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공포와 기괴 사이…'랑종'은 '곡성'이 아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7.15 15:49 조회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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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랑종'(감독 반종 피산다나쿤)의 예고편을 보며 '곡성'을 떠오른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산 아래 위치한 신비스러운 마을과 그곳을 감싸고 있는 묘한 기운부터가 심상치 않다. 공간이 선사하는 분위기가 영화의 스산함을 더했던 '곡성'과 닮았다.

영화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침투한 미스터리한 현상에 대해 파고들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곡성'을 연출한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썼다. 기획과 제작에도 참여했다.

"'곡성' 이후 '일광'(황정민)이라는 캐릭터의 이야기, 전사를 그려보고 싶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캐릭터로, 전혀 새롭게 그 전사를 만들면 어떨까? 그렇게 시작된 영화가 '랑종'이다."

나홍진 감독은 '랑종'의 시작은 '곡성'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랑종'은 '곡성'이 아니다. '곡성'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선택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나홍진의 손길이 닿은 것은 사실이나, 그의 숨결까지 들어간 영화는 아니다.

랑종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인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은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후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행동을 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 밍의 어머니 '노이'(싸라니 얀키띠칸)는 신내림의 운명을 피한 자신의 업보가 딸에게 간 것 같다고 여기며 동생 '님'에게 딸을 부탁한다.

'님'을 취재하기 위해 동행했던 다큐멘터리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제목인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을 뜻한다. 영화는 무당 '님'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최근 공포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페이크 다큐 형식을 취하고 있다.

랑종

초중반까지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야기의 주 배경이 되는 이산이라는 공간을 비추고, 바얀 신을 모시는 무당 '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소 루즈하게 전개되던 영화가 활기를 띄기 시작한 건 밍의 변화를 포착한 파운드 푸티지(실제 기록이 담긴 영상을 발견해 다시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처럼 표현하는 기법)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밍의 이상 행동은 경악스럽다. 근친상간, 영아 살해, 식인, 성애 묘사, 동물 학대 등 금기를 깨는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카메라는 이 현장을 충실히 관객에게 전달한다. 파운드 푸티지는 영화적 상황을 실제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악령에 지배당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반종 감독은 수위에 상한선을 두지 않은 듯한 연출을 보여준다. 연출을 빛낸 건 나릴야 군몽콘켓의 신들린 듯한 연기다. 신내림을 받기 6일 전부터 펼쳐지는 극한의 상황은 파국이며 난장에 가깝다. '밍'의 다채로운 패악질은 보는 사람을 피로하게 할 정도다.

랑종

그러나 이러한 장면이 반복되면서 충격 이상의 감정을 전달하지는 못한다. 공포는 심리적 요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잔인한 모든 장면이 인간의 공포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니다. 현상 제시와 관찰 위주로 전개되는 단순한 플롯 탓에 영화적 긴장도가 높지 않고, 이상 행동을 과도하게 묘사해 혐오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이 공포감과 혐오감으로 나뉘는 것은 그 이유다.

'랑종'은 '곡성'과 다른 길을 가지만 주제의식은 공유한다.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인간의 원죄 등을 이야기한다. 여기에 샤머니즘의 정서인 '업보'와 '대물림'이 영화 전반에 깔린 미스터리를 받춘다.

'곡성'은 인간의 믿음과 불신이라는 화두를 흥미로운 미스터리로 풀어낸 영화였다. 나홍진 감독은 플롯의 축소와 생략, 의도한 편집 기교를 통해 이야기에 대한 물음표를 극대화했다. 무엇보다 감독이 던진 미끼에 현혹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각기 다른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그에 반해 '랑종'은 명확하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설명적이고, 해석의 여지도 폭넓지 않으며, 영화의 마무리는 닫힌 결말에 가깝다.

'랑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에필로그다. 영화 말미 '님'의 울먹거림이 영화의 주제의식을 함축한다. 신에 대한 인간의 연약한 믿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믿는 자에겐 신이, 믿지 않는 자에겐 악이 함께 한다면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왜 하필 밍인가'라는 질문이 맴돈다. 영화가 끝나고 남겨진 건 절망과 허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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