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크리스탈 깨고 정수정으로…영화배우로 2막

김지혜 기자 작성 2020.11.27 18:56 수정 2020.11.29 17:38 조회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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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정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이름처럼 투명하고 날카로울 줄 알았다. 겉과 속이 같아 보인다는 점에서 전자는 맞았고, 예상외의 털털함과 수더분함에 후자는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크리스탈 그리고 정수정. 한 사람이 가진 두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다르다. 전자는 가수, 후자는 배우다. 두 직업 모두 현재 진행형이지만 데뷔 10년 차에 접어든 이 엔터테이너는 이제 막 영화배우로도 첫 발을 뗐다. 걸그룹 (f(x))의 멤버 크리스탈이 아닌 정수정의 이름으로.

스크린 데뷔작 '애비규환'(감독 최하나)은 27일까지 전국 2만 2천 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데뷔작 스코어로는 다소 아쉬운 수치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숫자 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의미 있는 발돋움이었다.

애비규환

◆ "임산부 역할 제안에 '헉'…시나리오 읽고는 깔깔깔"

"어떤 시나리오나 극본을 보면 본능적으로 끌릴 때가 있어요. 주변에서 너무 좋은 작품이라고 추천을 해줘도 저는 제가 끌리지 않으면 선택을 못하겠더라고요. 제 자신을 믿는 거죠. 또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제 주장을 많이 투영하는 스타일이고요."

영화 '애비규환'에서 정수정이 맡은 토일은 연하 남친과의 관계에서 덜컥 임신을 하게 된 대학생이다.

"시나리오를 읽기 전 임산부 역할이라는 말만 듣고 '헉' 했어요. 작품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제가 원래 시나리오를 한 번에 쭉 다 읽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애비규환'은 한 번에 읽어 내려갔고 너무 재밌어서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바로 "저 할게요!"라고 말했어요."

스크린 데뷔작이지만 규모는 작은 독립영화다. 영화를 만든 제작사 아토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정수정은 "평소에도 독립영화 보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아토'(ATO)가 만든 '소공녀', '우리들'도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이었고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안 할 이유가 없었죠."라고 웃어 보였다.

정수정

정수정은 임산부 연기를 위해 만삭 분장은 물론 체중도 증량했다. 노메이크업에 늘어난 면 티셔츠, 헝클어진 머리칼로 토일의 외형에 입체감을 더했다. 외모보다 도드라진 건 자연스러운 연기였다. 앨범 콘셉트에 따라 무대 위에서 팔색조로 변신했던 f(X)와는 또 다른 변신이었다.

화려함을 걷어낸 정수정의 얼굴에선 마음먹은 건 해내고 말겠다는 토일의 당참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극과 캐릭터에 녹아든 정수정의 저력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이라고 해서 부담을 갖지는 않았다고 했다. 너무 많은 의미 부여가 오히려 현장과 연기를 긴장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기에.

"다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열심히 했어요. 시나리오가 좋았던 만큼이나 함께 호흡을 맞춘 선배 배우들이 너무 좋았어요. 오픈 마인드로 저를 도와주셨어요. 신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뭔가 같이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것들이 스크린에 잘 표현이 됐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최하나 감독님과 소통을 좀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음식이든 음악이든 드라마든 서로 공유하면서 많이 친해졌어요. 정말 친구가 됐달까요. 그런 부분이 작업할 때도 큰 도움이 됐어요."

'애비규환'이 본인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을 것 같냐고 묻자 정수정은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요. 선배들과도 같이 또 한 번 작품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할 정도로 친해졌거든요. 좋은 스타트를 끊은 거 같아요. 앞으로도 현장이 이런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라고 말했다.

정수정

◆ "언제 이런 경험을…연기가 재밌어요"

할 말은 하고, 하고 싶은 걸 해내고야 마는 토일의 성격은 일견 정수정과도 닮아 보인다.

"60~70%는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라면 임신을 했는데 5개월 간 가족에게 숨기고 난 후 "나 아기 낳을 거야"라고 뒤늦게 통보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제 주변 사람들도 제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도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물론 토일도 나중엔 그걸 깨닫지만 초반엔 좀 다르죠. 비슷한 부분은 당차고 자기 자신을 믿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영화 속 토일이 표현해내는 가치관을 정수정에게도 하나씩 물어보았다. 연애 스타일은 어떨까.

"저는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요. 제가 맨날 달라져서 하나로 정리하기가 조금 그렇네요. 어떨 땐 토일처럼 솔직 당당하기도 하고, 어떨 땐 되게 소심하기도 하고 그래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 역시 궁금했다. 10대 중반부터 가수 활동을 했기에 화려한 연예인 생활 이면의 남모를 상처도 적지 않았을 터.

정수정

"당연히 있었죠. 근데 그땐 그걸 모르고 지나갔던 것 같아요. 지나고 나서 '내가 좀 많이 힘들었었구나'라고 뒤늦게 깨달았어요. 일적으로는 아닌 것 같고 복합적인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굳이 생각해보자면... 막상 생각이 안 나네요. 내가 너무 바빴나. 전 안 좋은 건 빨리 까먹는 스타일이라..."

정수정은 가수 데뷔와 동시에 연기 활동을 병행해왔다. 연기 구력도 10년가량 된다는 말이다. 최근 들어 가수 활동보다는 연기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느낌이다. 무게의 중심이 연기 쪽에 기울고 있다는 건 스스로가 배우 활동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의미기도 할 것이다. 정수정이 말하는 연기의 즐거움이 궁금했다.

"음... 여러 가지가 있는 거 같아요. 무엇보다 내가 경험하거나 접하지 못했던 걸 해보는 것? 나와 다른 인생을 사는 거죠. 무대는 메이크업을 진하게 하고, 옷을 화려하게 입고 올라가잖아요. 한 겹을 입고 나를 보여주는 건데 연기는 다 드러내고 날 것을 보여줘야 하는 거라 머리 끝부터 말끝까지 어색함이 있으면 안 되고 각 잡혀 있어서도 안 되는 측면이 있죠. 이 두 가지가 반대되는 거라 더 재밌는 것 같아요."

크리스탈과 정수정을 오가며 각 분야에서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 같았다. 정수정은 "솔직히 대중들이 뭘 원하는지는 난 잘 모르겠어요. 최하나 감독님은 시트콤 '하이킥' 속 제 모습을 좋아하셨고, 제 주변 어떤 지인은 '상속자들'의 제 모습을 좋아했고, 팬들은 이번 드라마 속 '군인' 역할을 좋아하시더라고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 드릴 테니 골라서 좋아해 주시면 좋겠어요.(웃음) 저한테 새로운 건 로맨틱 코미디일 것 같아요. 그런 장르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는 로코가 흔할 수도 있지만 제게는 새로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수정

◆ "크리스탈도 나, 정수정도 나"

"수정이라서 크리스탈이고, 크리스탈이라서 수정이에요. 제 이름은 엄마가 지었어요."

이름의 역사를 묻는 질문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영어 이름과 한국 이름의 뜻이 같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이미지가 연상된다.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며 각기 다른 이름을 쓰는 것이 정수정에게는 유독 잘 어울려 보인다.

"두 개의 자아가 너무 다르긴 하죠. 크리스탈은 너무 화려하고, 정수정은 노멀(Normal)하니까요. 근데 저는 별로 그렇게 나누지 않아요. 얘도 나도, 얘도 나니까. 지금은 연기 활동은 더 많이 하고 있지만 저는 데뷔와 동시에 가수 활동과 연기 활동을 번갈아가면서 했어요. 그래서 병행하는 게 많이 어렵지 않았어요. 어려서부터 했기에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룹 에프엑스의 크리스탈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배우 정수정은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 이는 신인 배우의 무한한 가능성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수가 숙명에 가까웠다면 연기는 개척의 의미가 조금 더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수정

"에프엑스로 데뷔했다가 연기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시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연기를 하는 것에서 두려움보다는 하나하나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많다고 생각해서 개척해나가는 느낌도 나쁘지 않아요. 잘 다듬고 쌓아서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영화나 장르에 대해서 묻자 "가리는 게 없다"는 열의 넘치는 답이 돌아왔다. 정수정은 "최근 드라마에서는 군인 역할을 맡았고, '애비규환'은 임산부 역할이었잖아요. '나는 왜 이런 특이한 역할만 할까'라는 생각도 들면서 반대로 '나도 되게 평범한 역할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렇지만 정말 가리지 않아요. 제가 끌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이럴 때 팬들은 아마도 이렇게 답할 것이다.

"우리 수정이, 크리스탈 하고 싶은 거 다 해."

화려한 장막을 걷고 제2의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 정수정을 응원한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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