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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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다만 악', 거룩히 빛난 배우들…낡은 서사를 구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0.07.29 18:03 수정 2020.07.29 20:50 조회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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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어떤 영화를 조금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꾸미는 구성 요소가 화려하다면 기대감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누구라도 궁금해 할 수밖에 없는 기대작이다.

오는 8월 5일 개봉을 앞둔 가운데 지난 28일 오후 언론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공작' 이후 무려 2년 만에 여름 시장에 귀환한 '천만 배우' 황정민과 매 작품 매력적인 연기로 신뢰를 쌓아온 이정재가 주연한 작품이다.

두 배우는 '신세계'(2013)를 통해 불멸의 콤비 플레이를 완성한 바 있다. 이들이 7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의 처절한 추격과 사투를 그린 하드보일드 추격액션 영화. '추격자', '황해'의 각색으로 주목 받고 '오피스'(2015)로 연출 데뷔한 홍원찬 감독의 신작이다.

다만 악

좋은 시나리오는 '왜'와 '어떻게'가 상호 작용하면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이어달리기 한다. 그런 면에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서사는 아쉬움을 노출한다.

원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다른 사람을 구하게 되면서 본인도 구원받는 서사는 익숙하다. 충무로에서는 '아저씨'·'우는 남자' 등이 있었고, 저 멀리 할리우드에서는 '존 윅'·'맨 온 파이어' 등이 있었다. 이밖에 비슷한 서사와 연출 양식을 내세우는 영화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란다. 좋은 의미로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종합 선물세트처럼 각 영화의 매력을 영리하게 차용하고 있다는 의미고 나쁜 의미로는 이 영화만의 새로움이나 개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새롭지 않다는 게 아쉽기는 해도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낡은 서사를 심폐 소생하는 연기나 활력 있는 연출이 가해지면 재밌게 느껴지는 게 오락 영화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경우 서사는 미니멀하게, 액션은 다이내믹하게 직조하면서 장르 영화를 만들겠다는 단순 명확한 야심을 이해한다고 해도 구간구간 이야기상의 생략과 허용이 지나치게 많다. 주인공 한 명을 제외한 캐릭터의 전사를 생략해 행동의 동기들도 빈약해 보인다. 이러한 편의적인 플롯은 보는 이들이 인물에 깊게 몰입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한다.

다

다행히도 이 영화에는 아쉬움을 메우는 뛰어난 조력자들이 있다. 최고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영화의 구멍을 한 땀 한 땀 채우는 모양새다.

우선 기술적으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촬영과 음악, 액션이다. 특히 '마더', '곡성', '기생충' 등에서 촬영을 맡았던 '장인' 홍경표 감독의 영상 미학은 영화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한국과 일본, 태국 3개국 로케이션에서 각각의 질감과 톤을 달리하며 극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모그가 담당한 음악은 조금 과한 감이 있지만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하드보일드한 무드를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이 과정에서 과유불급처럼 여겨지는 선택도 있다. 바로 액션 시퀀스마다 사용한 고속촬영 방식이다. 액션신에 방점을 찍고 인물들의 힘과 파괴력을 강조하기 위해 스톱 모션 기법으로 슬로우 모션을 선보인다. 영화만의 개성으로 내세운 의도는 알겠으나 과도한 사용은 때때로 극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여겨진다.

연출이 장점과 단점의 고개를 넘나든다면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단순히 완성도에 기여한 수준이 아니라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근원이자 이야기를 내내 따라가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다만

청부살인업자 '인남'을 연기한 황정민의 연기가 영화의 중심축이다. 고독하고 쓸쓸한 킬러의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해 어떤 사건을 통해 각성해나가는 인물을 탄탄한 연기력으로 묘사해낸다. 황정민은 불과 얼음의 정서를 모두 유연하게 연기해낼 수 있는 완숙한 배우다.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후반부 한 신(SCENE)은 사무치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인남'을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 역할의 이정재는 강렬한 임팩트를 발산했다. 이정재의 특출한 능력 중 하나는 분량에 관계없이 등장 시부터 관객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레이는 다소 기능적인 악역이지만 이정재가 소화해내면서 특별해졌다. 상반신 전체의 문신과 화려한 의상 등 많은 설정이 들어간 캐릭터이지만 이정재 본연의 카리스마가 겉치레를 뚫고 나온다.

'신세계'에서 '부라더' 지간으로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던 황정민과 이정재는 이번 영화에서 '앙숙'으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인다. 태국에서의 액션 장면들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킬링 파트다. 이건문 무술 감독의 지도와 두 배우의 지독한 연습 끝에 완성된 역동적인 액션 신들은 '하드보일드 액션'라는 영화의 스타일에 걸맞는 진한 색깔을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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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남'의 조력자 '유이' 역할의 박정민은 개봉 후 관객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릴 연기 변신을 보여줬다. 제작보고회 전까지 노출을 삼간 것이 유난스럽지 않게 여겨질 정도로 인상적인 활약이다.

박정민은 배우로서 어떤 캐릭터든 맡을 준비가 돼있고 탐구할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삼 이 배우가 연기 잘하는 것을 말할 필요는 없지만 자칫 변신에만 중점을 둬 과장스럽게 묘사하거나 캐릭터가 대상화될 수 있는 여지마저 차단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는 짐작만 할 뿐이다. 박정민은 '연기 여우'처럼 여겨질 정도로 영리하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당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가 재심의를 거쳐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잔혹한 장면을 시각적으로 정밀 묘사를 하진 않지만 심리적인 측면의 수위는 다소 센 편이다.

하지만 '하드보일드'(hard-boiled : 폭력적인 주제를 냉철하고 무감한 태도로 묘사하는 방식)를 표방하는 영화답게 거침없고 과감한 액션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휘몰아치는 액션과 센 캐릭터를 좋아하는 남성 관객에게 강력하게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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