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오달수의 변(辨)

김지혜 기자 작성 2020.12.03 08:46 수정 2020.12.03 09:50 조회 2,599
기사 인쇄하기
오달수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2년 9개월. 오달수가 배우로 관객 앞에 다시 서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언론 앞에 선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30년 간 배우로 살며 대중의 관심과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지만 33개월의 공백은 베테랑 배우도 긴장하게 만든 암흑의 시간이었다. 하물며 자신에 관련된 모든 소식을 전해온 기자들과의 만남은 더욱 긴장될 수밖에 없을 터.

"제가 그동안 인터뷰를 한 두 번 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오늘 기자님들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명함과 녹음기를 주고받는 무드가 참으로 새롭게 다가오네요. 영화에 대한 평가야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 크게 개의치 않는데 지금 이런 분위기가 낯설고 감회가 새롭네요. 사실 이 자리에 나오기가 무서웠는데 한편으론 너무 좋네요."

오달수가 3년 만에 들고 온 영화는 '이웃사촌'(감독 이환경)이다. '이웃사촌'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오게 된 후 그를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3년 전에 촬영을 마쳤지만 오달수의 미투 논란과 함께 개봉길이 막혔던 작품이다.

이웃사촌

이날 인터뷰 분위기는 사뭇 남달랐다. 배우와 기자들은 한 공간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눴지만 온도차가 존재하는 듯했다. 오달수의 작품과 연기에 관한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하는 인터뷰어도 있었고, 반드시 그때 그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입장과 목소리를 듣고야 말겠다는 날 선 인터뷰어도 존재했다

"(약 3년 만의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어) 만감이 교차하네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제게 무한 책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개봉이 늦어진 것에 대해서요. 제작사나 감독님이나 스태프들께 죄송하죠. 여러 마음이 섞여 있어요. 아직까지 개봉이 미확정되고 있었다면 정말 괴로웠을 거예요."

2018년 1월 미투 논란이 터졌다. 20년 전 오달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폭로가 있었고, 오달수는 두 차례의 입장문 발표를 통해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첫 번째 입장문에서는 사실무근이며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두 번째 입장문에서는 "연애 감정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다소 모호한 말과 함께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사법적 판단은 어땠을까. 이 사건은 공소시효가 만료돼 지난해 내사 종결 처리됐다. 논란의 진위 여부를 제대로 따져보지 못한 채 마무리된 셈이다.

오달수

2018년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오달수는 여론이 악화되자 활동을 중단했다. 그의 근황은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간간히 소개되기도 했다. 예전의 활력을 찾아볼 수 없는 사진들과 함께 가족들과 지내고 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그는 어떻게 공백의 시간을 채워 나갔을까.

"처음에 두 달 정도는 서울에 있었어요. 워낙에 큰 데미지를 입었잖아요. 덤프트럭에 부딪히고 뒤에 오는 차에 또 부딪힌 느낌이랄까요. 감당해내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병원에도 들락날락했고요. 이후에 부산에 계신 어머니 댁으로 갔어요. 그런데 그곳 위치가 알려져서 아파트에 모르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서있더라고요. 마음이 불편해서 거제도 형님 댁으로 갔어요. 형님 집 2층을 쓰면서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어요. 가능하면 슬기로운 귀향살이를 하려고 했어요. 내려가니까 슬슬 덥더군요. 아침에 해 뜨면 밭에 물을 주는데 한 시간 반 정도 걸려요. 다 주고 8시쯤 되면 노동주 한잔하고... 그렇게 농사를 지으면서 지냈네요. 해가 지고 나면 할 게 없으니까 방에 돌아와 TV나 영화를 봤죠. 그러다 제가 출연했던 영화들도 종종 보게 됐고요. 문득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긴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덤프트럭'이라는 비유는 사람에 따라 거북하게 들릴 수 있다. 개인에게는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에겐 불쾌함을 안길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오달수는 "덤프트럭에 부딪힌 느낌이었다"는 표현을 인터뷰 매 타임마다 썼다. 그로서는 당시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달수

3년의 공백, 속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잠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오달수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거제도 살이 동안에는 행여나 다른 생각을 품을까 가족들이 오달수를 일일이 챙겼다고 했다.

"그야말로 무한 애정을 쏟으셨죠. 부담스러울 정도로 옆에서 많이 챙겨주셨어요. 부산이나 거제도에서는 제가 골치 덩어리 동생이고, 모난 자식이었을 텐데...(가족과의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서) 유배 시절이 더 감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가족이니까 이렇게 참아주고 매일매일 챙겨주고 건강 신경 써줬던 거겠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영화계 지인들이 내려가기도 했다. 오달수는 "너무 감사했어요. 영화를 하든 연기를 하든 제가 빨리 가주는 게 그분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것 같더라고요. 말은 안 해도 그런 마음이 느껴졌어요"라고 덧붙였다.

영화 '이웃사촌'에서 오달수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존경받고 있는 정치인을 연기했다. 제작진은 특정 인물이 아닌 여러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극화했다고 거리두기를 했지만 누가 봐도 모델이 분명한 캐릭터다.

이 영화는 오달수의 미투 논란이 터지기 전 캐스팅됐고 촬영까지 마쳤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영화가 배달된 시점은 그 후다. 배우의 외부적 이슈가 작품과 작품 속 캐릭터의 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일정 부분 작용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배우는 극 안에서 공감과 몰입을 이끄는 역할을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두 가지 모두 쉽지 않다.

오달수

연기의 문제가 아니다. 오달수는 대학로에서 갈고닦은 연기의 내공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배우의 연기를 바라보는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이 존재하는 것에 가깝다.

시계 추를 3년 전으로 돌려서 그때의 일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미투 의혹에 대한 두 번의 입장문 발표가 있었다. 내용보다는 시기가 더 큰 화를 키운 경우였다. 늦어도 너무 늦었던 입장 발표였다.

"그때 충청도 어디선가 '이웃사촌' 촬영을 하고 있었어요. 영화 말미에 나오는 마포대교 장면을 옛날 차들 빌려다가 찍고 있었어요. 워낙 큰 신이라 하루에 보조 출연자만 200~300명 됐어요. 이어서 연설 장면을 찍는 일정이라 현장 자체가 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 사건이 터졌고 혼자 촬영장을 빠져나와 정리를 할 수가 없었어요. 혹자들은 제가 입장 발표가 없으니 어디 가서 대책 회를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도 했는데 아녜요. 촬영으로 정신이 없는 시간이었어요. 부산에 있는 누나가 전화 와서 '너 뭐하니?', '지금 세상이 너한테 뭐라고 이야기하는 줄 아느냐?'고 다그치더라고요. 그때 전 '시끄럽다, 나 지금 촬영하니까 바쁘니까 끊으라'고 했어요. '서울 가서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고요."

3년이 흐른 지금도 그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였다. 이 가운데 130분이라는 시간 동안 영화로 관객을 잘 설득할 수 있으리라고 보느냐는 날 선 질문이 어디에선가 나왔다.

"옛날 같으면 관객과의 약속을 짧으면 5분으로 보는데 지금은 5분 안에 그런 약속이 이뤄진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요. 그런데 이 작품 말고도 연기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관객과의 약속 시간이 점차 짧아지기를 바랍니다. 큰 욕심은 없어요. 이 말이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때인 것 같아요."

오달수

오달수의 연기 공백기 동안 인터넷 세상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연예뉴스에 댓글이 사라진 일이다. 일부의 댓글이 곧 전체의 여론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대중의 반응을 체크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척도이기도 했다. 그간 자신을 향한 대중의 반응을 어떻게 체크했는지도 궁금한 일이었다.

"체크해봤자 좋은 이야기가 실리는 것 같지도 않고. 글쎄요... 그냥 가족들이나 친구, 회사 사람들에게 듣는 정도였죠. 제가 SNS를 안 하니까, 아니 못하니까요. 잘은 못하는데 궁금은 하니까 건네 들었습니다"

대중의 반응이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건 본인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연기를 계속해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차분히 말했다.

"세계적인 대배우들도 보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잖아요. 물론 지금 하시는 말씀 무슨 의미인지 압니다. 제가 대중에게 주었던 데미지랄까 그런 게 있으니 이제 예전 같진 않겠죠. 그런데 저는 사람으로 대접받기 시작해서 좋습니다. 그리고 연기라는 것에 대해 절실함을 느꼈어요.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 어디인가. 연기가 아니면 나를 증명할 수 없어요.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오달수의 미투 논란을 바라보는 대중과 언론의 온도차는 지금도 존재하지만 영화계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석에서 만난 영화 관계자들에게서 배우 오달수, 인간 오달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다수의 영화인들은 내가 나서서 복귀를 돕지 못하지만 그가 자연스레 영화 현장에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오달수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한 것은 영화라는 것이 대중 예술이고,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또한 캐스팅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이 오달수의 이번 영화를 예의 주시하는 것도 그 이유다. '이웃사촌'의 성적과 평가가 컴백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기에.

오달수에게 물었다. 영화인들이 자신을 찾지 않는 상황, 대중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간까지도 감내하고 기다릴 수 있을지를. 그는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무게감은 적지 않았다.

"영향이 없지는 않겠죠. 그러나 영화는 감독이 그 작품에 맞는 배우를 고르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고, 감독도 배우가 가장 적확한 역할을 맡았다고 할 때 찍을 맛이 나는 거지요. 아무 거나 해라? 어불성설이죠. 기다리겠습니다. 이제까지 잘 기다렸는데요 뭘. '오달수가 무슨 사건이 있고 나더니 사람이 참 많이 변했다' 이런 소리는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천만 요정'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붙여준 관객들에게도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그동안 과분할 만큼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차마 요즘같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시대에 '꼭 극장에 찾아와 주세요'라는 말은 도저히 못 하겠지만 사랑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bada@sbs.co.kr

광고영역
광고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