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화)

영화 핫 리뷰

[빅픽처] '반도', 진화와 퇴보 사이…장·단점 톺아봤더니

김지혜 기자 작성 2020.07.14 17:27 수정 2020.07.15 09:42 조회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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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실로 오랜만에 맡는 대작의 향기다. 고사 직전의 극장가에 당도한 '반도'(감독 연상호)는 흥행 여부를 점치기에 앞서 개봉을 감행한 결정 만으로도 영화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성공한 장르 영화의 속편이라는 기대감과 부담감이 공존한 이 기획은 코로나19라는 돌발 변수와 맞물려 국내외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은 좀비 영화로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히트작이다. 외국인들과 한국 영화를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글로벌 흥행작이기도 하다. 서양의 귀신으로만 여겨졌던 '좀비'가 한국을 지칭하는 'K'와 만나 'K좀비'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당연하게도 속편을 향한 관심은 국내에만 머물러있지 않다. 이 모든 건 '부산행'의 파급 효과다.

코로나19로 장기간 신음 중인 극장가에 당도한 '반도'는 기대작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더없이 반갑다. 국내외를 강타한 히트작의 속편, 톱스타 출연의 후광효과, 큰 화면에서 봐야 할 영화라는 의미 부여까지, 관객에게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선사하는 영화는 오랜만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어떤가. 연상호 감독만이 할 수 있는 것과 연상호 감독이 여전히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의 공존이다. '반도'는 코로나19라는 재앙을 뚫고 다시 한번 비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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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부산행2'가 아닌 '반도'일까

'반도'는 '부산행' 사태로부터 4년 후를 그린다. 전대미문의 재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홍콩으로 떠나고 난민 신세가 돼 척박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전직 군인 정석(강동원)은 홍콩의 범죄조직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한국(반도)으로 다시 들어간다. 제한 시간 내에 지정된 트럭을 확보해 반도를 빠져나가야만 하는 것이 그의 임무다.

그러나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는 인간성을 상실한 631부대와 대규모 좀비 무리가 공존하고 있다. 정석은 미션을 수행하던 도중 민정(이정현)가족과 만나게 되고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영화의 제목이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국가명이 아닌 지리학적 특징을 딴 '반도'라는 것부터 흥미롭다. 타자화된 대한민국이자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 국가, 좀비로 폐허가 된 땅을 바라보는 글로벌 시각을 투영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부산행'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할 뿐 다른 영화임을 미리 상기시키는 제목이기도 하다. 연상호 감독은 프리퀄에 비해 상상의 여지가 풍부한 시퀄을 선택해 새 판을 짰다. 공간과 인물, 이야기 등에서 전편과의 연결 고리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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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땅에 발 붙인 비주얼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굳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인류 멸망 이후의 세계)라는 장르물 마니아에게나 익숙한 단어를 끌어와 '반도'의 배경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전작의 성공이 콘셉트의 승리라면 속편의 기획은 규모를 키우고 내실을 강화한 모양새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좀비와 전면전을 펼쳤던 전작과 비교하면 '반도'는 폐허가 된 서울을 무대로 한 게릴라전이다.

전편과 비교해 눈에 띄는 진화는 단연 비주얼 라이징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좀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영화적 배경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반도'는 잿빛 폐허가 된 서울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관객을 극에 발 딛게 만들었다. 오목교, 구로디지털단지 등 실재하는 공간이 폐허가 된 모습으로 등장할 때의 그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질감이 현실적 공포를 증폭시킨다. 단언컨대 초중반까지는 한국 영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시각적 경외감을 선사한다. 분명 아는 서울인데 낯설게 보이는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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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연상호는 여타 감독들이 못하는 걸 해내는 능력이 있다. 글에서 시작해 이미지로 확장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지에서 출발해 글을 쓰는 형태로 작업을 해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작업 방식은 스크린이라는 대형 화면과 만났을 때 비로소 역량의 정점을 찍는다. '반도' 역시 그런 영화다. 단순히 스케일만 키운 것이 것이 아니라 미술, 촬영, 편집, 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기술적 요소에 공을 들여 대작의 위용과 볼거리를 만들어냈다.

좀비와 동거라도 해본 마냥 그들의 행태와 특징을 적극 활용한 액션 장면들도 여전히 훌륭하다. 빛에 예민하고 어두울 땐 눈뜬장님이 되는 좀비의 특징을 고려해 대항하는 인간들의 재기가 삭막한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LED 장식이 있는 RC카, 나이트클럽 광고판 등을 활용한 장면들은 아이디어 면에서도 신선하다.

또한 '부산행'에서 기차에 엉겨 붙는 좀비떼들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기억했던 이들이라면 '반도'에도 그에 버금가는 독창적인 떼신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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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비는 왜 객(客)이 되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에서 좀비는 주가 아닌 객이다. 초중반까지 분위기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지만 이야기의 윤곽이 잡히고 주요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할 때쯤이면 극의 중심에서 후퇴하는 느낌이 든다.

'부산행'에서는 좀비의 창궐 자체가 핵심 사건이고 갈등이었다면 '반도'에서 좀비는 인간과 인간의 갈등에서 중간중간 침투하는 방해물 정도에 그친다. 그러다 보니 극 전반의 속도감과 긴장감이 전작에 비해서는 떨어진다. 대단한 기세와 활력을 자랑했던 '부산행' 좀비와 비교하면 폐허가 된 땅에서 굶주리고 늙은 좀비들은 움직임도 둔탁하다.

그 빈자리를 채운 건 인간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다. 좀비와 들개라 불리는 인간들의 생존을 건 게임 장면은 중세의 투우장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야만적이다. 이 강렬한 시퀀스에는 감독의 분명한 의도가 투영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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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이 '반도'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야만성이 지배하는 세상과 그 속에서 피어난 휴머니즘이다. 좀비물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인간에 관한 이야기에 방점을 찍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산행'에서 '명존쎄'(명치를 매우 세게 때린다)라는 줄임말까지 만들어내며 극강의 빌런 역할을 해냈던 용석(김의성)과 같은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반도'는 두 명의 악당이 등장한다. 정석과 민정 일행을 쫓는 631 부대의 소대장 황중사(김민재)와 631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 서대위(구교환)가 바로 그 주역이다.

특히 독립영화계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개성을 발휘했던 구교환의 활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특한 목소리와 외모, 전형성을 탈피한 연기 방식을 고수한 구교환은 대작 안에서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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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캐릭터의 약진·여전히 투박한 드라마

연상호 감독의 대표적인 약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평면적인 캐릭터 구축과 투박한 드라마 조련술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두 가지 포인트에도 큰 공을 들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다. 장르물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보호 받아야 할 존재로 그려졌던 한계를 넘어 민정(이정현)과 준이(이레) 모녀를 능동적이고 강인한 캐릭터로 만들었다. 중반부부터 극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뽐낸다.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액션이라 할 수 있는 카체이싱 장면을 소화하는 것은 강동원도 이정현도 아닌 이레다. "살고 싶으면 타요"라는 뻣뻣한 대사를 쿨하게 소화하며 핸들을 과감하게 돌리는 이레의 모습은 나이도 성별로 초월한 완전체 액션 캐릭터로서 멋짐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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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무 많은 캐릭터에 공을 쏟다 보니 정작 주인공 정석이 돋보이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해결하는 전형적 영웅 서사를 탈피하고, 보통 사람의 각성을 보여주고자 한 감독의 의도는 알겠으나 강동원이라는 매력적인 배우를 전면에 놓고 활용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더불어 '부산행'에서와 마찬가지로 후반부 신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감이 있다. 장르 영화, 상업 영화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감정신이라 해도 좀 더 세련되게 풀 수는 없을까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히 남는다.

강동원

◆ 그럼에도 명실상부 '극장용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는 오랜만에 만나는 극장용 영화다. 거대한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 아래 즐겨야 영화가 제공하는 오락적 요소를 만끽할 수 있다. 일반관 상영뿐만 아니라 아이맥스, 4DX, 스크린X, SUPER 4D, 돌비 애트모스 등 여섯 가지 포맷 특수관에서 개봉을 확정해 각기 다른 매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됐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의 대약진으로 안방이 극장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추세지만 극장의 존재 이유는 '반도' 같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반도'의 성패는 하나의 상징성까지 띄게 됐다. 약 190억 원에 이르는 제작비 중 절반에 가까운 금액을 이미 해외 세일즈로 거둬들였다. 그로 인해 국내 손익분기점을 250만 명까지 낮췄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야심은 국내 시장 1등에 머물지 않는다. '부산행'의 글로벌 성과에 이어 이번에는 해외 동시 공략에 나선다. 7월 15일 한국 개봉에 이어 다음 달 7일 북미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와이드 릴리즈 된다. 코로나19에 잠식된 극장가가 K좀비물로 깨어날 수 있을까. 그 기대감을 확인할 시간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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