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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인질', 시작도 끝도 황정민…진짜와 가짜의 미묘한 줄타기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8.20 18:00 수정 2021.08.23 09:33 조회 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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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인질'(감독 필감성)은 황정민으로 시작해 황정민으로 끝나는 영화다. 대부분의 배우가 작품에서 가상의 인물을 연기하는데 반해 이 영화는 황정민에게 '배우 황정민'의 롤을 부여했다.

이 영화는 "톱배우가 납치됐다"는 설정에 실제 배우를 집어넣어 강력한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단순히 황정민의 이름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알고 있는 황정민의 백그라운드까지 시나리오 녹여내 이야기를 완성했다. 심지어 영화의 오프닝은 황정민의 그 유명한 '밥상 소감'으로 연다.

배우 황정민은 신작 제작보고회를 마치고 매니저 없이 홀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가려던 찰나 괴한들에게 납치된다. 낯선 장소에서 묶인 채로 정신을 차린 정민은 납치범 일당의 실체를 확인한다. 살벌한 눈빛의 납치범 리더 기완(김재범)과 다혈질 동훈(류경수), 어리숙한 용태(정재원), 충직한 부하 영록(이규원), 똑똑하고 예리한 샛별(이호정)이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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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요구하는 건 거액의 돈이다. 리더 기완은 공인인증서 확보차 정민의 집으로 향하면서 부하들에게 "오늘 밤 10시까지 돈이 안 들어오면 (황정민을) 죽여"라고 말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타임라인을 가동한다. 단 기간에 일어나는 일인 만큼 줄어드는 시간과 황정민이 처한 상황이 오버랩되며 긴장감을 이어간다.

2004년 중국 배우 '오약보 납치 사건'을 바탕으로 한 홍콩 영화 '세이빙 미스터 우'(2015)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인질'은 오락성을 강화한 연출을 선보인다. '세이빙 미스터 우'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동명 배우의 이름을 사용하진 않는다. '인질'은 '톱배우가 납치됐다'는 원작의 모티브에 '황정민'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실체성으로 관객의 몰입감을 높였다.

그렇기에 '인질'의 시작과 끝엔 황정민이 있다. 히트작 속 유행어와 연기 스타일, 시상식에서 남긴 어록, 대중적 이미지와 고정관념 등 '배우 황정민'의 모든 것을 캐릭터 황정민과 공유한다.

당연하게도 이 영화는 전 국민이 다 아는 국민배우 캐스팅이 관건이었다. 누적 관객 1억 명을 달성한 흥행 배우이자 수많은 히트작에서 유행어를 배출한 황정민이 캐스팅 0순위였던 것은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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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여배우는 오늘도'나 '차인표'도 실제 배우의 캐릭터를 가져와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들이 셀프 디스나 풍자를 기반으로 한 코미디 장르에 가까웠다면 '인질'은 범죄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범죄물은 대체로 극한의 위기 상황을 탈출하는 것이 주요 플롯이다. 허구의 상황에 관객이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영화의 성패와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배우 황정민의 납치'라는 설정은 꽤나 위력적이다.

대표적으로 일당 중 한 명이 '황정민의 팬'을 자처하고, 위력을 무기로 유행어를 시연하게 하는 장면은 잔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황정민이 자신의 연기했던 캐릭터 이름을 SOS 사인으로 사용하기도 하는 등 장면 장면의 아이디어도 살아있다.

또 다른 측면의 이상한 재미도 안긴다. 친숙한 배우가 납치당한 후 겪는 고초를 실시간으로 감상하게 된 관객은 흥미로우면서도 불편한 체험을 하게 된다. 대중 앞에서 정돈된 모습과 밝은 미소만 보여주던 스타가 범죄자들에게 능욕당하고 조롱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훔쳐보기의 찜찜함도 남긴다.

흥미로운 콘셉트에 비해 플롯과 캐릭터가 평이한 것은 사실이다. 황정민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로 '배우 황정민'의 캐릭터를 입체화시켰고 장면 장면에 활기를 불어넣었지만 그 외에 캐릭터는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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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인질'은 콘셉트가 오 할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다. 여기에 황정민이 출연하며 팔 할의 재미를 확보했다. 황정민이 납치당한다면 벌어질 법한 일, 할 법한 행동들도 사건을 구성하고, 그의 진짜 같은 반응을 보며 관객을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전략을 계획했을 것이다.

'인질'은 '황정민의 원맨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황정민은 현실과 허구가 헷갈릴 정도의 실감 나는 열연을 펼치면서 관객에게 딴생각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황정민이지만, 행간을 채운 새 얼굴의 등장도 반갑다. 최기완, 정재원, 류경수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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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납치범 리더 최기완 역을 맡은 김재범은 범죄자 몽타주에서 튀어나온 듯한 얼굴에 싸늘한 연기로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황정민과의 1:1 연기 대결에서도 밀리지 않은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인질'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러닝타임 90여 분을 효과적으로 내달린 '인질'은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는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이 장면에서 보여준 황정민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마치 다시 영화가 시작될 것만 같은 묘한 긴장감을 툭 던져놓고 퇴장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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