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구교환, 충무로의 유일무이

김지혜 기자 작성 2020.08.12 12:34 수정 2020.08.12 14:42 조회 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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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교환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2015년 8월의 어느 날 한 통의 메일을 받은 바 있다.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 보내드려요!"

옴니버스 영화 '연애다큐'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나눴던 구교환이 자신이 연출한 단편 영화 파일을 보내왔다. 인터뷰 전 이 배우가 연출하고 출연했던 대부분의 영화를 찾아봤는데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만 보지 못했다는 기자의 말을 기억하고 파일을 보낸 것이었다. 자신이 만든 영화를 나누고자 한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구교환은 독립영화계에서 독보적인 개성을 뽐내며 오랫동안 활약해왔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외모와 연기력을 갖춘 배우인 만큼 마니아들 사이에선 '나만 알고 싶은 배우'로 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필드를 국한하기에는 배우의 매력이 너무나 특별했다. 게다가 '매의 눈'을 가진 감독들이 이런 배우를 몰라볼 리도 만무했다. '꿈의 제인'(2016), '메기'(2019)으로 평단의 주목을 받은 구교환은 '반도'로 상업영화에 첫 발을 내디뎠다.

반도

'반도'에서 구교환이 연기한 '서 대위'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거나 개성이 강하다고는 볼 수 없다. 배우의 남다른 색깔이 더해져 개성이 부각된 케이스다. 연상호 감독이 구교환을 픽(PICK)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어느 날 연상호 감독님이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오셨어요. 예전부터 연상호 감독의 팬이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이 일어난 기분이었어요. 전화 만으로도 반갑고 설렐 수밖에요."

연상호 감독은 구교환에게 시나리오를 건넸고 서 대위 역할을 제안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구교환의 첫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시나리오를 먼저 드라이하게 읽었어요. 처음엔 '이게 뭐지?' 싶더라고요. 감독님이 첫 만남 자리에서 서 대위의 얼굴을 그려서 보여주셨어요. 그림 속 서 대위가 저와 닮지는 않았는데 눈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초점이 없는 느낌이랄까. 위태로운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서 대위의 마음은 3초마다 바뀌는 사람 같았어요. 그래서 그 인물을 어떤 식으로든 규정 짓고 싶지 않았어요."

구교환

서 대위는 631부대의 지휘관이라는 롤이 부여돼있지만 전사(前史)가 영화 속에 드러나 있지 않다. 구교환은 이에 대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서 대위의 과거를 떠올리니 현재의 상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더라고요. 서 대위의 첫 등장신과 엔딩을 보면 그 사람의 전사는 쉽게 유추가 가능할 것 같아요. 4년 전 그의 반듯한 모습도 상상할 수 있겠죠. 현재는 붕괴된 인물이 됐지만요."라고 말했다.

이 캐릭터가 평면적인 악역에 그치지 않은 건 구교환의 개성이 덧입혀졌기 때문이다. 그는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 한 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감독님은 제 호흡이 서 대위에 어우러지길 바랐어요. 서 대위를 연기하기 전에는 1분 전 상황을 상상했어요. 많은 관객들이 호평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한데 사실 전 잘 모르겠어요. 서 대위의 리듬감을 관객들도 좋게 보신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얼떨떨해했다.

그는 캐릭터를 규정짓지 않고 여러 갈래로 인물을 확장시켰다고 했다. '경우의 수'라는 표현을 써가며 '무전을 치며 불안해하는 서 대위', '인간을 구조하고 있는 서 대위' 등을 떠올리며 인물의 순간순간을 상상했다고 했다.

구교환

등장 만큼이나 강렬했던 건 서 대위의 퇴장이었다. 구교환은 "실제로 그 장면이 제 마지막 촬영이었어요. 시나리오에 충실하게 연기를 하다가 '이럴 줄 알았어'라고 중얼거리기도 했어요. 감독님과 상의해서 넣은 애드립이었는데 본편에는 빠졌어요."라고 엔딩 장면의 비화를 전했다.

'반도'는 구교환 생애 첫 상업영화기도 했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점심, 저녁 시간 때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는 것 외에는 다를 게 없더라고요"라고 천진난만하게 미소 지었다.

연상호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서는 "무드를 잘 잡아주세요. 저는 연기를 하면서 좀 부끄러워하는 편인데 제가 부끄럽지 않게 해 주셨어요"라고 웃어 보였다. 부끄러워한다? 한 번도 예상해보지 못한 구교환의 모습이었다. 그는 "음... 부끄럽다기보다는 약간 쑥스럽달까요. 연기할 때 쑥스럽다기보다는 슛 들어가기 전전 상황이 부끄러운 거죠. 슛이 들어가면 상황에 집중하게 돼요."라고 정정했다.

구교환

구교환만의 작품 선택의 기준도 궁금했다. 그는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궁금하고 호기심이 가는 영화가 우선인 것 같아요. 그래야 연기를 하는 제 진심이 전달될 것 같거든요. 서 대위가 궁금했어요. 선역인지 악역인지 보다는 이 사람이 누구인가가 더 중요했죠. 답은 쉽게 내려질 수 없다 보니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인물을 상상해 나갈 수 있었던 거고요. '왜'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를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를 피한 건 인물의 모호성을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제 호기심이 전달됐기에 관객도 그 인물을 궁금해하는 것 아닐까요?"

구교환은 재능 넘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방과 후 티타임 리턴즈' 등의 단편 영화를 연출하며 역량을 인정받았다. 또한 오랜 파트너인 이옥섭 감독과의 공동 연출을 통해서도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두 사람이 연출한 영화들은 유튜브 채널

[2x9HD]구교환X이옥섭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연기에 집중하고 있지만 연출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구교환
구교환

25편이 넘는 장, 단편 영화에 출연하며 만들어진 그의 연기 색은 대체가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개성이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게 아니라 그저 좋아서 해온 일이기 때문에 지금의 관심이 신기하고 감사해요. 이 시간들이 저에게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구교환이 꿈꾸는 '영화인 구교환'의 그림은 뭘까. "제 연기와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웃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영화에 보탬이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연출과 연기를 겸해온 그가 연기를 할 때만 느끼는 최고의 쾌감은 무엇일까. 그는 "관객들을 만나고, 관객들과 각 캐릭터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말주변이 없었다. 기자의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내놓고는 '앗, 이것도 적으시는 거예요? 농담인데...'라고 난감해했다. 그리고는 "이 자리에는 '농담 버튼'이 필요할 것 같아요"라고 호쾌하게 웃어 보였다.

구교환

정제되지 않은 외모와 연기 그것이 곧 그의 개성이다. 또한 정돈되지 않는 생각과 언변마저도 '구교환다움'의 일환이다.

구교환이 2013년에 만든 단편 영화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의 에필로그에는 봉준호 감독의 GV에 참석한 기환(구교환)의 모습이 담겨있다.

"지금 당신이 하려고 하는 게 맞다. 밀어붙여라."

봉준호 감독의 이 말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감독 구교환은 이 장면을 '꿈을 꿔라'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일까. 아니면 '꿈을 깨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일까. 전자가 아닐까 싶다.

좋아서 한 일이 잘하는 일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고, 남과 다른 나의 모습이 개성이 되는 건 놀라운 일이다. 구교환의 메소드 연기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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