋은 부분도 있죠. 저는 사실 블록버스터 감독, 천만 감독의 수식어가 붙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요. '그러지 마시라'고 할 수도 없고.(웃음) 그렇다고 제가 블록버스터를 지향해서 만드는 건 아녜요.

모가디슈

Q. 이 힘든 여정이 가능했던 건 가족처럼 힘이 되어준 스태프와 배우들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요. 여느 영화보다 팀워크가 빛났던 것 같습니다. 배우들이 영화에 대해 가진 자부심도 남달라 보였습니다. 이번에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배우와 처음 작업을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A. 맞습니다. 헌신적이었던 스태프들 아니었으면 전 영화를 못했을 거예요. 배우들의 경우 이 조합을 만들려다가 나온 결과가 아니라 배역에 어울리는 분들을 찾다 보니 완성된 조합이에요. 허준호 선배는 '인랑'에서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라 김지운 감독에게도 감탄하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이후 제 카메라 앞에 이분이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모가디슈' 대본 나오기도 전에 급하게 만나자고 해 말씀을 나눴는데 선배님이 그 자리에서 "합시다!" 해주셔서 제가 엄청 신났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김윤석 선배는 강렬한 캐릭터 연기로 유명하지만 저는 '완득이'나 '거북이 달린다'의 서민적 연기도 좋아해요. 뭔가 겁에 질려 있는 외교관 모습을 상상할 때 김윤석 선배가 떠올랐어요. 조인성 배우의 인성, 구교환 배우의 신선도는 뭐 두말할 것도 없죠.

Q. 당연히 극장 개봉을 생각하고 만드셨겠지만 코로나19라는 변수, 영화계의 장기 침체, 관객 발길이 끊긴 극장 등 환경적 요인이 극장 개봉을 고민하게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플랫폼을 통한 공개는 원천적으로 배제하신 건가요?

A. 저는 극장용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제게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입니다. 극장은 제 꿈을 이뤄준 곳이고, 힘든 시절을 저를 지켜준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제게 극장용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직업 이상의 의미기도 합니다. 극장용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관객들에게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가디슈'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자면 인물 눈동자에 반사되는 모습, 작은 모깃소리, 비행기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음향 등은 핸드폰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제게도 (개봉 방식과 관련한) 여러 유혹이 있었지만 극장을 택해야 했어요. 이건 흥행이나 손익을 떠나 생각의 문제, 관계의 문제이기도 했어요. 영화를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극장을 통해 영화를 만나잖아요. 극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저는 극장용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물론 요즘 너무 힘들죠. 제가 영화를 처음 시작한 1990년대엔 한국 영화가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느낌이에요. 그래서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응원해주시는 관객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단순히 숫자를 넘어선 감동이 제게는 있어요.

류승완

Q. '모가디슈' 뿐만 아니라 제작사 외유내강의 대부분의 엔딩 크레딧에는 제작실장과 조감독의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가는 걸 볼 수 있는데요. 감독님의 어떤 함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A. 일단 그 친구들이 없으면 제가 영화를 못 만들어요. 사실 대부분의 감독들이 조감독 없으면 현장에서 바보거든요.(웃음) 특별한 의미라기보다는 제겐 그게 너무 당연한 거라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습니다.

Q. 곧 누적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할 것 같은데 '모가디슈'를 관람한 관객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는데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 어려운 환경에서 제 영화를 보러 와 주시고 진심 어린 리뷰를 남겨주시기까지 하는데 그 마음이 하나하나 느껴집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지 모르겠지만 있는 힘껏 열심히 만들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영화를 보여드리겠습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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