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2021년도 코로나19 시대…'극장용 영화'의 위기 앞에서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1.14 17:06 수정 2021.01.15 13:35 조회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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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코로나19는 사라지고 영화는 돌아올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최근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가 만든 영화 '기생충'이 2020년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91년 역사상 최초로 외국어 영화 작품상을 수상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2020년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6천만 명 수준으로 20여 년 전 수준으로 급감했다. 역대 최다를 기록했던 2019년의 30% 수준이다. 극장 총 매출액은 전년 대비 무려 1조 4,037억 원 감소한 5,103억 원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에 가까운 재앙은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1년 사이 달라진 국내외 영화계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그의 말은 미래에 대한 확신에 찬 전망이라기보다는 영화인으로서의 장밋빛 바람에 가까운 말일 것이다.

2021년 한국 영화계는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발길을 돌린 관객은 다시 극장을 찾을 것인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안갯 속 상황이지만 새해를 맞은 영화계는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줄줄이 대기 중인 대작…"천만 감독이 온다"

2021년 영화계가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천만 감독들의 귀환이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을 만든 류승완 감독이 '모가디슈'로, '해운대', '국제시장'으로 연속 천만 흥행에 성공한 윤제균 감독이 '영웅'으로', '왕의 남자'로 천만 신화를 거두고 '동주'로 제2의 전성기를 연 이준익 감독이 '자산어보'로, '명량'으로 국내 최다 관객 기록(1,761만 명)을 가지고 있는 김한민 감독이 속편인 '한산:용의 출현'으로, '태극기 휘날리며'로 본격 천만 시대를 연 강제규 감독이 '보스턴 1947'의 개봉을 준비 중이다.

또한 '도둑들', '암살'로 쌍천만 신화를 쓴 최동훈 감독은 '외계인'의 막바지 촬영에 한창이다. '건축학개론'으로 멜로 붐을 일으킨 이용주 감독은 '서복'으로 지난해 한 차례 미뤘던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매 작품 500만 이상의 흥행에 성공하며 연출력과 오락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는 한재림 감독도 '비상선언'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자산어보

영화와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베일에 싸여 있지만, '믿고 보는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 만으로도 기대감은 치솟는다. 더욱이 '자산어보'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작비 100~200억 사이를 오가는 대작이다. 캐스팅도 여러 편의 영화 제작이 가능한 배우들이 한 영화에 어우러진 멀티 캐스팅 형태다. 극장 가는 게 무서운 걸 차치하고, 보고 싶은 영화조차 없었던 2020년을 돌이켜 보면 올해는 작심하고 극장 나들이를 하고 싶게끔 하는 라인업이다.

이밖에도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을 만든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 최근 할리우드 진출을 선언한 임상수 감독의 '헤븐:행복의 나라로', '프리즌'을 만들었던 나현 감독의 신작 '야차' 등도 기대작으로 꼽힌다.

cgv 극장 코로나 오문희

◆ 코로나19 변수는 여전, 개봉 강행할까 미룰까

지난해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습격에 한국 영화는 잔뜩 움츠러들었다. 개봉을 준비 중인 영화들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개봉을 미루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개봉했고, 몇몇 영화들은 코로나19 퇴각의 속절없는 기다림에 지쳐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의 손을 잡았다. 여름과 겨울 시장을 겨냥해 개봉을 준비하던 대작들은 아예 해를 바꿔 영화를 내놓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유행이 해가 바뀌어도 종식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에나 올해나 영화계 최대 변수이자 암초는 코로나19다. '내년에는 괜찮아지겠지' 했던 막연한 기대는 여전히 회색빛인 상태다. 지난해 개봉을 미뤘던 영화들은 또다시 개봉 시기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OO은 타이밍'이라는 말은 영화계에도 통용된다. 개봉 시기는 언제나 최대 난제다. 섣불리 개봉을 결정했다가 손익분기점은커녕 막심한 손해만 안고 퇴장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 시기에는 어떤 영화를 내놓아도 손해를 보는 건 100% 팩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극장 내 좌석 띄어앉기로 인해 전체 좌석의 50% 밖에 쓸 수 없다. 코로나 시대 이전과 비교해 출발선 자체가 저만치 뒤쳐져 있다.

반도

그 어느 때보다 개봉 시기를 잡기 어려운 것은 코로나19 장기화가 극장 성수기라는 시즌의 개념마저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방학과 휴가 시즌에는 최소 영화 1편 이상을 보는 것이 관객들의 고정된 패턴이었기에 매년 천만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 이후 영화 관람은 '전 국민의 취미 활동'이 아닌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위험한 욕심'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각각 381만 명, 435만 명을 모았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최소 100만 명 이상씩은 더 모을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기에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은 것은 기적이다. 겨울 시장에도 이런 기대를 가지고 '서복', '영웅' 등이 개봉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 3차 대유행으로 결국 개봉을 2021년으로 미뤘다.

이같은 분위기는 해가 바뀌어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021년 1월 평일로 접어들면서 일일 관객 수는 1만 명대로 떨어졌고, 주말 관객 역시 5만 명 턱걸이를 한 상황이다. 다가오는 설 연휴 극장가는 다를까. 역시 낙관적이지 못하다.

넷플릭스

◆ 넷플릭스는 구원자인가 족쇄인가

코로나19 초기 단계였던 지난해 4월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와 손을 잡으며 영화계의 화제를 모았다. 당시 넷플릭스와의 계약 과정을 두고 제작사와 해외 세일즈사가 이견을 보이는 등 홍역을 치렀지만 유통 경로를 바꾼 선택은 최고의 한 수가 됐다.

제작을 마친 영화를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첫 번째 작품이었던 '사냥의 시간'은 완성도 대비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안방극장에 안착했다. 제작비 115억 원이 투입된 '사냥의 시간'은 극장에서 300만 명을 모아야 손익분기점을 채울 수 있었다.

넷플릭스와 '사냥의 시간'은 120억 원 규모의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냉정하게 말해 코로나19가 아니었다고 해도 '사냥의 시간'은 손익분기점을 넘기 힘들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실망한 관객들은 우스갯소리로 "넷플릭스가 당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넷플릭스는 바보가 아니다. 전 세계 국가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넷플릭스는 각국의 로컬 콘텐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드라마 부문에서 자리를 잡았다면 영화는 이제 막 투자를 시작한 단계다. '사냥의 시간' 계약은 물꼬의 의미고, 국내 영화계에 보내는 시그널 같은 역할을 했다.

윤종빈, 연상호, 한준희 등 충무로의 역량있는 감독들과 함께 오리지널 드라마도 제작 중이다. 오리지널 영화 제작도 준비 중이다. 영화계는 더 이상 극장 플랫폼 기반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승리호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넷플릭스는 한국 영화계의 구원자로 떠올랐다. 이제는 투자배급사들이 완성된 영화를 들고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를 먼저 찾는 형국이 됐다. 불과 1년 전까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배척했던 극장들도 상영할 영화가 없자 넷플릭스 영화를 끌어안기 시작했다.

'사냥의 시간'을 시작으로 NEW의 '콜', 메리크리스마스의 '승리호',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차인표'가 넷플릭스와 손잡았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의 '원더랜드'와 NEW의 '낙원의 밤'도 논의 중이다.

이 중 '승리호'는 무려 25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이 정도 규모의 대작이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와 손잡았다는 건 영화계에서도 큰 뉴스였다. 넷플릭스는 단독 공개를 조건으로 제작비에 약 30%의 수익을 더한 310억 원을 제작사에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비를 회수하면서 전 세계 공개라는 실리를 챙겼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극장 흥행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 등을 포기하는 대신 코로나19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하고 IP(지적재산) 확장이라는 영화 기획 단계에서의 야심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OTT 업계도 패권 다툼을 예고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독주 속에 왓챠, 웨이브, 티빙, 카카오 TV, 쿠팡플레이 등이 뒤따르고 있고 여기에 월트디즈니의 OTT 플랫폼 디즈니플러스가 가세하게 되면 콘텐츠 전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2021년 OTT 플랫폼으로 향하는 영화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계약에서 유리한 조건을 점하기 위한 전략적 구상도 세분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선 영화들도 모두 좋은 조건으로 계약한 건 아니다. 더욱이 화끈하게 자본을 풀었던 초기와 달리 OTT 업계의 주머니도 인색해지고 있다. 이는 제작 파트도 마찬가지다. 

올해 중 극장이 영화를 관람하는 최적의 공간으로서의 지위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 사이 빚어질 크고 작은 변화들은 영화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섣불리 답을 내릴 수 없다. 코로나19 백신에 희망을 걸며 시간을 기다리기엔 콘텐츠 업계의 변화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극장용 영화'의 개념이 무색해진 지금,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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