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김태리의 빛나는 자존감 "자급자족하며 혼자 컸기에…"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2.22 17:13 수정 2021.03.03 15:26 조회 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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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김태리에겐 여타 배우들과는 다른 비범한 에너지가 있다. 개구쟁이 소년 같은 쾌활함과 대장부 같은 호탕함, 조선시대 귀족 아가씨의 기품이 묘하게 섞인듯한 복합적인 기운이 느껴진달까.

무드로 얼핏 추측해볼 수밖에 없는 에너지보다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애티튜드(자세)일 것이다. 공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카메라가 꺼진 자리에서 좀 더 매력적이다. 스스럼없이 친근하고, 거칠 것 없이 명랑하다.

'승리호' 인터뷰를 위해 줌(Zoom) 카메라 앞에 앉은 김태리는 개구쟁이 소녀처럼 기자들의 얼굴부터 확인했다. 어느 누구도 카메라를 켜지 않아 이름 적힌 흑백 화면만 보이자 투정을 부렸다. "아이, 기자님들 카메라 켜주세요!!"라고 외쳤다.

영화 '아가씨', '리틀 포레스트', '1984'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이은 다섯 번째 여정인 '승리호'는 김태리에게 또 다른 모험이었다. 데뷔작부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까지 어떤 식으로든 도전했지만 불확실성 면에서 '승리호'는 더 큰 모험처럼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김태리는 "'승리호'는 송중기 선배가 주인공"이라고 하면서도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분량의 힘을 뚫고 나오는 존재감은 누구보다 빛났다.

무엇보다 김태리가 연기한 '승리호'의 리더 장 선장은 생물학적 성이 여성이었을 뿐 성(性)을 탈피하고 오롯이 캐릭터성으로 우두머리의 카리스마를 발산해냈다. 김태리가 있어 더욱 단단하게 완성될 수 있었던 '승리호' 그리고 '장 선장'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승리호

Q. '승리호'가 해외 190개국에 공개됐다. 영화를 미리 봤을텐데 몇 번 봤으며, 어떤 플랫폼을 통해 관람했나? 또한 공개 첫날부터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은 원동력은 뭘까?

A. 개봉 전 넷플릭스 회사 내 작은 시사실에서 처음 봤다. 영화가 공개된 후에는 인터넷을 연결해 할머니께 보여드렸다. '승리호'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 건 본 적 없는 그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관객들은 본 것 같은 것을 싫어하니...'아 한국에서 우주 영화가 나온다면 이런 모습이구나'라고 나는 느꼈다. 외국 걸 답습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정서가 담겨있고, 가족애를 넘어서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좋았다. 아, 그리고 우주 영화인데 한국어로 연기하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며 '아, 영어로 된 것만 봤지' 싶더라. 외국 관객들에겐 충격이지 않았을까 싶다.

Q. '장 선장'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형 배드애스(Badass·거칠지만 자유분방하며 자신만의 소신을 가진 인물이나 캐릭터를 가리키는 영미권의 속어) 캐릭터라 특히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은 것 같다. 캐릭터 이미지 구축을 위해 노력한 부분이나 이 이미지 만큼은 꼭 가져가고 싶다고 고집한 부분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A. 장 선장은 레이어, 그러니까 층이 참 많은 사람이다. 굉장히 복잡한 사람인 거지. 그래서 이런 층들을 어떻게 해야 다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내 캐릭터는 이런 것은 못 해', '이렇게 말하지 않을 거야' 하면서 가둬 두기보단, 훨씬 더 열린 마인드로 임했다.

승리호

Q. 그동안 원톱 주연보다는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아가씨', '1987', '승리호' 등)에 많이 출연을 했다. 특별히 멀티 캐스팅 영화들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는가?

A. '승리호'가 왜 끌렸냐는 질문에 팀플레이라서 끌렸다고 답을 했었다. 장 선장 혼자만의 활약이 아니라 꽃님이까지 5인의 팀플이라는 게 좋았다.

Q. '승리호' 공개 후 국내/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 기억에 남았던 평가나 후기가 있었다면?

A. 넷플릭스로 공개된다고 했다고 했을 때 이 정도의 반응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직접적으로 런던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잘 봤어! 캡틴 장!" 하는데... 신기하더라. 또 영어로 영화 리뷰를 받아보는 것도. 해외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았고, 할리우드를 따라가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맛을 냈다는 것도 뿌듯하다. 감격스럽다.

Q. 장 선장은 "비켜라, 이 무능한 것들아"라고 하면서 한껏 무게를 잡고 등장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무능한 것들을 한데 모으는 것 외에는 2시간 동안 딱히 인상적인 활약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캐릭터성과 이야기 사이에서 고민되는 지점이 없었는지?

A. 납득이 가는 비판이다. 나는 '승리호'가 단순하고 힘 있게 달려 나가는 데서 큰 매력을 느꼈다. 장 선장도 표면적으로 봤을 때 겉은 단순하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서 우주선 안에서 호령을 하다 보니 장 선장이 생각보다 복잡한 사람이고 레이어가 많다고 느꼈다. 이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많이 헤맸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아 장르 영화라는 게 이런 부분이 있구나' 하고 느꼈다. 분위기를 맞춰야 하는 게 있달까. 내 인물에 깊게 들어가서 '이런 걸 못해' 가둬두기보다는 훨씬 열린 마인드로 임해야 했다.

김태리

장 선장의 조금 더 깊은 모습, 층위를 더 아기자기하고 흥미진진하게 만화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 못했다. 그 점에서 배우적인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분석하고 느꼈던 장 선장이 영화 안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 만족한다. 장 선장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전사들이 되게 많다. 우주에 오기 이전의 삶에 대한 전사가 구체적으로 있었는데 몇 마디 말로 나오니 아쉽긴 했다. 하지만 감독님은 선택과 집중을 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 또한 각자의 적정한 선을 지키지 않았나 싶다.

Q. 조성희 감독은 배우이자 인간 김태리가 실제로 만났을 때 '큰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의 어떤 부분이 조성희 감독에게 그런 인상을 줬다고 생각하나?

A. 전혀 모르겠다.(웃음) 감독님에게 여쭤보고 싶다. 아마도 '큰 사람'의 면모를 장 선장에게서 보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얼굴은 그렇게 안 생겼는데 되게 센 사람 같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캐스팅 하신 것 같다.

Q. 장 선장 모습에서 김태리에게 보지 못했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볼드한 선글라스, 그런지 룩 등 마치 홍콩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모습이더라. 파격적인 룩에 개인의 아이디어도 들어간 건가?

A. 거의 다 감독님 머릿속에서 나온 거다. 캐스팅 전부터 감독님이 그려 놓은 그림이 있었다. 큰 선글라스, 총, 프린트 셔츠, 테이저 건 등... 다만 "헤어 스타일은 태리 씨 편한 대로 하세요"라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까지 했던 머리 스타일 가운데 이게 가장 장 선장에게 잘 어울리겠다 싶은 걸로, 좀 더티하고 관리 안 하는 느낌으로 선택했다. 우주선이라 물이 귀하니까.

승리호

Q. '승리호'의 촬영은 크게 우주선 내부와 외부로 나뉜다. 그러다 보니 승리호의 움직임에 맞춰 연기를 보여주는 게 상당히 중요했을 것 같다. 두 공간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뒷부분에서 장 선장이 비상 마이크로 모두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세트 안에서 촬영하다 보니 소리와 진동이 컸다. 연기하면서 세트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다. 몸으로만 하려면 어색했을 텐데 실제 공간이 있어 몰입하기 수월했던 것 같다.

Q. 장 선장의 캐릭터성이 좋게 말하면 입체적이고 에둘러 말하면 종잡을 수 없다는 관객들의 평가가 있었는데 연기를 한 본인이 직접 장 선장에 대해서 정의 내린다면?

A. 승리호가 권총이라면 장 선장은 방아쇠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코앞에 닥친 상황을 두고 다들 '어떡하지' 그러고 있을 때 장 선장은 그 너머를 볼 줄 아는 사람인 거지. 여러 상황을 거치며 변모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집념, 하나의 정의를 가지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즉, 대의가 있는 사람. 그래서 선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 인물이 왜 선장인가, 왜 자폭 장치를 입 안에 넣고 다니는가, 그런 부분에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연기했다.

김태리

Q. 과거 인터뷰에서 캐릭터를 구상할 때, 자신의 보물 상자 안에서 인물을 찾아온다는 말을 했다. '1987'과 '미스터선샤인'의 캐릭터를 만들 땐 한계에 부딪혔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난다. 장 선장의 모습 역시 본인의 보물 상자에서 발견한 걸까? 아니었다면 이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갔나?

A. 일단 그 인물의 옷을 입고 현장에서 들어가서 많이 찾았던 것 같다. SF다 보니 시나리오만으로는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곳에 앉고, 물건을 만지며 적응을 했다. 내 안에 클리셰적인 인물상이 있기 마련인데 선장을 맡은,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고... 그런 단편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Q. 그동안에도 캐릭터성을 가진 배역을 연기했지만 이 정도까지 뚜렷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정말이지, 시치미를 뚝 떼고 소화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결의 색칠에 있어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알고 싶다. 아울러 이번 연기가 최동훈 감독의 신작 '외계인' 작업을 하는데 도움이 됐는지도 궁금하다.

A. 마냥 신나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캐릭터의 입체화가 중요했으니까. 장 선장의 성격과 제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선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현장에서 선배는 물론 스태프들도 나를 장 선장이라 부르면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줬다. '외계인'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말을 할 경우 고소를 당하게 된다.(웃음) 너무 기대되는 작품이고 열심히 하고 있다. 기대해 달라.

김태리

Q. 거장의 작품이라던가, 메시지가 큰 영화에 출연했다던가 다양한 경험이 있지만 규모의 영화에 출연한 것도 본인의 커리어에서 큰 경험이 됐을 것 같다. '승리호'가 본인에게 어떤 영화로 남을 것 같은가?

A. (송)중기 오빠가 현장에서 하는 걸 보면서 놀랐다. '승리호'를 하면서 나도 주변으로 눈이 트인 것 같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젠 주변을 더 보게 됐달까. 우리는 또 최초였지 않나. 모든 스태프들이 도전인 작업을 했다. 함께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Q. 김태리가 연기하면 캐릭터에 김태리만의 특별한 개성과 생명력이 입혀지는 것 같다. 그러나 대중들의 높은 기대 때문에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면서 도전 의식과 부담감이 동시에 생길 것 같기도 하다. 어떤 마음으로 길을 찾아가고 어디에서 힘을 얻고 있나?

A. 계산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계산은 회사(소속사)에서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하고 있다. 겸손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조바심은 연기적인 에너지를 내는 데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그냥 위축만 될 뿐. 그냥 빨리 벗어나는 게 최선의 방법이고,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거라 생각한다.

김태리

Q. 지난해 12월 씨네21에서 실시한 '2021년 가장 주목해야 할 여성 배우' 1위에 뽑힌 바 있다. 설문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배우들의 세대 교체가 특히 여성 배우들 사이에서 두드러질 것이라 예측했고 본인의 순위도 그러한 예측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런 기대를 업계에서 실제로도 느끼고 있는지, 또 본인의 주변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A. 두드러지는 변화는 크게 없는 것 같다. '승리호' 현장에서 느낀 것과 결부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좀 더 편안해지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식으로 점점 '관계맺음'을 하며 가고 있구나라고 느끼는 정도다.

Q. 영화 '아가씨' 때부터 느낀건데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당당함이 있다. 장 선장은 김태리의 이런 면 때문에 더욱 빛난 것 같기도 하다. 자신만의 당당함, 자존감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A. 음... 당당함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난 어릴 때부터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왔다. 그것에 대한 굉장히 큰 자부심도 있다. 아마도 '나는 혼자 컸다!' 거기서 오는 당당함이지 않을까요?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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