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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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님'에서 '남'으로…'결혼 이야기', 관계의 해체와 회복

김지혜 기자 작성 2019.12.10 10:52 수정 2019.12.10 10:58 조회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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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를 보기 전 든 가벼운 의문 하나, 부부의 이혼 과정을 그린 영화의 제목이 왜 '결혼 이야기'(감독 노아 바움백)일까. 결국 이혼도 결혼으로 비롯된 결과이기 때문이며, 결혼의 방향이 낳은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 이야기'는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뛰어난 가족 영화이며 누구나에게 대입할 수 있는 공감대 높은 성장담이다. 이 드라마는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랑과 결혼, 개인의 행복과 불행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배우인 니콜(스칼렛 요한슨)과 연극 연출가인 찰리(아담 드라이버)는 9년 여에 걸친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이혼을 준비 중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으로 원만한 이혼을 계획하지만 합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니콜은 드라마 촬영을 이유로 주거지인 뉴욕을 떠나 고향 LA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찰리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한다. 찰리는 아들의 양육권을 얻기 위해 LA와 뉴욕을 오가며 소송에 임한다.

결혼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듯, 이혼이 사랑의 실패라고 볼 수는 없다. '결혼 이야기'를 보면 그 생각은 더욱 명확해진다. 생판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 '남'에서 '님'이 되는 여정이 결혼이라면, 이혼은 '님'에서 다시 '남'으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점 하나로 관계의 변화는 규정되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다. 9년이라는 시간을 나눈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유전자를 반반씩 물려받은 아들 헨리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영화 두 편이 있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초기작인 '오징어와 고래'(2005)와 고전이 된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극작가 겸 연출가인 노아 바움백은 대부분의 영화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아왔다. 데뷔작인 '오징어와 고래'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에 큰 영향을 받은 자신의 청소년기를 투영했다. '결혼 이야기'는 '오징어와 고래'와 궤를 같이 하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두 영화 사이의 시간 동안 감독은 자신의 이혼이라는 더욱 큰 개인사를 겪었다.

'결혼 이야기'는 노아 바움백의 작품 중 가장 내밀한 고백을 담은 영화이면서 보편적인 인간의 관계학을 그린 영화다. 헤어진 후에야 비로소 서로를 제대로 알게 된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 이것은 감독 개인의 반성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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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가는 것과 잃을 것을 따지고 있는 부부의 이혼에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궤변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가 그리는 니콜과 찰리의 파경은 분명 '개인의 성장'을 포함하고 있다.

두 사람은 결혼 생활을 반추하며 서로를 바로 보게 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내가 나로 오롯이 서게 하는 것에는 인간관계를 통한 상호 작용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혼을 통해 부부 관계는 해체됐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관계는 회복됨을 영화는 암시한다. 아름다운 결말이다.

위트와 재기가 돋보이는 노아 바움백의 연출은 영화 내내 빛난다. 세상 모든 부부가 의도치 않게 서로가 서로에게 악당이 되는 순간이 있다. 무엇보다 말로써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그 서슬 퍼런 현장에도 감독은 날카로운 현실감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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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극본을 더욱 훌륭하게 만든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니콜과 찰리 그 자체인 듯 밀착된 생활 연기로 보는 이들의 공감 지수를 높인다.

또한 니콜의 담당 변호사 노라를 연기한 배우 로라 던 역시 인생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이런 뼈 있는 조언을 하는 언니나 누나가 있었다면 우리네 삶은 보다 현명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더스틴 호프만과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20세기 가장 뛰어난 가족 드라마였다면, '결혼 이야기'는 2019년 가장 현실감 넘치는 가족 영화다. 부부의 이혼을 통해 관계의 해체와 회복 그리고 개인의 독립과 성장을 그려낸 수려한 드라마 한 편이 당도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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