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엄정화가 만들어온 '나의 히스토리'

김지혜 기자 작성 2020.08.27 09:06 수정 2020.08.27 09:38 조회 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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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엄정화는 이상한 마력의 소유자다. 다른 배우가 했다면 다소 과하게 보일 수 있는 과장된 연기일지라도 엄정화가 하면 '사랑스러움'으로 승화된다. 특히 그 사랑스러움은 희극 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코미디 호흡은 그야말로 일품. 50대 초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 작품에서 강점을 보이는 건 그 이유일 것이다.

가수 엄정화의 히트곡 중 하나인 '페스티벌' 가사("이제는 웃는거야, 스마일 어게인")처럼 오랜만에 관객을 기분 좋게 웃기는 영화로 스크린에 컴백했다. 영화 '오케이 마담'이다.

엄정화는 '미쓰 와이프'(2015) 이후 5년 만의 스크린 컴백이라서가 아니라 '오케이 마담'이 컴백작이어서 더욱 행복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정화는 오랫동안 액션 영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엄정화

"액션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제게도 마침 이런 시나리오가 왔구나 생각했어요. 액션이라서 좋았고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정말 재밌어서 꼭 하고 싶었어요. 또 제목처럼 뭐든지 '오케이'될 것 같기도 했고요."

이번 작품에서 엄정화는 과거를 지닌 꽈배기 맛집의 주인 '미영' 역할을 맡아 상반된 매력을 선보였다. 엄정화는 "액션으로 가기까지 인물을 부담 없이 끌고 가야 했어요. 미영은 과거가 있는 사람이잖아요. 상처 안에서 억눌려 살기도 했지만 석환의 사랑을 받으며 그런 과거를 극복하고 밝은 성격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액션의 경우는 미영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전거를 한번 배우면 계속 탈 수 있는 것처럼. 미영도 위기 상황에서는 과거에 하던 액션이 100% 프로 발휘될 거라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엄정화의 말대로 '미영'은 과거와 현재와 확연히 다른 컬러를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액션 상황에서 만큼은 과거 한가닥 하던 기질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영화 분량의 70% 이상이 기내 세트에서 촬영됐고, 액션 역시 기내의 좁은 공간을 활용해 역동적으로 펼쳐졌다. 캐스팅이 확정되고 촬영 시작 전 한 달 전 액션 스쿨에서 훈련을 시작한 노력은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엄정화는 타이트한 승무원 복장을 하고도 합이 맞아떨어지는 액션을 완성해냈다.

엄정화

"합이 딱딱 맞아떨어질 때 오는 쾌감이 있더라고요. 자랑할만한 액션요? 제겐 모든 장면이 그래요.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기내 맨 뒷칸에서부터 앞칸으로 전진하면서 펼친 액션은 저도 정말 통쾌하게 봤어요."

'오케이 마담'은 오랜만에 만나는 건강한 코미디 영화다. 과장된 연기와 무리한 설정 없이도 소소한 웃음을 영화 내내 잃지 않는다. 올여름 선보인 한국 영화들이 다소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다뤘던 것에 반해 '오케이 마담'은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아 유쾌하게 웃고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엄정화의 활약이 있다.

5년 만의 스크린 컴백인 만큼 부담감도 컸을 터. 엄정화는 "빨리 찾아뵙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부끄럽지 않게 좋은 작품으로 '이런 영화 어때?'하고 '짠'하고 나타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시나리오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무엇보다 고를 수 있는 선택의 여지 자체가 없어서 힘들었죠"라고 작품 고갈로 속앓이 했던 지난 시간을 짧게 언급했다.

엄정화

여배우에게 기회의 통로가 좁은 충무로 환경 탓에 좋은 시나리오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엄정화는 "시나리오가 재밌어야 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캐릭터가 능동적이길 원해요"라고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밝혔다.

그런 면에서 '오케이 마담'은 눈이 번쩍 뜨이는 시나리오였다. 여성 캐릭터의 극의 중심에 있는 데다가 모든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얽혀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엄정화는 "관객들도 다양한 작품과 배우를 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는 걸 알아요. 다행히 요 근래 뛰어난 여성 감독들이 좋은 작품으로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어서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이처럼 다양한 기획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라고 웃어 보였다.

엄정화는 1993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데뷔해 어느덧 배우 생활 28년 차에 접어들었다.

엄정화

그 기간 동안 가수이자 배우로서 두 가지 롤을 모두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시대의 아이콘'이자 후배들의 롤모델로 자리 매김 했다. 하루 아침에 부와 명예가 따라오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오늘의 엄정화를 만든 것이다.

특히 '나이'가 도전에 장애에 된다고 느꼈던 순간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했다.

"스물여덟 살 무렵부터 주변에서 발라드를 부르라고 했어요. 서른을 넘긴 여가수가 댄스 장르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니 장르를 바꾸라는 거였죠. 또 마흔이 넘은 여배우는 멜로를 못한다고들 했죠. 내가 앞으로 그려 나가고 싶은 배우나 가수로서의 길에 나이가 항상 걸리더라고요. 너무 괴롭고 힘들고, 저를 외롭게 했어요. 특히 가수 활동은 더욱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주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동력에 대해서도 말했다.

"나이 때문에 뭔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시도해왔고, 그게 오랫동안 일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나이에 갇혔다면 제 마지막 10집 앨범(2016)도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 것들에 스스로 한계를 두고 싶지 않아요. 요즘 '나이 때문에 이걸 못할 건 뭐지?'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이게 싫어서, 지쳐서 감당이 안돼서 라면 내 선택이지만 하고 싶은데 못하는 거라면 '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게 된달까요. 특히 앨범은 나의 의지만 있다면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경우는 주어지지 않으면 못하니까 기회가 왔을 때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고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영화도 많이 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싶어요. 진짜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이 모든 걸 열린 마음으로 해내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엄정화

지치지 않는 열정과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저는 워낙 이 일을 좋아해서요. 제 마음에서 오는 것 같아요. 뭔가 하나씩 제 히스토리(history)를 만들어 가는 게 좋아요. 그냥, 즐기는 거예요."

무대 위에 선 엄정화는 '카리스마 넘치는 섹시 아이콘', 무대 아래에서 만난 엄정화는 '사랑스러운 옆집 언니'의 모습이다. 인간 엄정화의 퍼스널리티는 후자에 가깝다. 양 극단의 이미지 안에서 그녀는 어떻게 나다움을 잃지 않고 균형을 맞춰나갈까.

"저는 그런 구분이 너무 쉽거든요. 다만 보시는 분들이 헷갈려하실까봐 우려했어요. 예전에는 무대에서의 모습과 연기하는 모습이 서로가 방해가 되는 게 싫었어요. '저 사람은 왜 저러고 있지?' 하는 시선이 싫어서 초반에 무대에 올라갈 때는 더 오버해서 가발도 쓰고 메이크업도 진하게 했던 것 같아요. 엄정화라는 인간이 가려지길 원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부담도 없어지더라고요. 무대에 충실하고, 연기에 충실한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간이 가져다주는 자유로움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엄정화는 '오케이 마담'을 즐기는 팁을 공개했다.

"마음을 비우고, 조금만 웃겨도 실컷 웃어주세요. 왜 롤러코스터 탈 때도 조금 무서운데 더 크게 소리 지르곤 하잖아요. 그것처럼 우리 영화도 '우하하하' 하다 보면 더 웃기게 느껴지실 거예요. 또 100분 동안 '고민 없이 즐기다 가겠다' 하는 마음, 그것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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