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하니는 알고, 안희연은 몰라요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5.11 18:07 수정 2021.05.11 18:29 조회 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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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하니(본명 안희연)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공백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였다.

2019년 유럽에서 홀로 여행 온 하니를 봤다는 목격담을 전하자 "절 어디서 보셨어요?"라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서 한 달 남짓한 유랑기를 차분하게 풀어놓았다.

"소속사와 계약이 끝났는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더라고요.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는데 답을 안 해주더라고요. '아 얘가 많이 삐쳐있구나' 싶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제 안의 소리를 계속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거든요. 그런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는 직업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 몰라. 일단 떠나자. 잃어버린 걸 찾아와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하니는 유럽행 편도 티켓을 끊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매니저 없이 홀로 떠난 첫 번째 여행이었다. 자유롭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지만 익숙지 않은 자유는 어색하기만 했다.

"카페에 30분도 못 앉아있겠더라고요. 그 여유가 어색해서요. 그동안 제게 여유는 나태함의 상징이었고, 유해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흔한 취미 하나 없었죠. 기껏해야 30분도 자리에 못 앉아 있는 제가 한심하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템포를 늦추는 연습을 했어요. 여행 2주 차쯤 되니까 익숙해졌는지 집에 가기 싫더라고요. 그때부터 좀 주변이 보이더라고요. 늘어지게 자고, 맘껏 먹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너무 좋았어요. 그전에는 제가 행복하려면 어떤 외부적인 요인이 필요했는데 그 여행에선 그런 게 필요 없었어요. 그러면서 무서울 게 없어진 것 같아요. '내가 행복해지는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구나'라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게 절 용감하게 만든 것 같아요."

걸그룹 EXID의 센터 하니는 해사한 미소로 기억되는 아이돌이었다. 특유의 밝고 건강한 이미지에 열정적인 자세까지 갖춰 '에너제틱'의 대명사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그게 하니의 모든 것은 아니었을 터. 이날 인터뷰에서 느낀 바는 좀 달랐다.

'하니는 알아도 안희연은 몰랐구나.'

"DM으로 영화 제안

◆ 안희연의 연기 도전…DM 한통으로 시작되다

안희연을 찾는 여행 중 하니는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을 한 통 받았다. 발신인은 영화 '박화영'(2018)을 만든 이환 감독,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인데 하니 씨와 같이 일해보고 싶다. 시나리오를 읽어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영화 '어른들을 몰라요'를 준비 중인 이환 감독의 무모한 용기가 엿보인 쪽지였다. DM을 통한 캐스팅 제안이라니, SNS 시대라고 해도 너무나 이상한 방식이었다.

하니는 "말씀은 감사한데 지금 제가 회사가 없어서요. 자 혼자 출연 여부를 결정을 내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솔직히 영화가 좀 세기도 하고요. 지금 편도 티켓을 끊고 여행을 와있고,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 제안은 고맙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하니

이환 감독은 하니의 거절 속에서 어떤 긍정의 시그널을 읽었던 걸까. 귀국한 하니와 만난 끝에 캐스팅에 성공했다.

"감독님 전작 '박화영'을 미팅 후에 봤어요. '어른들은 몰라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우려했던 바가 '박화영'을 보면서 풀리더라고요. '박화영'도 주요 인물들의 전사(前史)가 없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인물에 대한 이해가 되잖아요. '어른들은 몰라요' 역시 인물의 전사를 보여주지 않아도 감독님이라면 관객에게 이해를 시키겠구나 하는 믿음이 들었어요. 미팅 때 '영화적 허용'이라는 말씀으로 저를 안심시켰는데 사실 그때는 그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어요. '박화영'을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됐어요. 만약 연기를 한다면 이 사람이랑 해보고 싶었고, 찍게 될 영화에 대해 설렜어요."

'어른들은 몰라요'는 영화는 가정과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10대 임산부 세진(이유미 분)이 가출 4년 차 동갑내기 친구 주영(안희연 분)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10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하니는 가출 청소년 '주영'으로 분했다.

하니

◆ 연기의 시작은 워크샵…육두문자부터 감정 연기까지

하니는 출연을 결정한 다음날부터 이환 감독이 주최하는 워크샵에 참여했다. 적은 제작비, 짧은 회차, 비전공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환 감독 작품의 특성상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었다.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하니에게 이 과정은 낯설고도 신선했다. 신(SCENE) 하나하나를 연습을 통해 만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데뷔 이후 수년간 밝은 미소와 예쁜 포즈로만 카메라 앞에 섰던 아이돌에게 시종일관 소리 지르고 악을 쓰며 육두문자를 날리는 비행 청소년의 삶을 연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극단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해야 했던 건 반복된 연습뿐이었다.

"저는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감독님이 저를 저쪽 끝에 세워 놓고 소리를 지르래요. 감독님은 반대 편 끝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탁 치면 연기를 하고, 액션 하면 약에 취한 척을 하고... 모든 과정이 실전처럼 이뤄졌어요. 대사의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욕 대사의 경우도 스파르타식으로 배웠어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제 마음껏 할 수 있게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셨어요."

하니에게 이 과정은 시나리오를 쪼개서 몸으로 체화하는 것과 같았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생생한 연기가 조건 반사처럼 튀어나왔다. 아마 살면서 몇 번 써본 적도 없을 육두문자도 실제 촬영에서는 거침없이 쏟아냈다.

어른

"후시녹음을 하러 가서 놀랐어요. 욕 파티더라고요.(웃음) 처음 워크샵을 할 때는 욕하는 게 너무 어색해서 모니터를 해도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아이돌 생활을 오래 한 제게 욕은 금기시된 것이었거든요. '씨발 새끼야'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처음엔 정말 입에 안 붙더라고요. 배우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은정이라는 친구가 있는 그 친구가 욕 연기를 참 잘해요. 제게 "'씨'에도 강세가 들어가지만 '발'에도 강세가 들어가야 한다"고 특훈을 해줬어요."

가장 힘들었던 연기는 따로 있었다. 주영이 세진을 돌로 내리치는 장면이었다. 영화적인 장면으로 여기고 연기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가치관과는 부딪히는 행동이기에 수행이 어려웠다고 했다.

"내가 나를 존중할 수 없게 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았어요. 그래서 그 장면이 연기라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서는 저를 무너뜨려야 했는데 쉽지 않았죠. 전 그게 무너지면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신을 찍기 위해서는 무너져야 했고, 무너뜨리니 자유로워지더라고요. 그 연기가 가장 어렵긴 했지만, 제 틀을 깬 연기였다는 점에서 놀라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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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를 통해서 세상과 타인과 나를 배워요"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하니는 배우 안희연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약 3만 명의 관객이 안희연의 도전을 지켜봤고, 합격점을 매겼다. 연기력에 대한 평가는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 신인 배우가 보여준 '노력'에 대해서 만큼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연기하는 하니, 배우 안희연의 모습을 앞으로도 볼 수 있을까.

"아마도요? 사실 연기를 해야겠다고 말하는 게 조심스러워요. 예전에는 미래지향적이고 목표지향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제 자신에게 좀 미안해요. 지금까지는 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선택했는데 앞으론 제가 뭐에 두근거릴지 몰라서.... 연기에 계속 두근거릴 것 같긴 한데..."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희열을 느꼈다면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음... 저는 연기를 통해서 무언가를 배워요. 세상을, 관계를, 타인을... 가장 크게는 저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가는 것 같아요. 기존 안희연이 가지고 있던 시각을 넘어 캐릭터의 시각이 플러스알파가 되고 그로 인해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장되는 느낌, 그게 재밌어요. 그 재미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EXID의 하니로 사랑받았던 아이돌 스타는 스크린에 데뷔하면서 본명 '안희연'으로 관객 앞에 섰다. 하니와 안희연 사이에서 진로를 정했냐는 질문에 안희연은 "그걸 지금 정해야 할까요?"라며 아직은 공란으로 두고 싶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관객들이 배우 안희연을 어떻게 바라봤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하니는 이렇게 답했다.

"이 작품을 통해 '누가, 어떻게 느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선택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포커싱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에 맞췄기에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의 말처럼 관객들이 이 영화 속 저를 보고 기분 좋은 배신감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아, 저런 색도 있는 친구였어'하는 그 정도의 배신감이요."

하니를 아는 것만큼 안희연을 몰라서 다행이다. 안희연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앞으로 펼쳐질 테니.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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